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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Sep 06. 2020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걸까?

아픔을 공유하는 초능력이 필요해~

한 달 동안 누가 보면 중병에 걸린 환자인 줄 알았을 거다.

병원 가기 하루 전에는 누워서 이불조차 다리로 걷어낼 수가 없어 남편 손을 빌려야 했으니까.

이불을 걷어주는 남편에게 "해 주는 김에 다리도 좀 올려줘~" 했다.

남편은 "그 정도야?" 하며 힘없이 늘어져있는 내 다리를 올려 구부려 주었고...

그제야 몸을 옆으로 돌려 간신히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다는 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였다.

힘겹게 두 다리를 방바닥에 붙이고 엉거주춤 옷을 갈아입고...

또 다칠세라 난간을 잡고 한 칸 한 칸 조심스레 이층에서 내려왔다.


부천의 어느 하늘 아래 계시는 친정아버지... 

친정아버지....

나에겐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다.

(요건 울 친정엄마가 보면 좀 곤란한데...)

남태평양을 건너 이민을 와서 벌써 25년째다.

다른 사람들은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면 눈물이 난다는데... 나는 엄마와는 신나게 수다를 잘 떨다가도...

아빠와 통화를 하려면 가슴이 막혀와서 울음이 터져버린다. 지금도....

30대에 이민을 왔다. 친정아버지에게 아빠라고 부르던 시절에...

그리고 나는 어느덧 염색으로 흰머리를 가려야 하고 손자와 손녀가 있는 할미가 되었다.

이민 온 후에도 여러 번 한국에 갔었고 작년 3월에도 다녀왔음에도 마치 나의 25년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 

나는 여전히 수화기 저편으로 - 보청기를 끼셨어도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잘 듣지도 못하시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의 친정아버지께..."아빠~~~ 나야 미형이~"라고 한다. 물론 아빠도 "어~~ 미형이야? 어구... 오랜만이네..." 하신다.

애굽 왕 바로 앞에서 했던 야곱의 말처럼... 험악한 인생을 살아오신 아빠다.

80 중반까지의 삶이 그러하셨으니 몸인들 온전할까 싶다.

늘 나에게 슈퍼히어로 같았던 아빠는 어느새 서너 걸음만 걸어도 주저앉고 마는 힘없는 노인으로 변해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 힘드시다고 엉거주춤한 다리를 이끌고 텃밭으로 나가시곤 하셨는데... 계단을 내려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의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었다.

그럼에도 그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생활이 얼마나 불편한지... 막연하게 알 뿐이기에... 조심해서 다니시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만 하고 돌아왔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계신 시아버지까지...

시아버지...

이곳으로 이민을 오면서 시댁 식구 대부분이 함께 이주했다.

물론 시간차가 있었지만...

시부모님과는 결혼을 해서 살면서도... 그리고 이민을 와서도... 함께 아니면 따로였지만 늘 가까이 살았다.

시아버님은 2년 전  구십 가까이 이 세상의 희로애락을 뒤로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내 입장에선 친정부모님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한 세월이었다.

중풍으로 오래 고생하시던 시아버님은 이곳에서 직장암 수술도 하셨고 돌아가시기 5년 전쯤에는 뇌수가 차서 수술을 받으시고 그 후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게 됐고... 휠체어가 아니면 바깥출입도 힘들었다.

남편은 자기보다 몸무게가 더 나가는 아버지를 부축해서 휠체어에 태우고 다시 차에 옮겨 태우고... 그래 가면서까지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쇼핑몰에 모시고 나가곤 했다.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고 함께 쇼핑을 하는 것이 유일한 아버지의 취미생활이셨으니까...

그러다가 더 이상 시어머니가 옆에서 보살피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우리 집 앞 요양원에 옮겼고 그렇게 몇 개월 계시다가 떠나셨다.

시아버지의 삶도.... 그 시절 모든 아버지의 삶이 그랬듯이.... 험악한 삶이었다.


두 분의 모습이 오버랩이 되어...

이번에 내가 다리가 아파서 고생을 하면서... 침대에서 힘겹게 내려오면서.... 

시아버님이 안간힘을 쓰시면 침대를 내려오시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또 나는... 갑자기 한기가 몰려와 따끈한 온돌패널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거리다가 몸을 일으키느라 뱅글뱅글 제자리 돌기를 하며 온 몸을 두 팔에 의지해서 일어나면서...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억장이 무너졌다.


긴병에 효자가 없다고...

어느 땐가... 딱 한번... 남편 없이 나 혼자 시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쇼핑센터로 모시고 다닌 적이 있다.

딱 한번!!!

