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neric Kim Sep 02. 2019

중국인 단체 관광객과 마주하다-옐로우스톤

애국심이 강한 남자, 그가 사랑한 나라


울타리가 쳐 저 있는 들판을 달리던 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급히 멈춰 선다.

트럭에서 서둘러 내리는 남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의 오른쪽 손에는 소총이 들려있다.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가며, 남자가 울타리 근처 들판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뒤로 물러서!"

"다들 뒤로 물러 서라니까! 저기 저것한테 잡혀 먹히고 싶어?"

한 손으로 들판 한가운데서 인간 따위엔 관심 없는 척하며 땅을 파헤치고 있는 회색곰을 가리키며, 잔뜩 성난 목소리로 외친다.


"별로 사나워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 무리 중 한 여자가 말한다.  남자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중국어로 뭔가를 설명한다. 남자가 나타나기 전 하던 이야기로 돌아간듯한 모양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가 폭발하듯 말한다.

"저기 저 울타리 아래부터, 반대편 저 울타리까지 전부 내 땅이야! 그리고 뒤로 보이는 저 산도 다 내 소유야!!! 알겠어?"

"당신들은 지금 내 사유지에 불법 침입한 거라고!!!

알아들어?"


난감한 표정을 하며 자신들의 무리에게 남자의 말을 설명하는 여자 옆으로, 무리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한 명이 앞으로 나오며 그들의 언어로 뭐라 뭐라 흥분 섞인 어조로 말한다.

"저 사람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라고 남자가 묻자, 당황스러운 듯 주춤하던 여자가 번역한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걸 소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이것들을 나눠야 한다고..."


'탕탕탕!'

남자가 쏘아 올린 소총 소리에 놀란 사람들 무리는 울타리 옆에 주차되어 있던 관광버스로 급히 몸을 피하며 장면은 끝이 난다.



남편이 인터넷 뉴스를 보던 중, 누군가가 포스팅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찾았다며 보여줬다.

2018년 Paramount Network에서 방영한,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 주연의 미국 드라마 시리즈 'Yellowstone'의 한 장면이란다.

영상을 보고 난 후 되살아난 그날의 기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날의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2016어느 날. 


차창밖으로 펼쳐진 녹음에 눈을 고정한 채 아침의 푸르른 공기를 마시며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우스톤(Yellowstone).


공원 내의 한 주차장에 차를  세운 우리는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Old Faithful Geyser)'을 보러 가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간헐천 입구로 가기 위해 몇 발자국 내디뎠을까?! 바로 그때, 내 귀청을 흔든 남편의 외침!


"You cannot smoke here!(당신들 여기서 담배 피울 수 없어!)"

주차장에 가득 찬 중국어 간판의 관광버스들 사이로 몇몇 남자들이 담배 피우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남편이 화나서 흥분된 목소리로 그들에게 소리쳤다.


"Man~~ We know better than you about here. We're tour guides.(야~~ 우리가 너보다 이곳에 대해 잘 아니 신경 쓰지 마. 우리 이곳 투어 가이드들 이야!)"

여전히 불붙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그 남자들 중 하나가 말했다.


"Can't you see the no smoking sign next you? You should follow the law here and this is a National park!

(너희 옆 휴지통에 붙은 금연 사인 안 보여? 미국에 왔으면 미국 법을 따라야지 더군다나 여긴 국립공원이라고!!!)"

남편의 충고는 담배꽁초 밟히듯 무시당하고, 더 화가 난 남편 끝까지 할 말 다했다.


이러다 큰 싸움 나겠다 싶은 마음에, 얼른 남편 팔을 낚아채 간헐천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입구를 지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간헐천 지형을 지나던 중 앞에서 걷고 있는 다른 중국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며 걷는 모습이 또 보였다.

'망했다...'

남편이 또 한소리 하겠다 싶어 고개 떨구고 있는데, 이번엔 다른 미국인 아저씨가 담배 당장 끄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란 중국 아저씨 바로 담배 끄면서 그 상황은 빨리 종료되었다.


