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36
드리트빅 - 듀팔론산두르(Dritvik - Djúpalónssandur)에서 나와 슈네펠스네스(Snæfellsnes)까지 둘러보고 나니 얼추 점심시간이 됐다. 기억하기로 아이슬란드에서 먹은 여덟 번의 점심 중 두 번 정도를 제외하면 우린 대부분의 점심을 길 위에서, 차 안에서 먹었다.
이 날은 준비해간 남은 햇반으로 주먹밥을 싸 뒀는데, 어디서 먹을 지는 정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길을 가다가 적당한 시간, 적당한 장소에서 먹을 참이었다. 그런데 이 날은 레이캬비크가 가까워와서 그런지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소나무가 잔뜩 있는 작은 공원 같은 곳을 발견할 수 있었고, 우린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름을 몰라 '이곳'이라고밖에는 부를 수 없는 이곳에는 우리 말고도 한 커플이 더 멈춰 서 있었다.
아래 사진 오른쪽 끝으로 꼭대기가 새하얀 빙하로 된 산, 슈네펠스요쿨이 보인다.
이곳은 공원답게 작은 벤치가 있었지만 날씨가 꽤 추워서 우린 결국 여느 때처럼 밥차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어디선가 쟁여둔 바이킹 맥주 컵에 주스도 따라 마셨으니 우리 밥차가 여느 식당 못지않다.
우연히 들른 곳인데 이곳의 경치 또한 그 어떤 유명 관광지 못지않았다.
추워서 밥은 밖에서 못 먹었지만 차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며 준비해둔 보온병을 들고 벤치 쪽으로 갔다.
벤치가 짜잔.
아침에 드립 해서 보온병에 담아둔 커피까지 마셨으니 완벽한 점심이다.
흡연자는 식후땡까지 마쳐야 완벽한 점심.
이 뒤쪽으로 산책로가 보여서 엘과 나는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 봤다. 저 멀리 위쪽으로 건물이 보이고 작은 소나무가 여기저기, 연두색 풀들이 곳곳에 피어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라,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소나무 무리가 새삼 반가웠는데 다른 곳에서도 소나무를 봤던가, 여기서밖에 못 봤던가 모르겠지만, 가까이에서 본 가장 키 큰 나무들로 기억한다.
사실 아이슬란드에서 이렇게 쨍한 초록색은 좀 낯설다.
이곳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나절 그냥 자리 펴고 눌러앉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우리는 슈내펠스네스에 들렀다 레이캬비크로 가서 블루라군에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만큼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여행 중엔 구글 지도를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했는데, 아주 원초적인 방법으로 핸드폰을 고정해서 사용했지만 이용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이런 거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따로 내비게이션 필요 없을 것 같다.
여행을 해 보면 꼭 필요한 것과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