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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Feb 03. 2020

너 말이 좀 짧다?

손주 녀석에게 까지 들킨 걸까~

손주는...

할미에게 배신자라고 고발을 당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도 여전히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녀석의 눈빛에선 나에게 대한 일말의 양심도 없어보이니까 말이다.

그 녀석은 지금도 여전히 배신자 손주다.

손주와의 일상 속으로...

하부지랑 데이케어로 손주를 데리러 간다.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22개월이 다가오는 손주는 친구들과도 곧잘 웅얼웅얼거리며 잘 논다.

물론 나는 손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

한국말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해도 긴가민가할 판에 영어로 하는 아가들 언어라니...

큰딸과 사위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길게~~~ 대답을 하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어쨌든...

손주는 할미가 데리러 왔다고 해서 반갑게 맞이해 주진 않는다.

녀석이 어찌나 도도한지... 흘깃 보고 지가 하던 짓을 계속하곤 한다.

한참을 "이제 집에 가야지~~~"해야 그제야 어슬렁어슬렁 마지못해 두 팔을 벌리는 손주다.

그러다가도 하부지를 보면 바로 할미의 품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하부지 목을 꼭 끌어안는다.

'음... 나라를 구했구먼... 장군은 아니었을 것 같고... 뭐였을꼬??' 싶다.

할 말은 하는 할미~

그렇다고 손주의 사랑을 구걸하는 그런 줏대 없는 할미는 아니다.

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해 주려고 하면 싫다고 생떼를 놓다가 발로 할미를 찰 때가 있다.

그러면 가차 없이 엄한 목소리로 혼을 낸다.

"노!!!! 세비... 노!"

손주는 무안했는지, 아니면 할미에게 서운했는지... 눈이 빨개진다.

그럼에도 배알 딱지가 있는 녀석은 눈물을 꾹 참고 절대 울지 않는다.

만만치 않은 녀석이군 싶다.

그래도 눈치 빠른 손주는 할미에게 두 번 다시 버릇없게 굴지 않는다.

멋진 녀석의 싹수가 보인다.

할미의 사랑을 알기는 할까?

할미집 텃밭은 없는것 빼곤 다 있는 만물상이다.

늦여름인 2월이 접어든 텃밭엔 여전히 손주의 몫이 있다.

딸기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고, 조롱조롱 달린 배가 있다.

한국에서 파는 배는 'Nashi Pear'라고 하고, 이곳에서 'Pear'라고 하는 배 종류는 조롱박처럼 생긴 타원형으로 딱딱할 때 따서 익혀서 먹는 아보카도처럼 후숙과일이다. 어찌보면 후숙과일이라서 미리 따는것이 아니고, 따서 소비자의 손에 들어갈때까지의 기간을 생각해서 미리 따는지도 모르겠다. 딱딱할 때는 떫은 맛이 나지만 살짝 말랑말랑 해 지면 물기가 촉촉한 속살의 단맛이 일품이다.

3년전에 우리집 정원에 심은 배나무는 올해 처음으로 열매를 조롱조롱 매달았다.

새 먹이가 되지 않도록 망으로 쳐 두었다가 배가 나무에서 다 익어 뚝! 망 안으로 떨어지면 얼른 나가서 꺼내온다. 알맞게 익어 떨어진 배의 맛은  사다가 익힌 배하고는 비교불가다.

배가 제법 많이 달려 요즘은 과일을 따로 사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손주몫은 따로 있다.

손주를 데리러 가는 날에 망으로 떨어진 싱싱한 것으로 챙겨 간다.

물론 몇 알 안되지만 빨갛게 익은 딸기도 손주 몫이다.

내 새끼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병아리처럼 입을 벌리며 받아먹으니 손주에게 가져갈 수밖에...

요즘 자전거에 빠져있는 손주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바로 자전거로 옮겨 타고 하부지와 동네 한 바퀴를 돈다.

할미는 4시가 다 된 시간이라 손주가 배 고플까 봐 데이케어에서 집으로 가는 그 짧은 시간에 차 안에서 딸기를 먹인다.

더러운 손으로 집을까 봐 포크까지 챙겨서...

한입에 쏙 들어갈 크기로 잘라 통에 담아온 딸기를 꼭 찍어 포크를 손주 손에 쥐어준다.

어찌나 딸기를 좋아하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는다.

먹을 땐 할미~ 놀 땐 하부지~

할미는 곧 맛있는 맘마라는 공식이 여전히 손주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하부지랑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들어와선 바로 샤워를 하고 손주 전용 식탁의자에 의젓하게 앉는다.

그러면 할미는 물기 묻은 손을 빠르게 말리고는 손주 입맛에 딱 맞는 할미 표 저녁을 손주 앞에 대령을 한다.

어느날은...할미 표 영양 듬뿍 어른 사이즈 삼각김밥 하나 뚝딱~ 먹고...

배나무에서 갓 떨어진 달콤한 향이 나는 작은 배 하나를 껍질째 뚝딱 먹었다.

그럼 손주의 배는 영락없는 맹꽁이 배로 둔갑해 버린다~

하부지랑 신나게 놀다가도 배를 썰면... "Pear~"하며 할미에게 달려온다.

다 먹곤 다시 그 똥똥해진 배를 내밀고 하부지랑 총싸움을 하며 깔깔거린다.

물론 먹을 거 다 챙겨 먹은 후엔 할미는 안중에도 없다.

하부지에겐 문장을 할미에겐 단어만...

목욕을 시키면...

샴푸를 더 달라고... "more~"

샤워기를 계속 틀어달라고.... "more~"

나오지 않겠다고... "No~" 한다.

물론 나의 대답은 "그만~~ No more~' 다.

나는 가능한 한 길게~ 한국말로 손주와 대화를 한다.

용케도 할미 말을 알아듣는지 곧잘 할미 말에 행동으로 답을 하는 손주다.

아마도 텔레파시가 통하는가 싶다.

쪼르르 하부지에게 달려가는 손주는... " @$!@#$%^&*~ " 하며 길게 대화를 시도한다.

하부지도 손주식 영어를 알아듣기 만무하지만 그나마 그럴듯하게 영어로 답을 하고 한국어로 해석까지 덧붙여준다.

할미나 하부지나 손주가 한국어도 좀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가능한 한 한국어로 이야기하려 애를 쓴다.

그럼에도...

손주는 아는 것일까?

하부지에게는 문장처럼 느껴지는 긴~ 웅얼거림을...

할미에게는 정확한 짧은 단어를 하니 말이다.

너 말이 좀 짧다?

내가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너 할미에겐 말이 좀 짧다?"

녀석은 할미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여전히 짧게 읊조린다.

"함미~~~ more~"

생존 언어는 아주 확실하다.

일 년 뒤, 이 년 뒤... 그 후의 손주와 할미의 대화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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