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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Dec 16. 2021

개똥철학 시야와 나이

반비례일까?

막둥이가 다녀갔다.

여기저기 넝쿨 식물들이 가득한 거실을 둘러보며....

막둥이 한마디 했다...

"와우~ 싱그럽네용!!!"

옆에 계시던 시어머님이...

하나 가져다가 부엌에 두면 보기 좋지 않겠냐고 하시니...

막둥이 손사래를 친다.

"할머니~ 울 집에 오면 다 죽어요..."

시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셨다...

"물만 주면 되는데... 그게 뭐 어렵다고...."

제가 말을 거들었다.

"그냥 두세요~ 저때는 그런게 눈에 안 들어와요~ 설거지통 옆에 둔 바질도 바짝 말랐던데요~ 뭐..."

울 막둥이... "쌩큐~ 맘!!! 저를 이해하시네용~" 한다.

나는...

이 집으로 이사온지가 벌써 23년째다.

내 평생에 가장 오래 산 집인 셈이다...

시동생네까지 잠시 머물던 때엔 열명의 식구가 벅적거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 큰집에 덩그러니 시어머님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셋만이 남았다.

그 시절에... 뒷곁에 있는 텃밭은 풀이 허리까지 자랐고... 잔디도 어쩌다 보면 말목까지 올라오곤 해서 할 수 없이 가드너에게 맡겼었다.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지만... 그 시절에는 하루하루가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지나갔었다.

어쩌다 받는 꽃은 물을 갈아주는 것을 잊어버려 화병에서 바짝 말라버리기도 했고...

화분이라도 생길라치면 받을 때의 기쁨은 잠시이고 몇 주가 되면 받을 때 그대로 미라를 만들어 버리곤 했었다.

내가 물을 마실 때 물을 주면 되는 것이었을 텐데... 그때는 그 간단한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우리 딸들은...

큰 딸이 결혼할 때 아는 지인이 가끔 생각날 때 물만 주면 하얀 꽃까지 피운다는 화분을 선물로 주었다.

그냥 내가 키울까 하다가 혹시 그분이 우리 집에 오셔서 보면 섭섭해할까 봐 큰 딸 집에 가져다 두고 가끔 큰 딸네 갈 때마다 물을 주었다.

그러다가 한참의 텀을 두고 가보니.... 이미 나무 미라가 되어 정원 한쪽에 초라하게 자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냥 나의 그 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더니... 아는 친구가 마른 꽃을 만들어 판다면서 우리 집도 동생네도 모두 마른 꽃을 사서 주고 큰딸도 마른 꽃을 여기저기 꽂아 두었다.

그러는게 낫지 싶었다.

물 줄 걱정도 없을 테고... 분위기를 살릴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이니까...

둘째와 셋째가 함께 사는 집도 마찬가지다.

요즘도 비만 안 오면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서 가드닝도 해주고 남편이 솜씨를 발휘해서 뷰~가 좋은 위치에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벽돌을 깔아 주고 있다.

앞에 말했듯이...

언제 적에 사놓은 바질은 햇살 좋은 창가에서 미라가 되었고...

여기저기서 받았다는 꽃다발과 장미꽃은 이미 꽂힌 그 상태에서 바짝 말라 있었다.

그냥~ 피식 웃으며...

내가 마른 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골라서 가져오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어쩜!!!! 그 엄마에 그 딸들인지!!!!'

내가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냥~ 내 그 시절 내 모습인 것을...

나이가 들면 가까운 것이 보이는 것일까?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모두 한 종류의 사람들이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울 둘째와 셋째를 보면... 한 뱃속에서 난 쌍둥인데도 극과 극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럼에도...

어쩌면... 보편적으로 이러지 않을까?

뭐냐면...

나이가 들면... 가까운 것이 더 잘 보이는...

반대로 말하면...

젊었을 때에는 먼 곳이 더 잘 보이는...

지금은...

딱히 나의 미래에 대한 큰 관심이 사라져 버렸다.

나의 상상에는 이미 나는 없고 자식들과 손주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육십 대에 칠십 대에 팔십 대에... 라며 계획을 짜지 않는다.

그냥 오늘 하루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면 그만이지 싶다. (나만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점점 기력이 없어지는 시어머니가 보이고...

여기저기 부실해져 가는 남편이 보이고...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보이고...

수경으로 키운답시고 이틀 말리고 닷새 물에 담그는 짓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연녹색으로 내리는 뿌리도 보이고... 그와 함께 올라오는 새로운 잎도 눈에 들어온다.

멀리 내다볼 여력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해서 일까?

가까운 것이 크게 보이고 더 애틋해졌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딸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전쟁을 치르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것이 직장일이든, 사회봉사든, 취미생활이든, 근육을 빵빵하게 키운답시고 매일 하는 헬스던 간에 말이다.

그래서...

가까운 것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살아온 그 시절이기에 '피식~' 웃고는 있지만, 내가 살아온 그 시절이기에 나와 같은 아쉬움을 이 나이 되어서 느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는 않다.

우리 딸들은...

그냥 가끔은 가까운 곳도 보면서 살았으면....

아름다운 꽃에 눈도 돌리고 향기도 맡으며 살았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푸른 하늘도 한 번쯤 쳐다보았으면...

멍~ 하니 앉아 커피의 향기를 음미했으면...

그렇게 바라보지만...

그럼에도 바짝 마른 바질의 작은 화분에 왜 물을 주지 않았냐고 묻지 않는다.

왜인지 아니까...


오늘 그냥 나의 개똥철학을 써내려 갔다.

오늘은 유난히 나의 가까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에....


2021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12월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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