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Asofra/ Granon
+9 Day / 2016.07.13
: 21.9km (Iphone record : 27.2km)
산티아고 순례길 9일째. 이젠, 동 트기 전에 길을 나서는 것이 꽤 익숙하다. 마을을 모두 벗어나기 전. 어두운 길목을 환하게 비춘 가로등 아래 성모 마리아가 우릴 돌봐주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가로등 불빛처럼 마음속에 가득 퍼졌다.
오늘은 날이 흐리고 가랑비가 내려 우비를 입고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길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지금 이 시점 어딘가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접어들 때가 많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동살이 비췄다. 동 틀 무렵의 서경(曙景)을 감상하는 일은 순례길에서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또 하나의 감사이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이 길을 걷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속으로 짧은 경도를 올리고 우리는 첫 번째 마을에 도착했다. 골프장에서 운영하는 바르(Bar)에서 아침을 먹고 가기로 한다. 아일랜드를 떠나기 전 한참 골프 치기에 흥미를 느꼈던 나는 푸른 잔디의 필드를 보자 괜스레 반가웠다. 한국에서는 골프는 고급 스포츠라는 생각되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단돈 Euro 15 정도만 내면 한국에서 볼링을 즐기듯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갓 구운 빵과 커피 향이 그득한 바르(Bar)의 실내 공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산 페르민(San Fermín) 축제의 엔시 에로(Encierro)의 흥분과 함께 감돈다. 우리도 아침을 먹으며 잠시 엔시 에로(Encierro)를 즐겼다.
다시 길을 걷자 날이 점차 개고, 우리 앞에는 푸른 하늘 반 구름 반이 펼쳐졌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길 위에서 여러 상념이 지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걷는 이 순간만큼은 어떤 걱정이나 고민도 떨쳐버리기로 한다. 오직 지금 이 순간. 걷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순례길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그리고 걷는 동안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었다.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이 있으니까. 살면서 마치 나 혼자만 세상살이에서 뚝 떨어진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으리라. 그럴 땐 길 위에서 만났던 고맙고 따뜻했던 많은 동행을 떠올릴 수 있을 터였다.
두 번째 마을에 도착했다. 어제 말콤(Malcolm)과 로베타(Roberta) 부부가 일러준 성당 내부에 두 마리의 흰 닭을 볼 수 있는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이다. 마을 곳곳에 순례길을 기념하는 벽화와 예술 조각물이 돋보였다. 자전거를 타는 베드로의 사진을 찍고 나도 몇 장의 기념사진을 남겼다.
휘와 베드로와 9일가량 함께 걷다 보니 많이 친숙해졌다. 본래 친한 친구지간에도 여행 도중에 감정이 상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터라, 우리가 지금껏 함께 걸어온 건 그만큼 서로를 배려했기 때문이리라. 난로 같은 사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가까이 다가와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거나 뜨겁게 하여 다치게 하는 일도 없으며, 너무 멀리 떨어져 서로에게 무심하거나 냉랭하게 하는 일도 없이. 우리는 그 간격을 너무도 잘 유지해왔다.
한데 서로에게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 슬슬 그 간격을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도 찾아왔다. 여행에서 항상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깨닫는다.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해야 각자 어떤 부분을 원하고 원치 않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밥을 먹지 않으면, 그러니까 배가 고프면 많이 예민해지는 편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쉬어갈 요량이었지만 휘와 베드로가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좀 단호하게 점심을 먹고 갈 테니, 각자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한데 나의 단호한 말투에 휘와 베드로가 내가 화가 난 게 아닌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실은 나는 정말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고 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둘이 먼저 간다고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이 상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녀석들은 점심을 먹지 않으면서도 나를 두고 가기 뭣했는지 다소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내가 점심을 먹는 동안 식당에 앉아 있는 게 훤이 보였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나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순례길이 인생이라면 인생의 매 순간마다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내 가치관과 신념으로 어떤 선택들을 해갈 것이고, 이 친구들도 그들의 가치관과 신념대로 선택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었다.
