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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Apr 07. 2020

Lockdown 보고서 (3)

그럼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코로나바이러스로 뉴질랜드가 조금씩 들썩이던 2월 말....

둘째를 가진 큰딸은 4월로 예정된 출산일에 맞춰서 3월 초부터 다니던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데이케어에 다니던 손주를 봐주고 있었던 나는 때 이른 휴가를 맞은 셈이 되었다.

막달에 배는 무섭게 나왔지만 운전도 하고 12kg이 넘는 아들을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들어 안는 천하무적 딸이었기에 휴직을 한 날부터 더 이상 친정엄마의 도움은 필요 없는 듯 보였다.

그래도...

2월 28일에 첫 확진자가 나오자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염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혹시 폭발을 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서였던듯하다.

아무리 천하무적 딸이라고 하더라도 출산을 하게 되면 손주는 아무래도 내 차지가 아닐까...

그러니 나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행을 좋아하는 뉴질랜더들이 하나둘씩 미국에서... 유럽에서... 귀국을 하면서 확진자가 늘기 시작하더니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에서는 100명 이상 모임을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교회 등 정기 모임을 해야 하는 단체에서는 발 빠르게 모든 모임을 잠정 중단한다고 했고... 락다운이 시작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모든 모임은 취소가 되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10대와 20대들의 경거망동은 이곳에도 존재했지만, 일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정부 방침 준수'였다.

딸에게 온 SOS...

딸의 둘째 출산예정일은 손주의 출산일과 같은 날인 4월 10일이었다.

4월 5일이 사위 생일이고 4월 10일이 손자의 생일이니... 태어날 손녀의 생일이 사뭇 궁금한 터였다.

3월 26일 락다운이 시작되고 조금은 심란할 즈음.... 토요일 오후에 전화가 왔다.

의사가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고... 저녁 6시까지 병원에 가야 하니까 엄마가 와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했다.

딸을 셋이나 낳은 나였다.

물론 세 번의 출산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와 셋째가 한꺼번에 태어났으니까...

그것도 이민을 와서 다음 해에... 문화도 언어도 낯선 이곳에서 아시안이 별로 없던 시절에...

쌍둥이를 유도분만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방법으로 자연분만을 했던 나다.

그럼에도 딸이 둘째를 출산한다는 소식은 담담한 성격의 나를 떨게 만들었다.

부리나케 딸네서 잘 준비에 손주 저녁과 우리 부부의 저녁까지 챙겨서 딸네로 갔다.

락다운중의 출산은...

진통이 온 것은 아니었다.

양수가 조금 부족해서 태아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유도분만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 의사의 결론이었다.

저녁 6시에 입원을 해서 상태를 보고 아무래도 다음날에 출산을 할 것 같다는 딸의 설명에 이곳은 걱정 말고 아기나 잘 낳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사위와 딸이 병원으로 가고 우리 부부와 손주 그리고 두 멍이들이 덩그러니 남았다.

입원한 딸과 쉴 새 없이 카톡을 주고받고...

사위는 락다운 기간이라 병원에 환자가 아닌 보호자가 있는 것을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출산하고 1시간 정도 후에는 나가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함께 있어도 된다고 했다며, 출산 후에 2주간 휴가를 갖기 전에 마무리할 일이 있다고 회사 컴퓨터와 침낭 그리고 저녁을 챙기러 집으로 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다음날 딸은 둘째를 낳았다.

둘째라서 진통이 오고 한두 시간 만에 낳았다고 했다.

손녀가 태어났지만 우리는 병원으로 갈 수도 없었고 그저 사진으로만 세상으로 나온 손녀와 반가운 인사를 했다.

예정일보다 2주 정도 일찍 태어난 손녀는 2.8kg에 50cm로 작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할미가 되니 참 푼수다.

눈도 아직 못 뜨는 아기가 내 눈에는 너무 이쁘니 말이다.

출산 그리고 할미와 하부지들의 깊은 사랑...

크라이스트처치 우먼스 병원에서 출산을 하고 다음날 퇴원을 한다고 하더니 다시 산후조리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2~3일 더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병원은 보호자 출입이 안되기 때문에 사위는 둘을 들여보내고 문 앞에서 헤어져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왔다.

일요일에 아이를 낳고, 몇 시간 후에 다른 병원으로 옮겨 이틀밤을 보낸 후  화요일 아침에 퇴원을 하기까지 딸은 혼자 덩그러니 병실에 남겨졌던 거다.

병원에서 나온 식사는 오성 호텔급이었지만, 맘은 편하지 않았다는 것이 딸의 후기다.

집에 있는 아들도 보고 싶고, 무엇보다 가족이 그리웠을 것이었다

이쁜 손녀가 집으로 왔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알려왔다.

슈퍼에 가서 고기를 사고 계란을 사고... 미역국을 끓이고 장조림을 하고... 붓기에 좋다는 호박죽을 해서 딸네로 향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먹을 것을 챙겨주고... 손녀를 먼발치에서 보고.... 그리고 돌아 나왔다.

어차피 2박 3일 그 집을 드나들었고 손주와 함께 잠을 잤지만....

락다운 기간이 아닌가?

혹시나 싶은 심정에... 우리는 정부의 룰을 지키기로 했다.

시댁에서도 매일 음식을 해서 문 앞에 가져다 놓고 간다고 한다.

할미들인데... 하부지들인데... 어찌 손녀가 보고 싶지 않을까?

그럼에도 시국이 시국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먼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어쩌면...

꼭 안아주고 볼을 비비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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