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길어지면서 일상처럼 되어버리는 순간이있었다. 이 성당이 얼마 전에 본 그 성당 같고, 이 유적지가 다른 나라에서 본 그 유적지 같은, 남들이들으면 배가 불러도 너무 불렀다고 비난의 화살을 수십 개는 맞았을 그 몹쓸 '나 거기 가봤고 나 그거 다 해봤잖아~' 잘난 척이 내 몸 가득 배어있었던 때가 있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두 달 정도 일정으로 여행하던 그때 초반에도 그랬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스페인의 어느 한 도시 같이 느껴졌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도 그다지 큰 감동을 받지 못한 채 장시간의 버스 이동으로 몸도 마음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던 그때...
발파라이소를 만났다.
모두 잠든 새벽 쉼 없는 물청소와 쓰레기 수거로 아침의 시작을 반짝반짝 윤기로 잘 관리되고 있음을 과시하는 여느 관광도시와 달리,
바닥을 잘 보고 걷지 않으면 동네 강아지들이
장소 가리지 않고 질러놓은 큰일에 신발 도장 찍기 딱 좋은 그런 약간은 거친 듯 정돈되지 않은
매력의 도시 발파라이소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19세기 절반 이상의 시간을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무역의 중간지점으로써 황금기를 누렸던 곳.
삐뚤빼뚤 미로처럼 놓인 언덕길 사이로 위태로운 듯 올려진 커다란 건물들과 그때 당시에는 최고의 기술이라 자랑했을만한 초창기 모델의 엘리베이터(ASCENSOR)에서 엿볼 수 있는 그 시절의 풍요를 뒤로한 채 발파라이소는 오랜 침체의 늪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발파라이소 마을 중턱에 있는 엘리베이터(ASCENSOR)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을 언덕 한편 색색이 칠해진 계단에 앉아 그 옛날의 이곳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세계 곳곳에서 싣고 온 물건들로 가득 찬 무역선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을 그때를.
'언덕이 올라갈 땐 힘들어도 내려오긴 쉬운 것처럼 부귀영화도 쌓아 올리긴 힘들어도 잃는 건 한 순간이었을 테지.'
찬란했던 어제를 뒤로 한채 끝없이 쇄락해갔을 그때의 이곳을 생각하니 슬픔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그래도 꽃은 피고 세월은 흐르고 발파라이소는 살아간다.
조용한 항구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냥 보통사람인 나에게도 여러 감상이 드나드는데 감정을 에너지로 쓰는 예술가들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영감의 화수분 같은 곳이었을 터. 그런저런 이유로 하나둘씩 모인 예술가들이 어두침침했던 도시를 형형색색 밝게 만들어갔고 그들의 노력이 빛을 발해, 200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