"자기, 왜 그래? 왜 아까부터 꿀 먹은 벙어리야?"

시무룩한 표정으로 경치 감상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자기는 꼭 좀 전 같은 상황을 만들어야 했어?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못 본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던 거야? 저 중국인들이 봤을 때 그들 눈에는 나도 중국인으로 보였을 텐데, 아시아인 부인을 둔 당신이 굳이 꼭 나섰어야 했냐는 말이야???"

참고 있던 설움이 북받쳐 올라 나도 모르게 안 해도 될 말까지 마구 쏟아버렸다.

사실, 남편이 잘못한 게 아닌데...

누군가는 했어야 할 행동을 남편이 했을 뿐인데.

남들 눈에는 나도 중국인으로 보였을 그 상황이 불편했고, 바른말하는 남편이 부담스러웠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북한산 등산로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목격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믿음의 가이저(Geyser)-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드 페이스풀 간헐천은 1870년 Washburn-Langford-Doane 일행의 탐험에 의해 이름이 지어진, 옐로우스톤에 있는 가이저 중 가장 먼저 이름을 얻은 가이저이다.

균적으로 90분에 한 번씩 분출하는데  짧게는 45분, 길게는 125분이 소요된다.

'올드 페이스풀'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반드시 정해진 시간 범위 안에서 분출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먼 비행을 마다하지 않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찾는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기다려, 1.5-5분간 이어지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기 위해서. 어쩌면 생애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를 그 순간을.



올드페이스풀 간헐천(Old Faithful Geyser).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때가 온다. 가이저도, 우리 인생도.


세계 간헐천(Geyger)의 절반 이상이 이곳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내에 존재한다.


옐로우스톤에 터를 잡은 엘크. 이웃에 사는 회색곰으로 부터 적당히 거리를 두며, 살아남는 지혜를 터득했다.


다음날 아침.


옐로우스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이다호 주(Idaho state)의 한 도시인 포커텔로(Pocatello)의 어느 작은 호텔에서 아침을 맞은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7시가 조금 안된 시각.

 빈 뷔페 트레이들. 여기저기 쏟아져 내린 케첩과 과일 잼들. 바닥을 뒹구는 빵부스러기, 냅킨...

레스토랑 앞에 도착한 우리는 우리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나도 지금 정신이 없어. 방금 호텔 매니저한테 상황 보고했으니 조금만 기다려줘. 한 시간 내로 음식을 다시 채우도록 노력해볼게. 2년 넘게 이 호텔서 일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나오려던 순간에, 호텔 직원 '마이크'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당황한 마이크와는 달리 너무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사람들이 레스토랑 의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각자의 테이블 앞에 사과, 오렌지 몇 개씩 간식을 위해 챙겨놓은 채로.


"내가 졌다!"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도 다행히 커피는 아무도 안 마셨어! 오늘 아침 메뉴는 커피 세 잔!!!"

가득 찬 커피 포트를 보고,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호텔 밖으로 주차된, 중국어가 쓰인 여러 대의 관광버스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렇게 모닝커피를 마셨다.


내 이야기 속 한 남자의 못 말리는 나라사랑

바르셀로나에서 살 집을 무사히 하고

짐을 풀던 날.


"자기, 이것 좀 봐봐!"

남편이 본인 캐리어에서 새 티셔츠 두장을 꺼내 보였다.

옷 취향이 까다롭지 않은 남편은 내가 사주는 옷은 무조건 다 입는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남편 옷은 없는데... 이건 완전 새 옷이다.

어디서 난 옷이냐고 물었더니 한국 떠나 오기 전에 이태원의 한 노점에서 샀단다.


정말 못 말리는 내 이야기 속 또 다른 주인공, 미국인 남편의 한국 사랑...


유니폼 마냥 번갈아가며 입고 다니는 그 티셔츠들.




작가의 이전글 불의 힘을 믿다- 아이슬란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