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갔을 때...
뜬금없이 친정아버지가 남편에 물었다.
"자네는... 먹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나? 살기 위해 먹는다고 생각하나?"
남편은...
"살아있으니까 먹는 거 아닐까요?"
친정아버지는 남편 말을 혼잣말로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나도 맞는 말이구나 싶었다.
멈춰버린 시간에도 주방은 돌아간다...
내가 사는 뉴질랜드는 지금 락다운 중이다.
기본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외에는 모두 멈춰버렸다.
가능한 한 차를 타고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슈퍼도 집 앞에 있는 곳으로 가고 산책도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다.
혹여 이웃을 만나더라도 2m의 간격을 두고 인사를 나누고...
원래 조용했던 동네가 더 조용해졌다. 간혹 들리던 자동차 소리조차 숨을 죽이고 있으니까...
눈을 감고 있으면... 새소리와 바람소리만이 아직은 시계가 돌고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재택근무를 하는 딸은 방에 틀어박혀 일을 하느라 나오지 않고....
남편은 늘 그랬듯이 자기 방에서 온 세계 동향을 파악하느라 분주하고...
나와 시어머님만 주방으로 세탁실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12시에 점심을 먹으러 내려와서 1시에 모두 모여 정부에서 발표하는 코로나 뉴스를 비롯한 정부 브리핑을 듣고 나면 또다시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5시가 좀 넘으면 모두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다시 모인다.
모두 멈춘 듯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엔 변함이 없다.
변한 것이 있다면...
주방뿐... 모두 재택근무를 하는 이 와중에... 나는 주방에서 아주 눌러앉아 재택근무를 제대로 하고 있다.
딸에게 들켜버렸다...
아침이면 내가 만든 수제 미숫가루에 꿀 한 스푼을 넣은 것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그것은 락다운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리고 딸들 점심 도시락은 안 싸준 지 꽤 되었으니, 우리끼리 매일매일 간단하게 빵으로 점심을 먹었고...
그것조차도 지인들을 만나 밖에서 먹는 날이 많았다.
저녁은... 모임이 많은 딸들은 일주일에 3번 정도 집밥을 먹었는데...
락다운이 된 지금은 삼시 세 끼를 모두 집에서 먹어야만 한다.
락다운이 되고 일주일쯤 되었을 때...
둘째가..."엄마가 매일 돌려막기?를 하는구먼..." 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일주일에 몇 번 저녁을 먹는 것이어서 늘 새로운 메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의미리라~
"그럼 뭐~~ 매일 먹는 게 그게 그거지... 별것 있나?"
대답은 이렇게 해 놓고도 영~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 언제 또 오겠어!!!
생각해보면... 딸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함께 살고는 있지만 늘 함께 밥을 먹은 것은 아니었으니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마지막이어야지 싶다. 또 이런 비상시국이 오면 큰일일 테니...
그래서 이것저것 해 먹어보자고 맘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 점심 메뉴를 생각하고... 점심을 먹으면 저녁에 뭐 먹을까 고민하고...
산책을 하다가 도토리를 주워왔다. 도토리묵을 쑤어 먹을 요량으로...
요즘이 이곳은 가을이라 청명한 가을 햇살에 주어온 도토리를 말려서 한 톨 한 톨 겉껍질과 속껍질을 까서...
하룻밤 물에 담가 두었다.
다음날 도토리를 믹서에 아주 곱게 갈아서 고은 베주머니에 넣고 꼭 짜고... 찌꺼기에 물을 더 붓고 조물조물한 후에 또 짜고... 그렇게 좀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반복했다. 그리곤 하룻밤을 두었더니 하얀 도토리 전분과 밤색의 도토리 물이 층을 만들었다. 물을 국자로 조심조심 퍼내고... 다시 물을 좀 붓은 후에 묵을 쑤었다. 깐 도토리가 냉면 그릇으로 한 대접이면 3번은 나눠 먹을 만큼의 도토리 묵이 만들어졌다.
네모로 썰어 양념장과 먹기도 하고 국수처럼 가늘게 썰어서 비빔국수처럼 만들어도 먹고...
탱글탱글하고 쌉쌀한 도토리 묵은 이곳에서 태어난 딸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고 부풀리고 흑설탕에 계핏가루로 소를 만들어 호떡도 만들었다.
1.5kg이 밀가루는 30개의 호떡을 허락했고...
먹다 남은 호떡은 몇 개씩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먹으며 정말 그 맛이 죽여줬다~~
밀가루에 베이킹파우더... 계란을 넣고 압력밥솥으로 스펀지케이크도 만들었다.
매일 별미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 재미가 아주 솔솔 했다.
배달음식이라도 허락해 주었으면...
부대찌개, 샤부샤부, 스테이크, 카페 메뉴, 분식집 메뉴...
그렇게 2주가 지나고 지금 3주째다...
오늘 점심은 빵을 버터로 굽고, 베이컨에 치즈를 올린 계란 프라이를 해서 해결을 했다.
1시 정부 브리핑을 보면 물었다.
"저녁은 삼겹?"
모두 "오~~ 좋지!!!" 한다.
참... 먹는 것 빼놓고는 관심을 둘 곳이 마땅치 않은 때이구나 싶다.
모두 잠든 밤... 내일 저녁 메뉴를 골똘히 생각하던 나는 슬며시 일어나 노란 콩을 불려놓았다.
콩을 갈고... 짜고... 끊이고... 그렇게 순두부 찌개를 해 먹어야지...
다음 주 월요일이면 다음 단계에 대한 정부 발표가 있다고 하는데...
제발~~~
음식 배달 서비스라도 허용됐으면 싶다.
맥도널드, 버거킹, KFC... 직접 들어가서 먹는 건 안되더라도 차로 주문해서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영영 안들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더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