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Granon/Villafranca Montes de Oca
+10 Day / 2016.07.14
: 26.8km (Iphone record : 31.9km)
지난밤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여운과 함께 태양이 떠오른다.
아침, 다시 길이 시작된다.
오늘 목적지는 빌라 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이고,
대체로 마을이 1km, 2km. 4km마다 있어 조금 수월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해가 온전히 떠오르는 동안 왼쪽 팔이 자꾸 가려워 왔다. 지난밤, 기도를 마친 후 다이닝 룸에서 순례자들과 담소를 나눌 때부터 왼쪽 어깨 아래팔 부분이 모기에 물렸는지 계속 간지러웠다. 혹시 베드 버그에 물린 건 아닌지 미심쩍었지만, 베드 버그에 물린 자국은 일렬로 나타나면서 엄청 간지럽다고 하여 나의 경우는 그저 모기에 두 방 정도 물린 거 같아 안도하며 잠들었다.
한데 오늘 걸으면 걸을수록 어제의 가벼운 증상과 달리 물린 자국이 일렬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햇볕 알레르기가 있어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살을 태양에 노출시키면 일반인보다 두드러지도록 벌겋게 달아오르고 따끔거리는 경향이 있는데, 벌레에 물린 데에다 햇볕 알레르기 증상까지 겹쳐 그야말로 따끔거리면서 가려워 걷는 내내 곤욕을 치러야 했다.
Belorado(벨로라도)라는 마을에 도착해 성당에 잠시 들렀다가 나오는데 자전거를 타고 성당으로 오고 있는 PADRE(빠드레 : 신부님을 스페인에서는 이렇게 부른다)을 만났다. 베드로가 신부님께 다가가 우리는 순례자이고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을 요청하였고, 나는 베드 버그에 물렸다고 호소하며 신부님께 기도를 해 줄 수 있냐고 하였다. 인상 좋아 보이는 신부님은 흔쾌히 우리를 위해 기도 후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주었다.
비록 유럽 여행에서 악명 높은 베드 버그에 물리긴 했지만 길에서 만나는 신부님 같은 사람들로 인해 분명 나는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 든다. 그래, 괜찮아질 거야. 힘내자!
형형색색의 벽화가 그려진 마을에 접어들었다가 벗어나 토산 토스(TOSANTOS) 마을로 가는 길에 하늘이 한국의 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높다. 볕이 좋아 마을 곳곳에 걸린 빨래도 파아삭 잘 마르고 있었다. 토산 토스(Tosantos)에 서 앞으로 두 개의 마을만 더 통과하면 빌라 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에 도착할 터였다.
하늘색 도화지에 비행기가 쓱쓱 그리고 간 하얀 자국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한편으로는 베드 버그를 어떻게 박멸하지라는 염려로 가득 차 마음이 편치 않다.
마을에 도착하면 숙소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베드 버그를 퇴치하는 일이다. 베드 버그 번식력은 바퀴벌레 못지않다고 한다. 배낭을 비롯해 모든 옷과 천으로 된 짐과 등산화를 빨아야 한다. 베드 버그는 물과 고온에 약하므로 베드 버그에 물린 후 가지고 있는 모든 천으로 된 짐을 세탁해야 한다고. 긴 한숨이 새어 나왔지만, 어찌 됐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여 베드 버그를 박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오늘 베드로가 미리 알아본 숙소는 약간 고풍스러운 느낌의 호텔 알베르게였는데, 그곳에는 세탁기가 없다고 했다. 내게는 베드 버그 박멸을 위해 무엇보다 세탁기가 있는 숙소가 필요했고, 굳이 세탁기가 필요하지 않은 베드로와 휘는 그대로 호텔 알베르게에 머물기로 하고, 나는 다른 알베르게에 혼자 머물기로 했다.
지난 9일 동안 항상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렀는데, 처음으로 일행들과 떨어져 다른 알베르게에 머물게 되었다. 내가 머문 숙소는 비록 세탁기는 있었지만 시설은 열악하였다. 게다가 호스피텔랄로 아주머니가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라서, 세탁기 돌릴 동전을 바꾸는 일 조차 쉽지 않았다.
헌데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세탁기를 돌리려면 보통 EURO 3, 건조기를 돌리려면 EURO 3-4 가 필요하다. 마침 찾아놓은 현금도 모두 떨어져서 다른 숙소에 머무는 일행에게 연락하여 동전과 베드 버그를 죽일 살충제와 간지러움을 약화시킬 맨소래담을 빌렸다. 두 친구가 없었으면 어찌했을지 아찔했다. 너무도 고마운 이들인데 베드 버그에 물려 내내 예민해져 있던 게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저녁은 두 친구들이 머무는 호텔 알베르게에서 함께 순례자의 메뉴를 먹기로 했다.
알베르게에 짐을 풀자마자 침낭과 가지고 있던 모든 옷과 천 종류의 짐을 세탁기에 돌렸다. 처음엔 배낭은 탈탈 털어 세탁하지 않고 햇볕에 소독만 했는데, 가방 레인커버에서 베드 버그로 추정되는 두 마리의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걸 보고 기겁하고 말았다. 결국 가방이랑 등산화까지 모두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기까지 돌린 후 알베르게 마당에 탁탁 널어 말렸다.
이 강렬한 태양이 베드 버그를 모두 없애주었으면 했다. 세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베드 버그의 알이 있을 것 같은 침낭과 분홍 탐스슈즈와 까만 티셔츠는 버리기로 했다. 하루 종일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손빨래를 하고 또 빨래를 널어 말리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고단했다. 세탁비용만 EURO 20 가까이 썼고, 몸도 마음도 지쳐서 사진도 별로 찍지 못했다. 이렇게 베드 버그 박멸에 성공한다면 나의 산티아고 순례는 계속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순례는 장담할 수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지난 9일 동안 베드 버그에 물리지 않고, 발에 물집 한 번 잡히지 않고 순조롭게 걸어왔다. 보통 베드 버그에 물리면 잠복기가 하루에서 7일 정도라고 하여, 그저께 Azofra(아조프라)에서 물린 것인지 어제 Granon(그래뇽)에서 물린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일행들은 증상이 없는데 왜 하필 나만 베드 버그에 물린 건까.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을 안겨주시는 걸까.
삶이 평탄할 순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려고 신이 부로 그러신 걸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몸도 마음도 피폐하기 짝이 없지만, 시련은 신(神)이 내게 주는 사랑이라 여기며.
간지러워 불편한 몸과 밤 사이 베드 버그가 다시 출몰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끌어안고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