정말 좋은 친구들이지만 우리 각자의 인생을 사는 방식이 있기 때문에, 언제 가는.
곧 헤어져 걸어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산토 도밍고 성당을 구경하기로 했다. 유명한 성당이라 그런지 입장료 Euro 3을 내야 했다. 베드로와 나는 흔쾌히 입장료를 내고 성당을 관람하기로 마음먹었고, 휘는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관람하고 싶지 않다고 하여 우리가 관람하는 동안 바르(Bar) 야외 테이블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성당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다. 전설로만 듣던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성당에는 실제로 두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다. 이 도시의 설립자인 도밍고 가르시아(Domingo Garcia)가 수도원에 입회하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산토 도밍고 데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인근 숲에 살면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소와 병든 순례자를 치료할 병원을 설립, 순례자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드는 등 평생을 순례자를 위해 봉사하며 살다가 죽었다고.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뜻을 이어받은 많은 사람들의 선행이 계속되자 마침내 왕은 이 마을에 첫 번째 교회를 세울 땅을 하사 하였고 12세기경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이 지어졌다. 이는 마을의 지명인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와 성당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성 도밍고(San Domingo)의 무덤 건너편에 있는 두 마리의 닭에 얽힌 설화도 흥미롭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설화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순례자들은 미리 내용을 찾아보고 성당을 방문한다면 더욱 유익할 것 같다. 설화가 있어서 성당 곳곳에 두 마리 닭 그림과 장식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성당 구경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는데 오늘 날씨가 대체로 흐려 그런지 기분마저 울적하다.
걷다가 마주한 큰 십자가 앞에 멈춰 선 베드로는 어김없이 다가가 기도를 드리고,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애초에 산티아고의 길을 혼자 걸으리라 마음먹었었지만, 휘와 베드로를 만나 지난 9일 동안 힘들어도 즐겁게 걸어왔는데. 우리도 꽤 지쳐있던 건지. 오늘따라 우리 셋은 암묵적으로 서로에게 조금의 간격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길을 걸은 이후 처음으로 서로 음악을 들으며 따로 걸었다. 함께 걷는 풍경도 좋지만 혼자 걸으면서 마주하는 풍경은 함께일 때 못 보는 것들을 보게 한다. 사유(思惟)도 마찬가지다. 함께 걸을 때 서로를 알아가며 수다를 떠는 것도 좋지만, 혼자만의 사유(思惟)의 바다를 건너는 것도 꽤 좋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 드넓게 펼쳐진 황금빛 밀밭 사이로 선홍색 양귀비 꽃이 물결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걷는다. 음악은 내 생애 사랑에 있어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으로 나를 데려가고 만다. 한동안 생각나지 않았던 G 생각이 났다. 내가 이 길을 걸으며. 아니, 어쩌면. 살면서 평생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곧이어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 엔딩씬이 떠올랐다. 극 중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분)가 갈대숲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소리를 녹음하던 장면. 그래! 내 소설 속 한 장면에도 선홍색 양귀비 꽃이 군데군데 자리 잡은 이 드넓은 밀밭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장면 하나 하나로 떠오르는 스토리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완성하고 싶은 소설의 영감을 찾는 동안 오늘 목적지인 그래뇽(Granon)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이 꽤 한적하다.
오늘 우린 성당에서 도네이션으로 운영하는 San Juan Bautisa 알베르게에 묵기로 한다.
성당 건물 뒤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니 넓은 정원에 큰 나무가 자리 잡고 있고, 우리가 머물 숙소는 건물 2층에 마련돼 있었다. 꽤 많은 순례자들이 머무는지 스틱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옆에 신발을 놓는 자리라는 안내에 반가운 한글도 눈에 보인다.
