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neric Kim Aug 27. 2019

공기를 팝니다- 아이슬란드

지구가 아닌 듯 지구, 트롤(troll)이 사는 곳


'이건 탄산음료 마신 후 보다 더 시원한 느낌인데?! 콧 속이 뻥 뚫렸어!!!'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ík)의 keflavik 공항에 내리자마자 누가 먼저이랄거 없이 우리 입에서 자동으로 나온 감탄사였다.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하기 힘든, 순도 100%의 산소라고 해도 믿을 그렇게 청량하고 부드러운 공기는 처음이었다. 아이슬란드에 가장 많은 세 가지, 돌, 바람, 비가 만들어낸 완벽한 조합물.

뉴스가 미세먼지 농도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될 때면 무거운 마음으로 회상하곤 한다.

그때의 그곳, 아이슬란드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걷다- 비크(Vík)

잔뜩 흐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태세였지만 비크에서는 딱 하루 머무르는 여정이었기에 숙소 도착 후 백팩만 내려놓고 바로 비크 시내 중심가로 발길을 옮겼다.

숙소 도착 전에 들렀던 Reynisfjara Black Sand Beach에서 이미 강풍과 추위에 익숙해진 터라 비가 아직 내리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그렇게 길을 나섰다. 사실 물의 나라 아이슬란드, 그 안에서도 가장 비가 자주 그리고 많이 오는 곳이 비크인 관계로 지금 당장 비가 안 온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절대 지레짐작하면 안 되는 곳이었다.


숙소 앞에 펼쳐진 바다를 그냥 지나치긴 아쉬운 마음에 빛의 속도로 발도장을 찍고 돌아서서 '단 한 가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두리번거리며 우리의 목적지를 찾던 중, 어느 상점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게 보였다. 총 300가구 남짓 되는 이 작은 마을에 줄을 선 가게가 있다는 게 참 신기해서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대체 어떤 맛집이길래 기다리는 사람이 저렇게 많지?' 궁금한 마음에 다다른 그곳 간판에 적힌 글자- Vínbúðin-

문 앞에 붙어있는 오후 영업시간표에 16:30~18:00라고 적혀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픈 시간이 되고 점원이 잠겼던 문을 열자마자 줄 서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갔다. 가만 듣고 보니 주변에서는 주로 두 가지 언어가 들렸다. 영어, 러시아어...

'세계 어디를 가나 여행자들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건 딱 정해져 있구나!'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관광객이었고 그네들이 사고자 기다렸던 것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어로 빈부딘(vínbúðin): 주류 판매 면허점(liquor store).

그리고 그곳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했다.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지정된 주류 판매점에서,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만 술을 살 수 있게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유명 맛집도 아닌 주류 판매점 앞에 줄이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춥고 바람 불고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으니 다들 몸과 마음을 데워 줄 연료가 필요했을 듯.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오후.  창문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Vík í Mýrdal Church.

미션을 완수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비는 그칠 기미가 안보였다.

'너희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저녁 못 먹을지도 몰라. 그러니 무조건 지금 나가야 해. 내가 이 우산 빌려줄 테니 쓰고 다녀와.'

우리에게 동네 레스토랑을 추천해준 호스텔 주인, 스웨덴 출신 '안나'가 못 나가고 있는 우리가 걱정되었는지  크고 긴 우산을 들고 방 문 앞에서 얘기했다.

아이슬란드에서 예약한 숙소들 중에 유일하게 공동 부엌이 없었던 곳이 이곳인데, 하필이면 비도 그날이 제일 심하게 내렸다.

방수 바지, 점퍼로 완전 무장하고 우산도 파라솔 사이즈나 되는 걸 들고나갔건만... 빗살무늬토기에 새겨진 그 모양대로 들이치는 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숙소 앞 도로 하나 건넌 후, 100m 남짓 걸어서 도착한 레스토랑. 완전 비 맞은 생쥐꼴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같은 교회가 보이는 풍경.

이보다 더 맑고 깨끗한 날이 있을까?!

어제의 궂은 일기에 사과라도 하려는 듯 눈부시게 찬란한 햇살이 창으로 들어왔다.

호스텔 뒤로 난 언덕길을 걸어서 마을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올랐다.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던구나.'

오지 않았다면, 오르지 않았으면 놓쳤을 순간의 감동을 오래오래 기억하고파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바다와 맞닿은 하늘. 하늘과 손잡은 해안 절벽.


트롤(troll)이 사는 곳- 포싸툰(Fossatún)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2012), 토르(Thor : The Dark World,2013), 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  2005) 등등. 수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스크린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 영화 거장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창조적 영감을 맘껏 뿜어내는 나라.

