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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Dec 23. 2019

니들이 국물 맛을 알아~

뚝배기 맛을 아는 딸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서 쭉~ 이곳에서 자란 나의 두 쌍둥이들의 입맛만은 한국인 그대로다.

아장아장 걸어 다닐 무렵, 배추로 겉절이를 하면 옆에 빙 둘러앉아 병아리처럼 입을 벌렸다.

기저귀를 차고앉아 고춧가루에 액젓으로 버무린 겉절이를 야무지게 먹는 둘의 모습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속이 쓰릴까 봐 걱정돼서 그만 먹으라고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 하나~"하며 입을 벌렸다.

옆에 계시던 시어머님이 "애구~ 한국에도 이런 애들은 없을 거다~ 참 별나~~"하셨다.

아쉽게 돌아서는 둘의 입은 매운맛으로 보드라운 입가가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니들이 국물 맛을 알아~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일이다.

둘은 거의 12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었기에 친정엄마는 무엇을 해줘야 하나 은근히 걱정을 하신 눈치였다.

물론 12년 전에 번데기에 매운탕까지 먹는 둘을 보며 "어쩜~ 외국에서 자란 애들이 한국애들 보다 더 잘 먹냐???"라고 놀라셨지만, 이제 다 커서 다시 만나는 외손녀들의 입맛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자못 궁금하셨을 터였다.

친정엄마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지만...

친정엄마표 우거지탕을 "할머니~ 국물이 참 시원해요~"라고 하며 그 뜨거운 국물을 후룩후룩 마시는 두 딸을 본 친정 부모님은 숟가락을 허공에 매단 채 기특하다는 듯 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지금까지도 둘은 '한국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이라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외할머니가 해 주신 우거지탕~"이라고...

엄마의 비법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다고 하면서 그것은 바로 외할머니의 국물 맛이라고 했다.


손맛의 비밀은?

요즘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서도 한국 음식점이 핫하다.

교민 수가 적은 이곳에서 한국인만을 상대로 음식점을 한다면 아마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터다.

한국음식점엔 이미 중국인들이나 이곳 현지인들이 식당의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


둘째의 직장동료도 아마 한국음식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나 보다.

어느 날인가 "너는 엄마랑 살지? 좋겠다~ 맛있는 거 매일 먹고..."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둘째는 "한국음식은 국물이 최고지~" 했더니 그 동료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란다.

"우리 엄마의 국물 맛은 기가 막혀~ 그러데 이번에 한국에 갔더니 그 국물 맛이 외할머니꺼더라고~"하며 국물 비법을 동료에게 알려주었다고...

그렇다고 그 동료가 그 비법에 따라 국물을 만든다는 것은 만무한 일이지만 둘째는 아마도 세상에 널리 그 비법을 전수해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국물 맛의 비법은?

    

'국물 맛의 비법'이라는 게 뭐 별거일까?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런 맛이 당연히 '국물 맛'이라고 알고 살아왔을 터인데...

나는 냉동실에 늘 육수를 끊이고 식혀서 얼려놓는다.

날씨가 스산한 날엔 매운탕이나 얼큰한 순두부찌개를 저녁 밥상에 올리고, 얼음처럼 조그맣게 얼려 한봉 다리 만들어 두고 그 육수 얼음덩어리를 기름 삼아 나물을 볶고, 손주 먹거리를 만든다.

그러니 나의 손맛의 비밀은 바로 요 육수일 것이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조선시대 손맛으로 유명했던 어느 대갓집 안방마님의 비법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바로~ 닭 육수...

조미료 등 양념이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그 집안만의 비법이 있었던 거다.

모든 요리에 닭 육수를 조금씩 넣고 지지고 볶고 끓이고~ 그냥 맹맹하게 한 것에 비하면 닭 육수의 달달함과 깊은 맛이 다른 재료들과 어우러져 먹는 사람들의 입을 호강시켰을 것이다.

그 후로 나도 닭 육수로 나물을 볶곤 한다.

물론 맛은 기가 막히다.


이쯤 해서 나의 비법을 밝혀볼까~

사실 너무 평범해서 부끄럽지만, 우리 딸들이 최고라고 치켜세우니 어쩌겠는가~ 착각도 자유라고...



마늘
멸치(머리와 내장을 빼고~ 살짝 볶아 비린내는 날려버리고 넣는다.)
북어포 (머리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쉬운 데로 한국에서 사 온 북어채를 넣는다.)
다시마
버섯
사과, 파인애플, 배...(먹다 남은 과일을 모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넣는다.)


한 시간 이상 푹 끊이고 불을 끄고 가스오브시를 한 줌 넣었다 빼면 살짝 바다의 깊은 맛이 돌고~

소고기 남은 거나 닭고기를 넣으면 바다의 맛과 육지의 맛이 잘 어우러진 맛이 나고~


이렇게 만들어 두면, 샤부샤부를 해 먹어도 좋고~ 부대찌개를 끓일 때 넣어도 좋고~ 만둣국 등 국물이 필요한 요리의 육수로 그만이다.

물론 영양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니들이 국물 맛을 알아?

딸들 중에 둘째가 가장 국물을 좋아한다.

게으름이 발동을 해서 냉동실에 육수가 없어 치킨스톡을 살짝 넣던가~ 멸치와 다시마만 넣고 후딱 육수를 만들어 넣으면... 바로 안다. "엄마~ 오늘 국물은 약간 다르네~~~"라고 하니까...

'무서운 것!!!'


둘째는 국물 맛을 안다.

예리한 혀끝조차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나 보다.

그래서 더 좋다.

그래서 덜 외롭다.

오늘도 육수... 국물 만들 준비를 한다.

여름인데도 가을 분위기를 내뿜는 요즘 이곳 날씨에...

아무래도 순두부찌개가 안성맞춤일듯하니...

육수를 만들고 콩을 불려 순두부를 만들고...

태평양 건너 사는 나는 산골 아낙의 그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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