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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Jan 02. 2020

4대가 모인 새해맞이 파티

팔순 증조 할미와 20개월 증손자가 있는 뉴질랜드 어느 하늘 아래...

다사다난했던 2019년이 가고 경자의 시대가 왔다.


우리 집에도 경자가 산다

우리 집에도 두 명의 병자년생 경자가 있고...

그중 한 명의 경자가 높은 산 아래서 그 산을 정복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올 한 해가 두렵고 떨리기도 하고 기대로 마음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산의 정복이라는 것도 그렇다.

삶을 살아보니 그 또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 스스로 길을 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거대한 손에 의해 이끌려 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거대한 손이 우리 집 경자의 손을 잡아주길 기대하고 있다.


자연의 신비로움까지 덧입다

크리스마스 파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첫해의 파티를 하자니 밑천이 딸렸다.

아직도 나의 냉장고에는 그 날의 잔재가 남아있어 새해 첫날의 메뉴를 고르기가 난감했다.

올해는 유난히 이곳 여름 날씨가 너무 가을스럽다.

선풍기는 고사하고 부채조차 제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크리스마스 때도 정원에서 고기나 구워 먹고 싶었지만, 아직 두 살도 안된 손자가 뛰어놀기에는 스산한 바람기가 마음에 걸려 그냥 집안에서 저녁을 먹고 선물을 나누었다.


1월 1일의 첫날 이곳의 날씨는...

전날의 21도에서 갑자기 34도로 뛰었다.

그래서 12월 31일에 가족파티를 하자고 했는데 모두의 스캐쥴이 맞지를 않아서...

그냥 새해 첫날 34도의 폭염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우리 집 정원 한쪽 그늘진 곳에 탠트도 치고 삼겹살을 구워 먹는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했다....

더위가 무슨 상관이랴 싶었고...

이곳에서 처음 느낀 이상야릇한 날씨였다.

온도는 34도였는데... 하늘을 쳐다보면 뿌옇게 뜨거운 태양조차도 달처럼 보이는 그런 날씨...

우리 집 두 경자들의 말로는 호주에서의 대형 화재가 이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라고 했다.

참 자연재해라는 것이 무섭구나 싶었다.


4대가 모여 경자를 맞다

34도에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였다면 힘들었을 신년 파티가 뿌연 하늘이 가려준 태양 덕분에 가능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한쪽의 아픔이 다른 한쪽에선 자연의 신비로움으로 보이고 있으니...


그렇게 우리의 파티는 시작되었다.

셋이서 이민가방을 가지고 이곳에 정착을 했던 24년 전에 비하면 가족이 많이 늘어난 셈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 두 경자들을 자년에 낳았으니 둘이 추가되었고...

함께 따라온 큰딸이 결혼을 해서 손자가 태어났으니 둘이 또 추가되었고...

그렇게 시어머님과 우리 가족 모두 8명의 대 식구가 함께 웃고 떠들며 새해를 맞이했다.


호박잎을 찌다!

특별한 것을 해주고 싶었다.

특별하다는 것이 꼭 고급질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텃밭을 휘~ 둘러보니... 애호박 넝쿨이 제법 풍성한 것이 눈에 띄었다.

매년 애호박을 심으며 호박잎 쌈을 염두에 두었지만, 이곳 날씨가 날씨인지라~ 잎이 풍성하지도, 열매가 튼실하지도 않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올해는 잎 하나는 무성했다.

그래서 호박잎을 연한 것으로 이십여 장 따면서 혼자 콧노래를 불렀다.

'이게 몇 년 만이야~~ 거의 20여 년 만에 첨으로 맛보는 호박잎 쌈 아냐~~ '하면서...

조심스레 냄비에 찜기을 얹고 호박잎을 나란히 깔고... 혹여 덜 쪄질까~ 혹여 푹 쪄질까~ 조심조심 쪘다.

그 정성이야 말로 금메달 감이었고...

시어머님과 남편 그리고 나는...

"어머~~ 어쩜 맛이 이리 좋으냐!!"를 연발하며 호박잎에 삼겹살을 얹어 큰 쌈을 싸서 입을 호강시켜 주었다.

반면...

딸들은... "음~ 먹어도 되는 거겠지??? 맛은... 그냥... 풀 맛?? 우린 그냥 깻잎에 싸 먹는 게 좋아~"라고 했다.

물론...

사위는 손도 안 댔고...

"애구~ 다행이네... 몇 장 안되는데... 모두 좋아하면 큰일이지!!!"

살짝 아쉬웠지만, 이렇게 위안을 삼았다.


철저한 한국인인 우리 셋의 입맛은 무늬만 한국인인 딸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나마 상추에 깻잎을 얹어 양념장에 푹 찍어 먹고, 가지무침을 맛있다고 먹어주고, 텃밭에서 키운 한국 오이로 만든 오이 소바기와 김치를 게눈 감추듯 먹어주는 딸들이어서 좋다.


뒤풀이는 물총 싸움으로...

가끔 보는 증조할머니가 낯선 손자는 배고픈 아빠의 품에서 떨어지질 않아서 사위는 딸이 싸주는 쌈으로 허기를 면했고... 텐트 안에 들어가 휴가를 즐기던 두 이모들은 부랴부랴 조카에게 자리를 내주며 먹던 접시를 챙겨 나오고... 남편은 삼겹살을 굽고 둘째를 가진 큰딸을 위해 스테이크를 재빠른 솜씨로 굽고...

어느 정도 환경에 적응이 된 손자는 아빠와 물총 놀이를 시작했다.

그 놀이에 흥이 난 두 이모들이 끼어들고...

고기 굽는 미션을 클리어한 하부지(남편)는 한 접시로 저녁을 먹고는...

손주의 물총놀이에 히어로로 등장을 했다.

조카의 눈높이에서 물세례도 즐거워하던 이모들과는 달리...

하부지의 장난기는 이제 두 살도 안된 손자에게 천하무적처럼 보였을까?

이모의 뒤를 호기 있게 쫓으며 물총을 쏘던 손자는 하부지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찍이서 헛손질만 해 댔다.

저녁 9시가 가깝도록 훤한 이곳의 여름밤이 어둠이 내리려 할 때까지 밖에서 놀고 또 놀았다.


2020년 경자야 한번 잘해보자~

홀로서기 중인 시어머님이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고....

남편과 내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하길 바라고...

큰딸이 4월에 건강하고 이쁜 손녀를 우리에게 안겨주길 바라고...

사위가 두 자녀를 둔 가장의 무게를 멋지게 견뎌주길 바라고...

일생일대의 도전을 앞둔 경자가 많은 이들이 밀고 끌어주는 그 조화 속에서 높은 산을 가뿐히 넘어주길 바라고...

막둥이 경자가 지금 하는 그 일에 더욱 빛을 발하기를 바라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뒷설거지를 모두 치우고... 고요한 새해의 늦은 밤에 나는 그렇게 나의 소원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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