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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인제주 Oct 11. 2018

딱히 제주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제주도 시골 민박집 주인장의 일상 이야기 (02)


살면서 딱 한 명 유명인을 만날 수 있다면 '사카모토 류이치'였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런 마음이다.  예전부터 팬이긴 했지만 그의 작품 활동 이력을 줄줄 꿰고 있다거나 작품세계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할 정도로 대단한 팬이라고 할 수준도 아니고, 실제로 눈 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사...사카모토 씨인가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도 인사말이 끝나면 어떤 이야기를 이어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렇지만 여하간 단 한 명이라면 꼭 그였으면 좋겠어서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면 유창하게 인사할 수 있도록 틈틈이 웅얼웅얼 입에 외운 문장을 올려 보기도 하고, 조금씩 늙어가는 얼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생각날 때마다 사진을 찾아보기도 한다. 정말 희한한 취미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부산국제영화제 기사가 쏟아지면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내한한 것을 알게 되었다.

"기사 봤어? 사카모토 류이치가 한국에 왔더라고"

"그러게. 그럼 뭐해. 어차피 여기선 만나지도 못하는걸."

괜스레 아쉬워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다 문득 깨달았다. 그는 어차피, 내가 서울에 있던, 부산에 있던, '여기라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게. 이건 딱히 내가 제주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닌데도, 섬 생활은 때때로 알 수 없는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 있다. 


가장 쉽게는 흔한 TV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볼 때 예전 같았으면 휴대폰을 열어 정보를 추가 검색하거나 메모장에 가게를 스크랩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하염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거나, 딱 지금 같은 계절에 열리는 다양한 음악 페스티벌 기사를 볼 때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던가 하는 경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서울에 살았을 때 곱게 적어두었던 리스트의 맛집들을 시간을 내 부지런히 찾아다닌 것도 아니었거니와, 야외 음악 페스티벌은 춥고 복잡하고 늦게 끝나는 것이 귀찮아 정작 한 번도 가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저 섬 생활을 하고 있다는 박탈감에서 오는 괜한 불평인 것이다.


섬이라고 해도 이 곳은 제주도다. 남들은 시간을 내 일부러 찾아오는 곳들을 눈 앞에 두고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부러워하며 투덜거리고 있다니 꽤나 호사스러운 불평이네. 지금도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매며 제주도 생활을 동경하는 수많은 이들을 두고 말이다. 뭐, 딱히 제주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이런 걸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라고 했다. 옛 어르신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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