숙소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편에 샤워실이 있고 주방과 다이닝 룸이 있는데, 순례자들의 잠자리는 그 위층에 마련돼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는 샤워와 빨래를 하여 널어두고 휴식을 취했다. 볕은 적당했고 바람이 좋은 날이다. 저녁이 되면 동네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 하나 둘 엄마들이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는 아련한 풍경이 떠오르는 만드는 알베르게 내부가 참, 아늑하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나와 달리, 휘와 베드로는 성당 앞 바르(Bar)에서 피자를 점심으로 먹었다. 물론 나는 그들 옆에서 맥주를 마셨고. 베드로가 산티아고의 길 초창기에 만났다던 크리스티나와 재회했고 휘와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세 자매 중 첫째로 두 동생들과 이곳엘 오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 담소를 나누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보니 키친과 다이닝 룸이 있는 곳에서 호스피텔로들이 한창 저녁 준비 중이다.
오늘의 메뉴는 콩 스튜와 감자조림, 빵과 사과. 그리고 와인이다. 걷는 내내 체력 소모가 많아서 그런지 뱃속에 기름칠을 하고 싶었던 나는 다소 실망했다. 고기 메뉴도 없는 데다 감자조림은 시큰했고 콩 스튜도 내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정의 기부금으로 ㅡ보통 순례자의 양심에 따라 내는데 나는 베드로에게 슬쩍 물어보고 EURO 5를 냈다ㅡ 잠 잘 곳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저녁을 준비해주는 여러 호스피텔로들의 정성을 생각하자 이내 반성하게 되었다.
"여행자는 불평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비록 지금은 여행자에 지나지 않지만, 순례자를 닮아보기로 한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먹게 된 베드로, 나, 크리스티나, 휘.
저녁은 호스피텔로들이 준비해주었지만, 저녁 상 치우기와 설거지는 순례자들이 합심하여 정리했다. 큰 통에 설거지할 그릇들을 넣고, 한 명이 세제를 묻히면 다른 한 명은 세제를 씻는 등 스무 명 남짓의 순례자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순식간에 우리가 먹은 것들을 말끔히 치웠다.
잠시 후 호스피텔로들이 가지는 기도 시간에 순례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본당이 내려다 보이는 성당 2층에 각자 자리 잡은 순례자들에게 호스피텔로 들이 촛불을 밝혀 주었다. 기도는 영어와 스페인어로 진행되었고, 길지 않았다.
기도 후에는 순례자들 각자 한 명씩 자신의 기도를 말하기로 했다. 자신의 모국어로 해도 좋다는 말에 나는 한국어로 이 길을 걷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마지막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중 한 독일인 친구는 성가대 출신인지 성스럽고 경건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왠지 모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비단 나뿐 아니라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마음속에 어떤 것들이 건드려진 걸까. 길을 걸으며 느꼈던 행복감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그리움이라든지 등등의 여러 감정들이 북받쳤 것 같다. 이쯤 되면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 가톨릭에 귀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도 후 다시 숙소로 돌아온 순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베드로는 다이닝룸 한편에 마련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베드로가 치는 피아노 선율 덕분에 아늑하고 따뜻한 카페에서 작은 콘서트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휘는 그간 보여준 이미지와 사뭇 다른 민트 색 다이어리에 깨알 같은 글씨로 일기를 쓰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서로를 알아간다. 그 틈에 엄마와 딸로 보이는 순례자 둘을 보니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다. 내일은 엄마와 외할머니께도 전화를 드려야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길을 걷다가 되돌아보게 되는 길이 있다. 자꾸만 눈에 밟혀서 혹은 얼마큼 걸어왔는지 자꾸 되돌아보는 길. 아마 그런 길은 무언가 소중한 걸 놓고 오기라도 한 듯. 다시 돌아가고 싶어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은 과거를 닮았다. 하나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혹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시절과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오늘이 있다. 그래도 사람들로 인해 감사하며 다시 하루를 살고. 또 내일의 희망을 품어 보는 오늘이 그렇게 저문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