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시골 민박집 주인장의 일상 이야기 (06)
지난 글에도 날씨 이야기를 했지만 이번에도 또 날씨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전국적으로, 특히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큰 눈이 온다고 하는데 여기는 지난밤부터 주룩주룩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물론 한라산에는 제법 눈이 내려서 눈꽃도 예쁘게 피어 있는 데다 지금도 눈이 오는 모양이지만 이 곳은 해안가 마을이라 이 정도 날씨에 눈이라니 어불성설이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가 두 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불경기에 이도 저도 아닌 날씨까지 겹쳐 어딜 둘러보아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으니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다. 특정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캐럴과 크리스마스 케이크(!)을 좋아하니 이 정도면 적당히 썸 정도의 느낌이라고 해 두자. 사실 말이지 진짜 연애보다 썸 단계가 더 좋지 않나. 설레고.
크리스마스 캐럴의 순진무구함 만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음악이 또 있나 싶다. 따뜻한 조명 아래 캐럴이 흐르는 공간은 그 어떤 걱정도 없을 것만 같다. 마이클 부블레의 포근한 목소리도, 데이비드 포스터의 세련된 느낌도, 영원한 고전인 빙 크로스비와 팻 분의 캐럴도 좋다.
케이크는 고소한 슈톨렌이나 진하게 달콤한 부쉬 드 노엘, 아니면 하얗게 눈이 내린 것만 같은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좋겠다. 어찌 되었건 초를 꽂을 수 있는 한 없이 공들인 예쁜 케이크가 있으면 된다.
그렇다고 크리스마스이브를 밤새도록 왁자지껄한 파티로 보내야 성이 차는 타입은 또 아니어서, 가장 좋아하는 방식은 24일 밤 캐럴을 들으며 와인 한 잔에 간단한 안주 정도 곁들이고는 신성한 의식처럼 <러브 액츄얼리>를 감상하고 '와, 역시 좋네' 흐뭇해하고는 얌전히 자고 일어나 조용한 크리스마스 아침에 전 날 먹다 남은 던킨 브라우니 초콜릿 케이크를 판 채 들고 포크로 퍼 먹는(!) 것이라 십 년 이상의 시간 동안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고수하는 루틴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네. TMI.
여하튼 올해는 마을 친구들과 조금은 특별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메뉴도 고민하고 케이크도 고르며 괜스레 신나 하는 중.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