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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Jan 10. 2020

불금 파티

그리운 그 이름~

금요일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조용할 것 같다.

이제는 희미해진 우리들의 불금파티는 언제부턴가 그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참 아쉽지만, 이제 우리 부부만의 불금파티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온듯하다.

카멜레온이라 불러주오~

바쁘게 살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바쁜 시간을 뒤로하고 이곳 뉴질랜드에서 2년~3년 정도 영어도 배우며 방전된 배터리에 충전을 하고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그것이 24년이 되었고 이제는 이곳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가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그 후에 이곳에서도 먹고는 살아야 해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고단한 이민생활을 해왔다.

그렇다고 뼈 빠지게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매일매일이 바쁜 나날이었다.

처음에는 이 나라에 맞는 옷을 찾아 입기에 급급했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런 옷은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카멜레온처럼 나의 몸 색깔을 바꾸어 가며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생활환경이 바뀌면 바뀌는 데로 또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지금은 삼시세끼 챙기고 텃밭을 가꾸고 이렇게 익어가는 정원을 바라보며 글도 쓰고...

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살면서 얻은 지혜를 나누고 손주를 봐주는 일이 나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지금은 또 다른 색깔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


추억의 불금파티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만의 불금파티는 이곳에 살면서 누리는 호사였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각자의 방에서 할 일을 하던 딸들이 슬금슬금 거실로 모여들었다. 힘들게 부르지 않아도 이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키던 딸들이다.

이른 저녁을 먹었던, 금방 저녁을 먹었던 상관없이 불금파티는 시작되었다.

딸들이 좋아하는 스릴러가 가미된 한국 드라마를 온 가족이 소파를 베개 삼고 깔아놓은 따끈한 온돌 패널 위에서 이불까지 덮고 누워서 TV를 보는 맛이라니...

가끔 이 넓은 집에서 우리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고 하면서도 서로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감힘까지 썼다.

그 주에 방영되었던 정해 놓고 보던 드라마 2편이 끝나고 나면 불금의 하이라이트 야식 타임이었다.

야식의 메뉴는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것으로 그날그날 정해지곤 했는데 라면을 먹는 신을 많이 본 날이면, 어김없이 라면을 끓였고, 자장면을 먹는 것을 본 날은 자장면을 먹었다.

팝콘을 먹기도 했고~ 집에서 만든 육포가 메뉴가 되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단연 라면이었다.

딸들은 내일 얼굴이 부을 거라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멈출 수 없는 먹방 소녀들로 바뀌는 건 순간이었고...

그다음으로 인기 있는 메뉴는 떡볶이였다.

내가 어찌어찌하다 찾아낸 시장 떡볶이 레시피는 우리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남편은 어묵과 면사리를... 딸들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라면 또는 당면 사리를... 나는 떡을... 이렇게 각자 좋아하는 것을 먹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라면이나 당면 사리를 넉넉하게 넣은 주객이 전도된 이상야릇한 떡볶이를 만들곤 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야식을 먹고는 또다시 두 편 정도의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밤 12시가 넘어서야 불금파티는 막이 내렸다.

1년까지만 해도...

매주는 아니어도 가끔씩 불금파티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딸들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아무 때나 모이는 날이 불금이 되어버렸다.


이곳 직딩들의 불금파티

이곳에서 직장을 다니는 딸들은 사실 금요일이면 더 바쁘다.

이곳도 불금파티는 있으니까...


보통 직장에서는 금요일이면 캐주얼한 복장으로 출근을 하는 곳이 많다.

오후 3시가 지나면 일을 하면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금요일의 특별 이벤트 같은 것도 한단다.

울 딸들 이야기로는 회사 직원 휴게실 한쪽에 맥주며 와인이 상자로 쌓여있어서 금요일이면 취할 정도는 아니어도 기분 좋게 한두 잔은 기본으로 마시며 일을 한다고...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부서별로 모여서 술을 마시며 수다타임을 갖기도 하고....

그렇다고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2차까지 가지는 않는다.

딱!! 거기까지.... 퇴근시간이 보통 5시라면 6시 정도까지 놀다가 모두 제 갈길로 간다.


