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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Dec 31. 2019

아듀 2019~

다사다난으로 표현하기도 부족한 한 해였다.

드디어 2019년의 마지막 날이다.

올해는 우리 가족 모두가 롤러코스트를 탔던 한해였기에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했던가?

그 긴 여정에는 햇살 따사로운 평온한 구간도 있고, 폭풍우가 휘몰아쳐서 앞도 보이지 않은 그런 구간도 있다.


2019년은...

인생의 긴 여정에서 본다면... 그저 일 년일 뿐인 2019년은 우리에게 그 여정 가운데 만날 수 있는 모든 변수가 휘몰아쳤던 그런 한해였다.

이제 그 마지막 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한 이 새벽에 올 한 해를 뒤돌아 보며 굿바이~ 손을 흔들며 걸어온 길을 힐긋 쳐다본다.


병원이 직장은 아니었지만...

1995년 3월부터 시작한 우리의 이민생활은 이제 24년을 뒤로하고 있다.

이곳에 와서 남편이 가장 많이 들락거렸던 곳이 있다면 그곳은 단연 응급실을 포함한 병원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이민을 오고 남편의 2남 2녀 그리고 그 당시에 있었던 부모 초청 카테고리로 시부모님까지 모든 가족이 이곳에서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시아버님은 이곳에서 직장암 수술을 하셨고 그 후에 응급실은 일 년이면 몇 차례씩 오가게 되었고...

5년전에는 뇌에 물이 찼다고 해서 수술까지 받으시고...

어쨌든 시아버님은 영어가 자유롭지 못하시니 남편이 늘 그림자처럼 옆에 있어야 했다.

그 긴 세월의 병원 이야기는 글로도 다 표현하기 힘들다.

남편은 30년 넘게 한국에서만 살았고 거기다 영어는 전공책을 본 것 외에는 그렇게 친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아버지의 그림자 역할이 녹녹하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그 시간들은 말수 적은 남편을 '병원 통역관'을 해도 되겠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만들어 놨었다.


녹슨 그림자~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올 초... 남편이 응급실로 실려갔다.

물론 딸들을 앞세우고...

아버지의 그림자였던 남편은 정작 본인이 응급실에 신세를 지게 되자, 딸들과 동행 하기를 원했다.

아픈 자신을 변호할 힘이 없는 거다.

남편은 열심히 자신의 처지를 한국어로 주절주절 설명을 하면 딸은 옆에서 아빠의 아픔을 적절한 영어로 표현을 했다.

그렇게 올 초부터 응급실로 해서 전문의까지 만나고 다녔다.


유난히 이민자들의 중년은 초라하다.

낯선 환경에서 자신을 돌볼 여지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가족을 모두 업고 살아온 세월이 버거워서일까?

이 작은 교민사회에 너무 자주 이제 5학년에 들어선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남편도 여기저기 노란불이 들어오곤 한다.

목이 아프다고 시작한 올 초의 해프닝은 결국 확인되지 않은 원인으로 염증 수치가 너무 높아져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만큼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났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두 딸과 한국에 가다!

바쁘게 살아온 딸들이다.

나이로 따지면 20대 초반이지만, 직장 동료들이 모두 30~50대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그 세월을 뛰어넘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딸들이다.

이제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린 딸들은 다시 신발끈을 묶고 새로운 출발선에서 숨 고르기를 하기에 앞서 여행을 준비했다.

엄마 아빠의 비행기표부터 모든 여행경비까지를 책임지겠노라 하며...

그렇게 우리는 돌이 채 안된 아들을 둔 큰 딸네를 남겨두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것이 올 3월...

그리고 딸들은 3주 동안 우리는 4주 동안 한국에서 보냈다.

친정집 방한칸에서 우리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래 보겠냐고 하면서... 넷이서 쪼르르 누워서 이불을 깔고 덮고 잠도 자보고...

KTX를 타고 목포항에 가서 크루즈로 제주여행도 갔다 오고...

광화문 어딘가에서 1박 2일을 하며 서울 관광버스도 타 보고....

남대문 시장 어딘가 몇 층이 모두 옷가게인 곳을 올라갔다가 사람들에게 치어도 보고...

한국 여행은 이제 훌쩍 커버린 두 딸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남겼다.


슬픈 이별

5월...

