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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Apr 13. 2020

Lockdown 보고서 (5)

손주와의 꿈같은 2박 3일

뉴질랜드는 지금 국경은 봉쇄되었고, 들어오는 자국민들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2주간의 격리 중이며... 전 국민은 먹거리를 사러 가고 집 근처 산책을 하는 것을 제외하곤 모두 집에서만 지내야 하는 락다운 중이다....

이 와중에 손녀가 태어났고 나는 이제 손자와 손녀를 둔 행복한 할미가 되었다.

더불어 손주와의 2박 3일 보낼 수 있는 보너스까지 받았으니...

Day -1

3월 28일이었다.

큰딸이 오후 6시까지 병원으로 들어오라고 했다며 "엄마~ 올 수 있어?"라고 전화가 왔다.

아직 예정일이 2주 정도 남았고 진통도 없지만, 의사의 판단으로 아기를 낳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고...

그때가 락다운이 되고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집에 남은 딸들과 어머님의 저녁을 준비하고, 우리 부부가 손자와 함께 먹을 저녁 챙기고...

남편은 손주가 자면 집에 와서 자기로 하고 나는 손주와 함께 자야 하니 이것저것 챙겨서 딸네 집으로 향했다.

6시가 다가왔다.

태어날 아기에게 입힐 옷과 손자가 쓰던 신생아용 카시트를 챙기고.... 이제 병원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지만 큰딸과 사위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며칠 있으면 2살이 되는 손자는 엄마 아빠를 떨어져 잠을 자본 적이 없으니 이 젊은 부부는 자못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나는 별걱정을 다 한다고 타박을 하며 이곳 걱정은 말고 아기 낳을 준비나 잘하라고 하며 등을 떠밀었다.

둘은 병원으로 출발을 하고... 할미와 하부지 그리고 손자 세비, 리카도와 너텔라... 두 멍이들이 남았다.

손자 세비는 눈치가 빤했다.

이제 엄마와 아빠가 없으니 자기의 세상이 온 것이었다.

만만한 하부지 손을 끌고 팬츄리로 가서 젤리와 쪽쪽 빨아먹는 요구르트 그리고 건포도로 저녁을 대신했다.

가끔 주말에도 둘이 볼 일이 있으면 세비를 봐주러 가곤 했기 때문에 아마도 세비는 금방 엄마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엄마도 안 찾고 하부지와 로봇 놀이도 하고,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면 놀고 또 놀았다.

8시면 자는 아이가 9시가 넘어도 쌩쌩했다.

할 수 없이 내가 업어서 재우기로 하고... 12kg이 넘는 손주를 업고 허리가 아프도록 온 집안을 서성이며 재웠다.

엄마를 기다리는지 선잠을 자는 세비와의 긴 싸움을 한 끝에 침대에 누이고... 남편은 문단속을 해 주곤 내일 아침 일찍 데리러 오기로 하고 집으로 갔다.

그렇게 난생처음 세비와 함께 한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Day -2

갑자기 울기 시작한 세비 때문에 잠에서 깼다.

당연히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옆에 쿨쿨 자고 있는 할미를 보자 가슴이 덜컹했을까?

"마미~ 마미~"하며 서럽게 울었다.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고... 기저귀를 갈고 물을 좀 먹이고 자장가 클래식을 좀 크게 틀어주었더니 울음이 좀 잦아들었다.

아무리 할미가 잘 봐주더라도 엄마만 할까 싶었다.

나는 잠자리가 바뀌기도 했고 멍이들도 딸과 사위가 안보이니까 연신 낑낑거리며 찾아 돌아다니고... 세비까지 한두 번 깨서 엄마를 찾고...

어쨌든 이래저래 잠을 못 자다가 잠깐 잠이 들었나 싶었더니...

세비가 "함미~~"하며 나를 부르며 배시시 웃었다.

내가 "세비~" 하자 "얍~~~~ 함미 데어~~(there~)" 하며 거실 쪽을 가리킨다

6시도 안됐는데 세비의 하루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남편도 우리가 걱정이 되었는지 7시가 조금 넘으니까 오고... 우리는 멍이들 아침을 챙기고 가든에 내 보내서 아침 산책 겸 용변을 해결하도록 한 후에 두 멍이들을 거실에 남겨두고 우리 집으로 세비를 데리고 왔다.

이모들이라고 해도 너무 바빠서 자주 보지 못한 세비는 유독 둘째 이모를 무서워? 했고, 머리가 하얀 증조할머니를 낯설어했다.

할미 집이라고 해도 늘 엄마와 함께 였던 세비여서인지 함부로 물건을 건드리지도 않고 아주 얌전하게 놀았다.