'의자에 앉아계신 아버지를 휠체어에 옮기고, 휠체어를 뒤로해서 5계단을 내려와, 차로 옮겨 태우고...

병원에 가서 다시 내렸다가 진료 후에 다시 태우고, 쇼핑몰에 가서 다시 내렸다가 볼일 다 보고 다시 태우고... 시부모님 집에 가서 다시 내려서 휠체어를 뒤로 해서 5계단을 끌어올려 현관으로 들어갔다'

간단한듯해도... 차에 태우고 내리는데 아버지의 몸무게를 온전히 나의 몸으로 지탱을 해야 했고... 계단을 하나씩 휠체어 바퀴로 올리고 내리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시어머님과 함께 였지만...

그 후로... 이 스토리는 나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이 정도로 열심히 잘~~ 모셨노라하는 나의 공치사로는 아주 적합한 스토리가 아닌가?

내입장에서 나의 힘들었던 것만 빨간 줄 쫙~~~ 친 에피소드였던 거다.

며느리에게 온몸을 기댈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정은...

그렇게 돌아다니시는 걸 좋아하셨는데... 좁은 침대에, 의자에, 방안에서만 있어야 했던 시간들을...

그래서 아들 내외 차 소리가 그리도 반가웠을 아버지의 그 마음은 전혀 내 계산에는 없었던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와의 시간들이...

지난 한 달 동안 쓰나미처럼 죄송함으로 그리움으로 내게 몰려오곤 했다.

의자에서 조차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내가 아닌 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했고...


아픔을 공유하는 초능력이 필요해...

남편은...

"그 정도로 아프면 말을 했어야지!!!" 하며 이와 중에도 나를 나무란다.

"참내~ 걸어서 그러려니 했지??? 그리고 원래 여자들은 애를 낳아서 이 정도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냐!!!" 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다리를 가지고 텃밭에 나가서 씨를 뿌리냐??? 그게 말이 돼~ 어쩜 장인어른하고 그리도 똑같은지..." 한다.

조용히 계시는 부천의 아빠까지도 소환이 되었다.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구부정 엉거주춤 걸으시면서도... 봄이어서 씨 뿌릴 준비를 해야 한다고 모두 말리는데도 나가시는 아빠를 보고 왔으니 무슨 말을 하랴~

나도 절름거리는 다리를 끌고 그동안 눈길을 안 줬더니 무성하게 올라온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새들이 흩을세라 잘 덮어놓으면서... 내가 아닌 아빠를 떠올렸으니까...

"아~~ 아빠도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싶었다.

농사꾼은 봄을 놓칠 수 없는 거니까...


어쨌든...

슈퍼우먼 같았던 마누라를 잠시라도 잃은 남편은 투명스럽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면서도...

도와주려 애쓰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럼에도 나는 더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픔을 공유하는 초능력이 필요하다니까... 내가 작은 소리로 좀 힘들어~하면 아주 아픈 건가 봐... 자기 하곤 아픔의 색깔? 게이지? 가 다른 것 같아..." 했다.

물론 남편은 '너 잘났다~~~'라는 눈빛으로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고...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걸까?

나의 삶도 험악? 했다.

험악이라는 것이 꼭 거칠게 살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의 삶이라도 인생을 뒤돌아보면... '나의 삶은 꽃길이었어~'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만큼은 꽃길이고 싶은 소망을 갖고 사는 게 아닐까?

철없던 시절은 그 시절대로, 결혼을 해서는 또 그 시절대로, 이민까지 왔으니... 땅 설고 물설고 문화까지 어색하고 말도 잘 안 되는 그런 세월 속에서 시부모님과 살아가면서 딸 셋을 키웠으니... 나름 평범한 삶은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보다는 자식을 보며 살았다.

그래도 시부모님은 곁에 계시니 매주 같이 나가 점심도 먹고 쇼핑도 하며 지냈지만, 태평양을 사이에 둔 친정부모님께는 바쁘다는 핑계로 시차가 잘 안 맞는다는 핑계로 전화조차 자주 하지 않았다.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될 거란 걸 알면서도... 여전히...


철이 드는 건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손주가 둘이나 생겼고... 고 놈들 재롱떠는 맛에 사는 할미가 되어서야...

아니...

내 몸이 아프고 나서야... 과속으로 달리던 차에 급브레이크를 밟고서야...

주위를 돌아보게 됐다.


앞으로 점점 더 성숙해질 것 같다.

그때 더 후회하며 애달파하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야겠다.

부천 어느 산자락의 친정아버지가 벗들과 함께 가꾼 텃밭... 함께 했던 벗들이 하나둘 하늘나라로 떠나고 이제 두 분만이 남았다고... 뒤에 보이는 것은 버려진 집을 개조한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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