구순을 바라보시던 시아버님이 오랜 병환 중에 우리의 곁을 떠났다.

이민을 오시기 전부터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지팡이에 의존을 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정정하셨는데...

직장암 수술을 하고... 5년이 지나 암은 완쾌 진단까지 받았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세월이 흘러 지팡이는 휠체어로 바뀌고...

커피를 좋아하시던 시아버님과 단골 카페까지 만들며 매주 한두 번씩 쇼핑몰로 나가 커피타임을 했었다.

시아버지와의 추억은... 쇼핑몰에 있는 카페 한편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휠체어를 끌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그래서일까... 지금도 휠체어에 의지한 누군가만 봐도 흠칫 뒤돌아보고 있다.

그때에도 늘 남편은 아버지의 그림자였다.

몸을 못 가누는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내리고 휠체어를 는 모든 것이 남편의 몫이었으니까...

6.25 때 월남을 하셨고, 남쪽에 자리를 잡고 2남 2녀를 훌륭하게 키우시고... 함께 태평양을 건너와 이곳에서 사시며 두 번의 대 수술까지 하셨던... 파란만장한 90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시아버님은 남섬 북섬으로 그리고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흩어져 살던 형제들을 모이게 하고는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다.

남편은 한동안 아버지를 놓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막내의 레젼드 행보

7월...

그렇게 이별의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의 삶은 여전히 분주했다.

말수 적고 한우물을 파는 스타일의 막내는 이곳 은행에 다닌다...

앞에서 출납을 하는 텔러를 시작으로 5년 동안 수직상승을 했다.

이직이 잦은 이곳에서 막내는 제일 밑에서부터 올라간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케이스가 되었단다...

3년 전 투자 쪽 부서로 옮긴 막내는 서류 정리를 하는 말단부터 시작해서 1년에 한 계단씩 올라갔고...

7월에는 또 한 계단을 올라가서... 이곳 뉴질랜드에서 이례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래서 이 좁은 사회에서 막내는 레젼드라 불린다.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손주에 손녀까지~

8월에는...

큰딸이 둘째를 가졌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10분 거리에 사는 큰딸은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을 해서 내년에 두 살이 되는 아들이 있다.

덕분에 나는 할미가 되었고...

직업을 가지고 있는 큰딸이 복직을 하면서 나와 남편은 자연스럽게 육아 보조를 하게 되었다.

할미가 되고 보니 펼쳐지는 세상은 또 그 색깔이 달랐다.

그 작은 녀석의 작은 몸짓에도 우리는 함박웃음을 웃었으니까...

이제는 동영상으로 "함미~~"하며 나를 부른다.

아직은 하부지를 더 좋아하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그 녀석으로 행복하다.


기쁨의 눈물이란?

10월에는...

기쁨의 눈물을 한없이 흘려봤다.

둘째가 넘은 그 높고 높은 산은... 나의 고단했던 24년의 이민생활의 모든 것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으니까...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니던 딸들이다.

그중에서 이번에 둘째에게 붙은 '최초'라는 수식어는 더할 나위 없었다.

이곳 사회에서도 대서특필 될 정도였으니까...

뉴질랜드 교민사회에서도 한국에서도 둘째의 소식은 뉴스~ 그 자체였다.

부모로서... 이 보다 더 기쁘고 감사한 일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또 다른 도전을 한 둘째...

12월...

이제 마지막 달이 되었다.

병원에서 시작된 올 2019년이 막을 내리려고 신의 손이 커튼의 손잡이를 잡고 있을 즈음...

둘째의 새로운 도전은 이곳 사회뿐만 아니라 교민사회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도전은 내년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면... 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겠지만...

그보다는 둘째의 끊임없는 도전을 응원하고 싶다.

지금은... 3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도전장을 내밀고 그 도전장이 받아들여졌으니...

당분간은 4가지 일을 동시에 해나가야 할 것이다.

슈퍼우먼이 되어버린 둘째가... 그 모든 일을 아름답게 하나씩 매듭을 지어 나가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맨 마직막에 남을 그 줄을 붙들고 힘차게 이 사회에서 한국인의 긍지를 이어나가 주기를...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딸들이 산을 넘을 때마다 알게 되었다.

그저 조용히 지지해 주는 것 외에는...

그저 조용히 기도해 주는 것 외에는...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저 조용히 딸들 곁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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