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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Feb 17. 2020

외할머니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요즘이 어떤 세상이라고~

나는 22개월 차 할머니다.

물론 손자 녀석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로 따지자면 10개월이 추가돼서 32개월이 되는 것이고...

할머니...

참 정겨운 이름이다.

그 정겨운 이름을 이제 누군가가 내게 불러주고 있다.

손자 녀석이 나를 '함미~~~~'라고 불러주고 있으니까...

나는 할머니일 뿐~ 외할머니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나는 내가 외할머니라고 불리는 것이 영 개운치가 않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한국어가 낯선 우리 딸들과 손주에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라는 단어는 아예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외(外)... 바깥에 있다는 의미가 있으니...
외할머니라는 의미가 바깥에 있는 할머니... 즉 먼~~ 할머니...라는 것이 되지를 않는가
요즘이 어떤 세상이라고....

시대가 변했으니 그 시대에 맞게 언어도 변해야 한다는 게... 평범한 한 할미의 주장이다.

어쨌든...

나는 외할머니라고 불리는 건 원치 않는다.

다행히도 사둔이 중국계이니... 중국어로 할머니, 할아버지란 단어를 사용하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한국인이니... 한국어로 할머니, 할아버지란 단어를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위는 그냥  "Grandma~ Grandpa~"라고 두 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이 나라 식으로 아들과 소통하고 있고...

큰딸은 아들에게 우리를 "할미~ 하부지~"라고 부르게 한다.

큰딸에게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영어식으로 'Grandmother=할머니', 'Grandma=할미'라고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할머니도 좋고 함미도 좋다.
외할머니라고 부르지만 말아다오~
나는 남이 부러워하는 부자다~

나는 딸만 셋이다.

그래서 더 '외'라는 단어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지금 시대야 말해 무엇하랴마는...

우리 때도 아들만 둘이면 50점.... 딸만 둘이면 100점... 아들, 딸이면 200점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어떤 지인이 나는 딸만 셋이니 150점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점수로 이렇게 환산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어쩌면 이것이 이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가 싶다.

또 다른 누구나 다~ 아는 우스게 소리~

'아들만 있으면 길거리에서 죽고... 딸이 하나면 싱크대 밑에서 죽고... 딸이 둘이면 비행기 안에서 죽고....'

나는 아무래도 딸이 셋이니 비행기 안 아니면 크루즈 안에서 객사를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우스개 소리지만 그 말 안에는 뼈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집 아들(남편)만 해도... 겉으로는 참 무심해 보이니까...

남편은 겉바속물이다.

겉은 바삭거려도 속은 여리고 물렁하다.

그럼에도 우리 시어머니는... 엄마에겐 딸이 있어야 한다고 아들 앞에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무심한듯하고 살갑지 않은 아들에 대한 원망이 살짝 섞여있지만, 눈치 없는 아들은 그럼에도 묵묵부답이다.

옆에 있는 나만 민망할 뿐!


사둔 네도 아들만 둘이다~

처음 상견례를 하고 나오면서 안 되는 영어로 둘이 한참을 속닥속닥했는데...

로빈... 울 사위의 엄마... 즉 사부인은 딸만 셋인 내가 참 부럽다고 했었다.

아들만 둘 이어서 아들들은 엄마인 자기 속을 몰라준다고...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부모를 대신해서 어렸을 적부터 부모의 입과 귀가 돼서 사업을 도왔다는 말수 적은 사위가 내 눈에는 참 듬직해 보였는데... 엄마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대가 변했다.

우리 할머니의 세대만 해도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소박을 맞기도 했고, 씨받이니 뭐니 참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들이 버젓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딸만 낳았다고 해도 아들만 낳은 것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시대가 되어버렸으니 그 시절 설움을 받았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그럼에도 여전히...

친가가 있고 외가가 있으며...

설에도 시댁을 먼저 가느니... 친정을 먼저 가느니... 며느리들의 독박 설맞이가 스트레스로 온다느니... 하면서 여전히 한국에서의 딸들의 세상은 회색빛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심코 사용했던 말부터 개혁이 필요한 때가 왔다.

아니 시대는 이미 왔는데 시행이 너무 늦어버렸다.

할머니면 그냥 할머니지... 친할머니는 뭐고~ 외할머니는 뭐란 말인가?

큰딸의 선택~

세 딸 중에 큰딸만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를 즈음해서 딸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 크리스마스 파티할 거지? 점심? 저녁?"
"저녁??? 날씨 봐서 바비큐???"
"오키... 그럼 로빈네는 점심에 가야겠네~"

그리고 며칠 후에 새해에도 나는 카톡으로 세 딸들의 스케줄을 조정? 해서 2020년 1월 1일 저녁에 모두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으로 새해맞이를 했다.

물론 큰딸은 먼저 로빈네를 갔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간다는데...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 싶어서...

설날에도 모두 바빠서 그냥 어머님과 우리 셋이서 조용하게 작년에 먼저 가신 아버님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자식들에게 오라 가라 하지 않았다.

세상이 변했는데 그 변한 세상에 무색하게... 더군다나 태평양을 건너 살면서까지 끌고 오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내게 며느리가 있었다고 해도 그랬을 것 같다.


큰딸 입장에선 친가와 외가... 시댁과 친정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여전히 큰딸에겐 '우리 집'이고, 사위인 로빈이 살던... 우리식으로 시댁은 '로빈네 집'이 라고 표현한다.

아직 두 딸들이 남았으니 그들은 또 어떻게 표현을 할지 궁금하지만...

친가와 외가로 나누지는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의 명절 풍속은 딸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추석에는 송편을 먹고 설날에는 만둣국을 끓여주며 한국의 명절에 대해 이야기해 주곤 한다.

그러나 친가와 외가, 시어머니와 친정엄마... 그런 구분은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냥 양가... 우리 집과 남편집이 있고... 양쪽 엄마가 있고 더불어 'Grandma~ 와 할미'가 있을 뿐...

그러므로...

나는 외할머니라고 불리지는 않을 것 같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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