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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eric Kim Aug 31. 2019

불의 힘을 믿다- 아이슬란드

혹독한 환경과 더불어 사는 지혜


"오! 마이!! 갓!!!"

남편 표정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앞만 보며 운전에 집중하는 남편 옆에서 뚫어져라 지도만 보고 있던 내가 놀란 눈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또 무슨 일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차가 옆 차선 차랑 살짝 부딪혔단다.

놀란 토끼눈을 한 이방인 둘, 너무나도 불쌍한 눈빛으로 옆 차 운전자를 바라봤다.

손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며, 날씨만큼 쿨한 아이슬란드 아저씨는 괜찮으니 그냥 가라는 사인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차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인사했다.


전날 렌터카를 받으러 가는 순간부터 크고 작은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케플라빅(Keflavík) 공항 안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렌터카 업체 간판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공항 안내센터에 물어보니, 우리가 예약한 곳 사무소는 공항 밖에 위치해 있고 그쪽에서 매시간 픽업 차량이 올 거니까 놓치지 말란다.


그렇게 도착한 렌터카 사무소에서 이번엔 오토차량이 다 나가서 스틱형 차량밖에 렌트가 안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던 게, 남편은 스틱형 차 운전을 못한다.

그리고 나는...

십수 년째 소중히 간직만 해온 장롱면허가 갱신 기간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 지내다, 벌금까지 내고 갱신한 나다. 그런 내가 아무리 스틱 면허 소유자라 한들 무슨 수로 운전을 하겠는가?!

난감해하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호탕한 성격의 렌터카 사장님 우리더러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또 기다렸다.

우리에게 여행 중 무언가를 위해 기다리는 일은 이제 일도 아니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오토형 차량을 받았다.

내비게이션 옵션을 추가할 거냐는 질문에, 종이 지도를 너무 사랑하는 남편이 너무나 자신 있게 괜찮다며 거절했다.

남편은 내비게이션이 거짓말을 잘한다고 믿는 일인이다.


그랬던 남편이 지금 두 시간이 넘도록 레이캬비크(Reykjavík) 시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날 호기롭게 내비게이션 사양한 남편은 몇 킬로미터마다 놓인 장애물 같은  회전로터리(roundabout)를 통과하는데 집중하느라 지도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렵게 시내를 빠져나온 후에도 남편은 갓길이 거의 없는 좁은 폭의 도로 위를 운전하느라 풍경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낯선 곳에서의 운전은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어렵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위험한  아이슬란드 길. 한눈 팔지 말고 갈 길 제대로 가라고 한다. 갓길이 없으니 쉬지말고 가라 한다. 바람이 불면 차가 흔들렸다. 길이 인생을 닮았다.


불의 힘을 이용하는 지혜- 스칼홀트(Skálholt)


8세기(1056년~1785년)를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정치. 종교. 문화적으로 아이슬란드의 중심이었던 곳이자, 아이슬란드 최초의 학교가 설립된 곳.

그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던 배경에는 스칼홀트의 지리적 특성도 한몫했을 듯하다.

타 지역에 비해 다양한 종의 나무들이 눈에 띄었던 스칼홀트 지역을 산책하던 중 발견한, 아이슬란드의 다른 지역과 다른 점, 그린하우스.

그린하우스로 연결되어 있는 둥근 파이프관 틈새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열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 덕분에 그 오랜 옛날부터 이 추운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게 가능했을 터다.

자연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건 인간의 권능이겠지.


'믿음' 무인 식료품점. 그린하우스에서 재배되었을 다양한 채소와 각종 잼들. 다 팔리고 없는 과일 바구니. 착한 가격이 적혀져 있다. Note: Please pay here.


온천수에서 반신욕의 매력에 푹 빠진 백조. 백조가 떠 있는 물은 따뜻한 빛이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아이슬란드의 보석- 블루라군(Blue Lagoon)


창문을 살짝 열었을 뿐인데, 그 틈을 타고 매캐한 유황 냄새가 차 안 공기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거무충충한 용암 덩어리와 암석들로 둘러싸인 에메랄드 빛 물 웅덩이 곳곳에서 고운 색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

용암의 열기로 뜨거워져 온도가 240°C를 넘는 땅 속으로 부터 끌어올린 후, 발전기를 돌려 에너지를 만들고, 그 부산물로 나온 물을 이용해 이 나라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재탄생시킨  재활용의 극치- 블루라군.

자연의 힘과 더불어 사는 지혜의 끝판왕은 단연 이곳인 듯하다.


물 웅덩이 너머로 지열 발전소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보인다. 버려져야 했던 물은 '블루라군'으로 환골탈태 후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버려진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


중세 시대 가장 넓은 세상을 경험한  여성:
Guðriður þorbjarnardóttir (구드리두)


"그러지 말고 나와서 이것 좀 봐봐!"

삐친 척 조수석에 앉아 꼼짝 않고 있는 나를 향해 남편이 손짓했다.


이 곳에 주차하기 딱 2분 전,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배도 고파서 한창 예민해지던 순간에, 달리는 차 앞으로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한 쉼터가 나타났다.

'저기서 차 잠깐 세우고 샌드위치 좀 먹자!'라고 한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직진한 후,

아무도 멈출 것  같지 않은 허허벌판에서 차를 세운 남편에게 심통이 나 있었다.

쉼터에 이미 차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어서 그곳에 멈추고 싶지 않았단다.

운전할 때는 운전하는 사람이 무조건 '갑'인 것을.

'을'인 내가 꾹 참고 이해하자 마음먹고, 나가서 만난 자그마한 동상! 


한 손으로는 아이를 어깨에 얹어 잡고, 다른 손으로는 배의 앞머리를 잡고 서 있는 여인은...

북미 대륙으로 건너가 출산한 최초의 백인 여성, 구드리두와 그녀의 아들 스노리(Snorri).

그녀의 이름은 '구드리두'(980-1050). 동상이 위치한 지역에서 태어난 구드리두는 그녀 생애 총 여덟 번의 항해를 떠나 유럽 전체를 두 번 이상 여행한, 중세 시대 최고 여성 여행가였다.

존경 어린 눈빛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여기서 멈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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