네프릭스에 나오는 세비가 좋아하는 로봇 만화영화는 보던 안 보던 하루 종일 틀어놓고, 세비는 하부지와 자기는 좋은 편 로봇을 나에겐 악역의 로봇을 주곤 "뿌웅~~~ 빵빵!!!!" 하며 놀자고 했다.

야속한 세비는 재워주고 먹여주는 할미보단 잘 놀아 주고받아주는 하부지가 더 좋은 모양이었다.

하부지처럼 뒷짐을 지고 걸었고... 하부지의 트레이드마크인 양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계단 내려오기에 도전을 하다가 안 되겠는지... 다시 바지춤에서 손을 빼고 내려오기도 했다. 참 손주 보는 앞에선 행동이며 말투도 조심해야겠구나 싶었다.

눈을 맞추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세비의 하부지 사랑은 2년이 다 되도록 변함이 없다.

정말 '얄미운 녀석'이다.

배신자 손주를 한번 더 고발해야 할까? 싶다.


점심을 먹고 아무래도 두 멍이들이 걱정이 돼서 세비를 데리고 다시 세비 네로 갔다.

노심초사 둘째 손주의 소식을 기다릴 즈음, 카톡으로 갓 태어난 손녀를 안고 있는 큰딸의 사진이 왔다.

아무리 손녀가 이뻐도 자식만 할까?

딸의 얼굴에 눈이 먼저 가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싶어 울컥 눈물이 났고, 마음을 조금 추스르고 나서야 손녀의 얼굴이 보였다.


락다운으로 인해서 보호자는 병원에 머물 수 없다고 하는 통에 사위는 눈시울이 붉어져서 집으로 돌아왔고, 예정일보다 빨리 출산을 하는 통에 밀린 일을 마무리 져야 2주간의 출산 휴가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세비가 집에 있으면 일하는데 집중이 안될듯해서 하룻밤은 우리 집에서 세비를 재우기로 하고 세비의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일은 해야 하고 아들을 보내는 것은 못 미덥고... 이 두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사위의 눈길을 외면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왔다.

그렇게 세비는 난생처음으로 집을 떠나 할미 집에서 슬립오버를 했다.


그날 밤....

세비는 우리 집을 완전 접수를 했다.

일층에서만 쭈뼛거리던 세비는 온데간데없고... 부엌에서부터 화장실이며 세탁실이며 일층의 모든 곳을 탐색한 후에는 2층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하더니... 2층의 모든 방을 한 번씩 훑어보고는 또 오르락 내리락을 했다.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시어머니까지 우리 셋은 넉다운이 되었고... 팔팔한 이모들까지도 기진맥진했다.


Day -3

밤 11시까지 지칠 줄 모르고 노는 세비에게 새로운 닉네임이 생겼다.

세비자이저~

아래층에서 놀다 잠든 세비는 하부지와 할미 사이에서 하룻밤을 자고 어김없이 6시에...

"함미~" 하며 눈을 떴다.


얼마만일까?

우리는 아침부터 침대에서 아침 어린이 프로그램을 봤다.

세월이 흘렀을 텐데... 낯익은 프로그램은 여전히 아이들의 동심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래... 여긴 뉴질랜드지...'싶었다.

'유행이 뭐야?? 그런 단어도 있어??' 하는 그런 나라가 바로 뉴질랜드다.


아침부터 세비는 또 로버트가 나오는 만화영화를 틀어 달라고 했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도 밖에 나가서 딸기를 따자고 했으며... 할미가 도토리묵을 할 요량으로 주어온 도토리를 가지고 놀기도 했고...

여전히 하부지와 지는 정의로운 로봇을 나는 악역의 로봇을 주며 "붕~~ 띠요 띠요~"를 하며 놀았다.


오후 늦게...

사위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일을 했다보다.

세비를 데리러 오겠다고 하는 걸... 차분히 일을 마무리하라고 하고 우리가 저녁을 먹여 세비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세비도 엄마와 아빠가 그리웠나 보다.

"세비 저녁 먹고 집에 갈까? 세비 하우스?" 했더니... 얼른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세상에~ 어린것이 얼마나 맘고생을 했을까? 가여워라~"

시어머니는 그런 세비가 측은해하셨다.

싸 놓은 짐에서 로봇을 다시 꺼내려는 세비에게..."이제 집에 가야지?" 했더니...

녀석은 주섬주섬 다시 가방 안에 장난감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맘이 짠~ 했던지...

할미와 하부지는 "계를 탔네 계를 탔어~" 하며 나란히 손주를 가운데 두고 잠이 깰세라 조심조심 자는 모습을 뚫어져라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건만....

야속한 세비는... 오매불망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듯하다.


집으로 돌아간 세비는... 아빠와 거실에서 'Movie night~'을 한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두 부자의 아름다운 모습은 손주를 보낸 허전한 내 마음에 미소가 번지게 했다.

이렇게 손자 세비와의 꿈같은 2박 3일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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