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시골 민박집 주인장의 일상 이야기 (07)
"엄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밑에서 1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나 '항상 성실하라'를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저의 장점은 항상 긍정적으로 주변을 밝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곤 했습니다...어쩌고 저쩌고"
내 입사지원서는 어땠더라. 이 정도로 진부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얌전히 학교나 다니던 인생이니 내용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도 같다.
입사 이래로 14년의 회사 생활 중 거의 8년을 채용 담당자로 살았으니 내 손을 거쳐간 이력서는 부풀릴 것도 없이 수십만 장은 족히 된다. 아닌 게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열리는 해외 채용설명회가 마무리되고 나면 한 번에 만건이 훌쩍 넘는 이력서가 모이는 것은 일도 아니고, 채용공고나 헤드헌터를 통해서 들어오는 이력서들, 거기에 신입 채용은 말할 것도 없으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수십만이 과장은 아니라는 이야기.
경력사원은 말 그대로 경력 - 해 왔던 일을 중심으로 평가를 진행하니 일 중심으로 간결하게 정리된 이력서가 대부분이지만, 신입사원 채용은 사실 말이지 대부분 '고만고만' 하니 자기소개서와 입사지원서를 중심으로 1차적인 서류 판단을 하게 되지만 솔직히 말해 자기소개서는 얼마나 자기를 제대로 소개하고 있는 걸까, 늘 의문이었다.
입사 이래로 이직을 한 적이 없으니 자기소개서를 쓴 것은 대학 졸업반 시절이 마지막이었는데 그때의 자기소개서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정확한 내용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자기소개서 속의 사람이 '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물세 살의 내가 능청스럽게도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소개서 속의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그랬으면 좋겠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나 가 아니었을까.
사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나처럼 긍정적인 사람도 아니고 주변을 편안하게 만드는 밝은 사람도 아니다. 유려한 화술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술술 이끌어 내는 사람도 아니며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매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을 갖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타인이 내 삶에 깊게 관여하는 것도 달갑지 않은 타입이다.
그럭저럭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한 자리를 차지하고 지내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오니 알게 된 것들이다. 남보기에 그럴듯한 직장에서, 심지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인 '인사담당자'라는 직업을 얻고 긴 시간을 일해온 동안 알던 나는 아마도 '그래야만 하는 나'였던 모양이다. 손바닥 반도 안 되는 자그마한 명함 한 장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와 하루하루 알아가는 중이다.
덧. 요즘 젊은 사람들이야 영리하니 그 시절의 나처럼 머르레하지는 않겠지만 자기소개서 안의 '나'를 굳이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회사에 꼭 '밝고, 긍정적이고, 쾌활한 사람'만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