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Burgos/Hornillos del Camino
+12 Day / 2016.07.16
: 20.50km(Iphone record : 26.60km)
베드로와 헤어진 휘와 나는 무리하지 않고 적정거리인 20km만 걷기로 목표를 잡았다. 오늘의 목적지인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Hornillos del Camino)는 마치 한국의 제주도처럼 평온한 마을이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샨티와 필리 부부가 운영하는 깨끗하고 아늑한 알베르게에 머물게 되었다. 일찌감치 마을에 도착한 나와 휘는 늘 그렇듯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마을 교회를 둘러보러 갔다. 닭이 이 마을의 상징인 듯 보인다.
비밀의 화원을 연상시키는 교회의 문은 닫혀 있었다. 마을을 둘러보고 알베르게로 되돌아온 휘와 나는 각자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휘는 물갈이를 하는지 장염 증세가 나타나 낮잠을 청하였고, 나는 알베르게의 난 정원에 앉아 순례길의 사진과 메모를 정리하였다. 같은 알베르게에 머무는 순례자들이 텐트와 해먹 위에서 그들만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는 알베르게의 담장 너머로 따뜻한 저녁 햇살이 머리 위로 내려앉자 나른하고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곧 저녁 시간. 알베르게에서 EUR 10 짜리 저녁 메뉴를 미리 신청하면 와인도 함께 나오는 순례자 메뉴가 있다고 하여, 나는 시에스타를 즐기는 휘의 저녁까지 미리 신청하였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 시간이 되었다. 자고 있는 2층에 올라가 휘를 깨우고 알베르게의 작고 아담한 다이닝룸에 앉았다. 해가 아직 지지 않은 탓에 잔잔한 볕이 테이블을 비추었고, 저녁 메뉴로는 샨티와 필리 부부가 준비한 빠에야와 스페인산 와인이 4인용으로 마련되었다.
앞에는 백발이 멋스러운 프랑스 부부 마크와 미셀이 앉았다. 알베르게 전체에 샨티와 필리 부부가 틀어놓은 율동적인 음악이 흘러넘쳐 음식의 풍미를 더하는 듯했다. 뒤늦게 내려온 휘는 빠에야 몇 숟가락을 채 뜨지도 못하고 세상 가장 아픈 표정을 지었다. 그런 휘가 안쓰러웠던지 제약회사에 다닌다는 미셀이 약을 챙겨주었다. 결국 휘는 EUR 10나 주고 신청한 저녁을 다 먹지도 못하고 다시 침실로 올라가 잠을 자기로 한다. 나는 미셀 & 마크 부부와 함께 저녁을 즐기며 사람책을 읽었다.
프랑스 보르도가 고향이라는 마크와 미셀은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오 년 전에 재혼을 했다고 한다. 걷고 여행하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은 대화가 잘 통하고 서로 함께일 때 행복하다고 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나는 이들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또한 행복한지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이들처럼 멋지게 늙어가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충만하여 행복하다면 그걸로도 생은 충분한 것 같다. 로베타와 말콤 부부도 그랬지만 나이가 들어도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일 때 행복한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
멋진 부부 미셀과 마크는 내가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걸을 때에도 자주 마주치며 의지가 되었던 친구들이다. 우연히 하루 묵어가는 알베르게에서 만족도 높은 휴식을 취하고, 맛있는 저녁과 새로운 친구까지 사귀었으니. 오늘 저녁은 며칠간 베드 버그로 힘들었던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물갈이를 하는 휘가 빨리 낫기를 바라며. 멋진 음악을 틀어주고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신 알베르게 샨티와 필리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부엔 까미노(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