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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Feb 12. 2021

트롯의 회상

나에게도 흐르는 트롯 DNA

음치다. 나는.....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아본 적도 없다.

물론 한두 번 형제들과 우르르 노래방엘 가본 적은 있지만 앉아서 듣기만 했지 불러본 적은 없다.

이 정도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노래도 어느 장르를 불문하고 없다.

그래도 한창 시절 음악실기 점수를 낮게 받은 적도 없다.

무식하면 용감? 하다고... 열심히 연습해서 크고 당차게 부른 탓에 나의 열심히 가상했던지... 늘 만족한 점수를 받았던 나다.


흥이 많던 할아버지~

내 기억 속의 할아버지도 음치셨다.

흥이 많아 음주가무를 좋아하셨지만, 노래를 잘 부르시는구나 하고 느낀 적은 없었다.

사실 내가 음치라고 해서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조차 구분을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도 그 시절 할아버지께서 흥얼흥얼 하시던 노랫가락이 귓가에 맴돌곤 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노래이면서 우리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셨던 노래이기도 하다.

서울과 본가 연천을 오가며 생활하시던 할아버지는 바쁜 농촌의 일상과는 무관하시다는 듯 봄이면 봄꽃놀이를 여름이면 물놀이를 가을이면 단풍놀이를 다니셨다.

젖먹이 손까지 빌려야 한다는 그 시절에 좋게 말해서 멋지게 사셨던 할아버지시다.

매일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트롯은 늘 온 집안에 울려 퍼졌고, 못마땅한 아버지의 표정은 어린 내 마음조차 서글프게 했다.

철이 들면서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의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시절 다 그랬듯이 젊어서 놀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았었으니까....

지금은 앞의 가사보다는... 뒷 가사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늙어지면 못 노나니~'

그렇게 흥이 많으시던 할아버지는 일흔다섯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지금 생각하면 한창 나이셨는데....


나의 아빠!

아빠도 음치다.

음주가무와 친하지 않으셨다. 나는 평생 친정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종가였던 우리 집엔 늘 술상이 벌어지고 손님이 끊이지 않았지만, 아빠가 그 술상에 앉아 노래를 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친척분들은 일어서서 어깨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했을 때도 아빠는 그냥 조용히 앉아계셨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그 흥에 대한 반작용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의 DNA에도 분명 그 흥이라는 것이 있었음에도...


내가 결혼을 하고 신림동으로 이사를 하셨을 때였던 가? 아니면 신림동에서 다시 부천으로 이사를 하셨을 때였던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빠는 용돈을 쪼개고 또 쪼개서 모은 비상금으로 엄마에게 노래방 기계를 선물했다.

결혼을 해서 7년 만에 이민을 왔으니... 그 사이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 나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서 특별한 날이 아니면 친정엘 가지 못했었다.

어느 해 추석 우리 모두는... 아빠가 선물한 노래방 기계를 틀고... 돌아가면서 노래도 하고... 정말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날도 남편과 나는 박수만 쳤고...

음주가무와는 친하지 않았던 아빠의 파격적인 선물에 다들 놀라워했지만, 그건 우리 엄마에 대한 아빠의 무한 애정이었다.


엄마에 대한 추억~

엄마는 음치가 아니다.

시대만 잘 만났어도 트롯 디바가 되었을 엄마니까...

엄마가 부르는 '산장의 여인'은 노래를 모르는 나도 하던 일을 멈추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꺾기가 예술이었다.

간드러진 목소리는 이미자가 왔다가 울고 간다고들 할 정도였으니까....

할아버지가 틀어놓는 노래가 딱히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보다도 엄마가 같이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더 듣기 좋았었다.

앞마당에 돗자리가 펴지고 상다리 휘어지게 음식이 차려진 후 집에서 만든 술로 취기가 오른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한가락씩 뽑을 때, 종손 맏며느리인 울 엄마가 늘 첫 번째였다.

앙코르까지 서너 곡을 부르고 나서야 다음 사람이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타고난 가수셨다.

그때 물끄러미 엄마를 쳐다보던 아빠의 시선은...

지금도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역시 내 마누라~~ 최고여~~' 하는 눈빛....

못 말리는 아버지~

꽃 같은 스물셋에 결혼을 해서 평생을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아온 엄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칠십 평생을 한집에서 모시고 살아온 그 시대의 억척같은 며느리다.

그래서일까 엄마에 대한 아빠의 배려는 특별했다.

계모임에서 관광버스로 단체관광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열일을 다 내려놓고 두 분이 같이 가시던지 아니면 엄마라도 갈 수 있도록 했으니까...

아마도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의 숨통을 좀 틔워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관광버스에서의 에피소드는 글을 쓰는 지금도 나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어느 해던가 친정부모님은 지인들과 한려수도 관광을 갔다고...

모두 관광버스를 타고 버스가 떠나기 전 가이드가 일정을 이야기해주고 드디어 신나는 관광길에 올랐단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버스가 달리는 동안 그 좁은 통로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당연했었다.

관광버스 춤~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고 마이크를 잡은 가이드가 흥을 돋우며 누가 노래를 하겠냐고 했다고...

울 아빠~ 손을 번쩍 들며.... "여기요~~ " 가이드가 마이크를 넘겨주자~

"우리 마누라가~ 노래를 엄청 잘합니다~" 하며 받아 든 마이크를 넘겨 주었다고~

그랬다.

아빠에게 엄마는 어느 가수보다도 더 멋진 아빠만의 가수였던 거다~

태평양을 건너온 트롯 DNA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좋아했던 아빠도 음치지만 흥이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한국민족이 원래 흥이 많은 민족이어서 일까?

음치인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딱히 좋아하지 않던 내가...

요즘 트롯에 빠져버렸다~

미스터 트롯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각종 트롯 경연 프로그램도 보고 있다.

어느 정도 유명한 노래가 아니면 처음 들어본 노래인데도~ '참 좋네~'하는 생각이 든다.

옆에 계신 시어머니가 한 말씀 거든다.

"이제 너도 나이가 들었나 보네~ 트롯의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 걸 보면..." 하신다.

그런가?

나보다 한술 더 뜨는 남편은 어머님이 좋아하시니까 그냥 옆에서 같이 보는 수준이지만, 트롯 경연자들의 등수까지 딱딱 맞춰가며 훈수를 두고 있다.

이제 모두 분가를 해버리고 우리 셋이 달랑 남았다.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나....

저녁을 먹고 우린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TV 앞으로 모인다.

사연까지 구구절절한 한 맺힌 그들의 노랫소리에 눈물까지 훔치면서 본다.

어쩌면 그렇게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꽂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태평양을 건너와 사는 우리지만, 우리의 정서는 결코 바뀔 수 없는가 보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 셋은 티브이 앞에 모였다.

새로운 감동에 눈물 훔칠 기대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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