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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작 Mulgogi Oct 21. 2017

정직한 키친(Honest Kitchen)에서의 행복

CAMINO DE SANTIAGO

Hornillos del Camino/Castrojeriz

+13 Day / 2016.07.17

: 19.70km(Iphone record : 20.90km)


오늘은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휘는 물갈이를 하느라 계속 배앓이를 하는 듯 보였고, 나 역시 몸이 피곤했던 탓이다.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마을 초입에서 어디서 많이 본듯한 차림새가 나타났다. 이틀 전, 이제 혼자서 걸어보겠다던 베드로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묵은 마을의 전 마을에서 아침 여 섯시에 출발했다는 베드로. 우리 셋은 조금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아직은 서로가 헤어질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며 다시 한번 웃는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아이리시가 운영하는 바(Bar)에서 아침을 먹기로 한다. 그런데 메뉴에 부침개가 있는 게 아닌가. 아이리시 여자 직원에게 메뉴에 한국 음식이 있네요? 하고 물었더니 여기 식당 셰프가 한국인이란다. 거참 신기해하면서 우리는 아침으로 부침개와 커피를 시켰다. 사람책을 읽는 나로서는 한국인 셰프를 만나 어떤 사연이 있는지 좀 더 들어보고도 싶었지만. 일행인 휘가 몸이 좋지않은데다 오늘 일정을 늦게 시작하여 나의 욕심만 차릴 순 없었다. 산티아고의 길을 마친 후 만약 혼자 다시 좋았던 곳만 찾아간다면, 다시 오고 싶은 마을 오르니요스를 뒤로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앞에 반려견과 함께 걷는 부부가 보인다. 몸집이 자그마한 강아지가 아장아장 잘 걷는 걸 보니 귀엽기도 하고, 한국에 있는 우리 집 강아지 루다(Ruda)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반려견이나 어린아이 그리고 연세 지긋한 어른. 그야말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함께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 하늘이 맑디 맑다.

멀리 풍차가 줄지어 바람에 돌아가고, 파아란 스페인 하늘과 들녘이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작은 마을 하나에 다다랐을 때, 부엔 카미노(Buen Camino)가 멋스러운 벽화를 만난다. 계속해서 들판에 핀 꽃들과 민들레 갓털도 카메라에 담아보고, 잎이 무성한 가로수 길을 따라 주욱 걷다 보니 오늘의 목적지인 카트스로헤리스(Castrojeriz)에 도착했다.

마을에 도착해서 알베르게를 찾다가 팔에 새긴 타투가 멋스러운 하비 얼(Javier)이 운영하는 Albergue Rosalia 에 머물기로 했다. 카운터에는 순례자들이 무료로 물을 마시거나 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마련되었고, 주인장 하비 얼(Javier)의 깔끔한 운영이 눈에 띄는 좋은 알베르게였다.

알베르게에는 '정직한 키친(Honest Kitchen)'이라는 사랑스러운 주방과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주인장 하비 얼(Javier)이 구비해둔다. 순례자들은 식재료를 쓰되 양심적으로 기부한다. 정직하게 쓰고 비용을 지불하는 자율적인 주방 멋지지 않은가.


우리 일행은 오늘이 초복이라고 하여 저녁으로 백숙을 해먹을 계획이었다. 하나,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 슈퍼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대신 알베르게의 정직한 키친(Honest Kitchen)에 있는 재료인 미트볼, 쌀, 토마토, 계란으로 저녁을 차렸다. 우리가 저녁을 차리고 테이블에 앉았을 때. 불가리안 루보미라(Ljubomira)와 그녀의 남편이 음식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순례자들에게 불가리안 베지터블 스튜를 나누어주었다. 덕분에 밥을 든든하게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


웃는 얼굴이 서글서글하여 우리에게 불가리안 스튜도 후한 인심으로 나누어준 루보미라(Ljubomira)와 남편은 현재 체코에서 거주한다고 한다.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며 자연에 더 가까이 있고, 자유를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것이 그리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인자한 인상의 오스카(Oscar) 아저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는데, 작년에 홀로 까미노 길을 걸었다가 올해는 딸 레인(Rayne)과 함께 이 길을 걷게 되어 매우 즐거워 보였다. 레인(Rayne)은 아버지와 닮은 생기 넘치는 미소를 가진 아가씨인데 많이 걸은 탓인지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아빠와 함께여서 행복하다고.

맛있는 저녁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도 좋지만, 이런 멋진 웃음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영혼을 풍요롭게 만든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저녁을 마치고 산책 겸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대낮의 뜨거운 열기에 지치는 건 비단 사람뿐만은 아닌지. 동네 강아지들도 헥헥 거리며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래, 너네도 많이 덥겠다.

취침 준비를 위해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을 때. 주인장 하비 얼(Javier)에게 사람책을 요청했다. 하비 얼은 매일 살아가고, 여기서 일을 하고, 전 세계에서 오는 순례자들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기억에 남는 알베르게 중에 단연 Albergue Rosalia 는 손에 꼽힌다. 카스트 로헤 리즈(Castrojeriz)에 머물게 되면 알베르게 로잘리아(Alberque Rosalia)에 머물며 그의 사랑스러운 주방을 꼭 이용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멋진 알베르게를 운영해주는 하비 얼(Javier)을 사람책으로 읽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창밖으로 석양을 바라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답다.


사람들로 인해 인생이 얼마나 풍족해지는지. 이 길을 걷길 정말 잘 했다. 아, 행복하다, 라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올만큼. 가늠할 수 없는 감동이 석양과 함께 저무는 밤이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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