혹독한 날씨와 성난듯한 화산 지형들, 모든 것을 쓸어내려버릴 듯한 웅장한 폭포수,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듯 느껴지게 하는 잿빛 빙하들.

태초의 지구의 형상이 이러했을지 아니면 지구가 생을 끝나는 날 이런 모습일런지.


영화의 장면들과 그것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떠올리며 조금은 무거운 생각의 바다에 잠시 빠져있던 중에 우리가 도착한 다른 세계.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어도 왠지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는 트롤(troll)들이 사는 곳.

포싸툰에 도착했다.

바이킹의 역사와 늘 함께한 스칸디나비아 신화에 등장하는 트롤 이야기를 현실 세계로 끄집어낸 것은 Steinar Berg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한다. 트롤의 신화가 강을 따라 흐르는 포싸툰에 트롤 공원(Troll's Park)을 만들고 트롤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며 자기만의 인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 한다.

그가 만든 트롤 공원 안에는 다양한 트롤 이야기와 트롤 조각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산책로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들이 있었다. 어느 한 소재에 몰입하여 창의적인 작업 활동에 온 에너지를 쏟는 Steinar 같은 사람들을 나는 존경한다.


인간을 닮은 트롤. 나쁜 놈, 무서운 놈, 착한 놈. 다 있다. 좋은 대접받으면 못된 트롬도 순해진단다. 나쁜 트롤만 있는게 아닌데, troll(inernet) 뜻이 마음에 걸린다
개구쟁이 아이들을 잡아다가 가마솥에 넣어 끓여 먹는 Grýla


트롤 이야기 속 Grýla가 개구쟁이 아이들을 가마솥에 끓여 먹었다면,

우리는 그날 저녁 아이슬란드의 주 단백질 공급원인 양고기를 냄비에 넣고 끓이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만나는 핑크돼지 사인의 체인 슈퍼마켓 'Bonus'에서 산 양고기.


사실, 아슬란드 도착 첫날부터 양고기 요리를 해 먹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Bonus에 가서 고기 코너를 둘러보던 우리는 우리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싼 북유럽 물가 감안하더라도 양고기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쌌다.

경험을 위해 쓴다고 해도 너무 큰 금액에 우리는 구매를 포기했었다. 그 후로도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양고기 가격을 확인했었는데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그럼 양고기를 어떻게 사 먹어? 마트 고기 코너에 제일 많은 게 양고기인 걸로 봐서는 이곳에선 양고기가 메인이 맞는 것 같은데... 희한하네.'

이렇게 생각하며 포기하고 있다가, 포싸툰 숙소에 오기 전에 들른 마트에서 드디어 작게 소분된 양고기 발견. 기쁜 마음에 덥석 집어 들었다. 며칠을 찾고 찾다가 드디어 발견한 합리적인 가격과 사이즈의 양고기가 냄비에서 끓고 있었다.


"웁스..."

한창 끓고 있던 양고기 국물을 맛보던 남편 입에서 탄식의 소리가 나왔다.

"왜? 뭐가 잘못됐어?"

"음... 국물이 짜도 짜도 너무 짜!"

"그럼 물 더 넣어서 좀 더 끓여봐!"

그렇게 물 더 붓고 푹 끓이길 수차례 반복하던 우리.

"짜도 그냥 먹자! 먹고 나서 생수 좀 많이 마시지 뭐~"

너무 배가 고팠던 나는 그냥 먹기로 결정하고 고기를 한점 씹었다. 이건 질겨도 이리 질길 수가 없다.

짜고 질긴 이 양고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우리는 알아냈다.

아이슬란드 양고기의 비밀을.

먼저, 가격이 비쌌던 건 이 나라의 가격 표시 방식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그런 거였다. 여기서는 큰 고기 덩어리 전체 무게가 가격표에 표시되어있는 거고 원하는 양을 말하면 그만큼을 잘라서 그 중량만큼의 금액이 계산되는 시스템이었다.

그걸 몰랐던 우리는 눈에 보이는 숫자만 보고 의례 그 숫자가 고깃값인가 보다 짐작했던 거다.

다음, 그 고무줄 같았던  양고기는 우리의 요리 방법이 잘못되었던 걸로 결론이 났다.

염장 양고기였으니 분명 아이슬란드 전통 방식의 요리법이 있었을 텐데 그걸 무시하고 우린 무조건 물 붓고 끓인 거다. 압력솥이나 고온의 오븐에서 요리해야 했을 듯.


양고기에 대한 무수한 의문을 해결하고 난 후  제대로 산 제대로 된 양고기를 제대로 요리했더니,

인생 최고의 양고기 요리가 나왔더라는.




작가의 이전글 노르웨이에서 한 달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