동료가 이직을 하거나 새로운 동료가 오면, 불금 파티를 2차까지 하면서 저녁을 먹으며 떠나는 동료를 배웅하거나, 새로운 동료와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한국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철저하게 각자 먹은 것은 각자 낸다는 점이다.

"오늘은 내가 쏜다~" 거나..."부장님이 내실 거죠?"라는... 멘트는 없다.

회삿돈으로 지불하는 경우가 아니면 개인 돈으로 부하직원이든 동료든 간에 음식값을 대신 내주는 경우는 드물다.

어쨌든 딸들의 경우를 보면 보통 금요일이면 노느라고 더 바쁘다.

나도 가끔이지만, 큰딸과 사위의 각자 직장에서 하는 불금파티로 인해서 손주를 봐주고 느지막하게 퇴근을 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남편과 불금이라 늦게까지 문을 여는 쇼핑센터에 가서 저녁을 먹고 쇼핑몰을 한바퀴 휘리리~ 돌기도 한다.

우리 둘에게도 불금인 셈이다.

불금파티가 불러온 야식타임

딸들이 어릴 적부터 거의 매주 불금파티를 했으니까... 그 세월이 길다면 길다.

그 후유증으로 우리 가족은 아직도 야식을 끊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시동생네가 2박 3일 정도 우리 집에 머문 적이 있는데 시동생이 "이 집은 저녁을 먹고 나면 그때부터 다시 또 먹기 시작하네... 와~~ " 그러면서 두 조카를 보며 "이렇게 먹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랐냐? 검사 좀 받아봐야 하는 거 아냐?"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오랜만에 왔으니까 더 챙겨주려고 한 것도 있지만...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에... "라면 끓일까? 떡볶이 먹을래?" 했으니까 심하긴 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원조 불금파티 스케줄이었으니...

지금도 가끔 저녁을 먹고 한국 프로그램을 보면 왠지~~~~ 라면이라도 끓여야 할 것만 같다.

시동생 말처럼 그렇게 먹는 거에 비하면 우린 모두 나름 홀~~~ 쭉 하다.

평소엔 먹는 양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유독 불금파티만 되면 먹고 또 먹는다.

이것도 연구대상이긴 하다.

정말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일까?

큰딸이 결혼을 하고 불금파티 인원이 한 명 줄었고...

두 딸들이 모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불금파티가 줄어들었다.

모임이 끝나고 9시가 넘는 시간에 들어와 피곤해하는 딸들은 쉬는 겸 해서 우리와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슬며시 올라가곤 한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휴가철일 때는 요일과 상관없이 야식타임을 하기도 하고 한국 프로그램 몰아보기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울 딸들이 정말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일까? 하는...

두 딸들은 가끔 스케줄이 없는 토요일이면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주섬주섬 먹거리를 챙기고 거실 커튼을 닫아 극장 분위기로 만들고는 네프릭스를 본다.

장르는 다양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아니다.

어쩌면 둘은 한국 드라마가 그닥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와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아는 딸들의 따뜻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그리운 불금파티

딸들이 어릴 적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쳐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시작된 불금파티였다.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는 집에서 잠깐 한국어를 하는 것 외에는 한국어를 사용할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금요일을 정해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예능프로그램을 봤었다.

다양한 한국의 드라마는 두 딸들에게 자연스럽게 한국의 사회문화를 직장문화를 가족문화를 낯설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빠지지 않고 본 것이 인기가요 같은 한국 아이돌들의 음악프로그램이였고...

한류는 이곳에서도 불고 있기 때문에 두 딸들에게 한국계라는 자부심도 심어주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나서 자란 두 딸들에게 완벽한 한국인이길 바란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바램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얼큰한 국물 맛을 아는 두 딸이 있어 행복하고...

공감하며 같이 앉아 한국 드라마를 보는 딸들이 기특하고...

불금파티를 한다고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라도 내려와서 마주 앉아 주는 딸들이 좋다.


점점 빛바래지는 불금파티지만, 추억만으로도 고맙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아직은 "집 가요~"라는 카톡도 "오늘은 늦어요~"라는 카톡도 오지 않았지만,

예전처럼의 불금파티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혹시나~해서 라면이 있는지를 챙겨보고, 떡볶이 떡이 냉동실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양념을 미리 만들어 둘까 고민한다.

오랜 습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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