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구간 : Castrojeriz~Fromista
+14 Day / 2016.07.18
: 26.40km(Iphone record : 27.80km)
카트스로헤리스(Castrojeriz)에서의 가슴이 충만했던 밤을 보낸 덕분에 아침 먼동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아름답다. 황홀하다. 라는 말로는 부족한 그 무엇. 오늘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하는 기대감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태양으로 떠오르는 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오늘 기온은 섭씨 38도를 웃돌거라 예상은 했지만, 날이 밝자 작렬하는 여름 태양이 인정사정없이 내 몸을 파고든다. 헛, 그런데 내 앞에 맨발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신발 없이 걷는 순례자였다. 신발을 신고 걷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경이롭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그는 뙤약볕에 달 거진 돌멩이들 위로 조심스레 한발 한발 내딛으며 걸어나갔다. 어찌 된 사연인지 궁금해 나 또한 걸음걸이를 늦추었다.
옆에는 Amazing! 이라 연발하며 맨발의 사나이를 따라 맨발로 걷는 걸 시도하던 French 친구도 있다. 맨발의 사나이 이름은 도미닉(Dominick). 그는 체코 출신으로 한 때는 영국에서 잘 나가는 IT 계열의 회사를 다녔다고 한다. 당시 격무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서 이 년 전 회사를 관두고 무전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을 때 달(Moon)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 친구를 만났단다. 당시 아토피를 앓고 있던 도미닉에게 달(Moon)은 한국으로 초대했고, 오르가닉 농장에서 육 개월 간 머무려 농장일도 돕고, 자연과 함께 지내며 아토피 증상을 치료했다고 한다. 도미닉(Dominick)이 달(Moon)에 대한 이야기할 때마다 국적을 뛰어넘는 고마움과 우정이 진하게 전해졌다. 이후에 무전여행을 하며 세계를 돌아다니고, 지금도 맨발로 산티아고 순례를 통해 챌린지(도전 Challenge) 중이라고 한다.
가장 궁금한 사연은 그가 왜 신발 없이 걷는지였다.
그는 자연 그대로의 땅을 느끼고 싶어서, 라는 간결한 답을 했다.
그렇다면 목이 마르거나 배 고플 땐 어떡하냐고 물었다. 물은 어디에나 있고, 알베르게나 슈퍼에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 있는 경우가 많기에 그때마다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음식을 얻는다고 했다.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마음씨 좋은 친구들이 음식을 나눠주기도 한다고.
그러고 보니 그의 배낭에 道(도)라는 한자가 눈에 띈다. 흡사 경지에 오른 도인 같기도 한 도미닉(Dominik). 인생과 서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일행과 거리가 많이 벌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햇볕 알레르기가 있는 나로서는 뜨거운 태양을 견디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도미닉에게 인사를 하려고 캘리그래피를 써서 건넷 더니, 그도 내게 무언가를 써준다. 삶은 자기 스스로를 알아가는 도전.이라는 말을 내게 하고 싶었나 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순례자로서 그와 교감할 수 있었던 것, 우린 행운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제 정말 안녕,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종일 맨발로 목적지까지 걸을 그가 안쓰럽기도 했고, 아까 그가 길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이 음식을 나눠준다는 말이 떠올랐다.
얼른 가방에서 비상용으로 남겨둔 라면 한 봉지를 꺼내어 다시 그에게 돌아가 주었다. 길 위에서 도미닉(Dominik)이 내게 보여준 삶에 대한 영감과 고마움을 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답례지만, 길 위에서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었다.
산티아고의 길 위에서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누구나 아는 진리다. 하나 물욕을 버릴 수 없는 현대인들의 고충을 도미닉(Dominik)은 길 위에서 몸소 실천하며, 타인으로 하여금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하나 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은 게 있다.
그와 인사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그를 앞서 갔을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끔했다.
나는 신발을 그것도 발목까지 보호해주는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그는 맨발로 순례길을 걸어나가는데.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미닉(Dominik)에게 관심을 보였다가 결국엔 그를 추월하며 앞으로 나아갔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이 순례길이라면 맨발로 자신의 길을 천천히 걸어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좋은 신발과 옷을 걸치고 도미닉(Dominik)을 추월하며 빠른 걸음으로 길을 통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추월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전혀 동요하지 않고 대지와 맞댄 자신의 걸음에만 집중하며 나아가는 도미닉(Dominik)이 정말 존경스럽다. 그리고, 다짐했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하고, 또 직장에서 자리를 잡으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또한 그 나이에 맞는 집과 차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의 시선에 동요하지 말자,라고. 나이에 걸맞은 삶이라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귀 기울이지 않기.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방향으로, 느리지만 나만의 속도로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목적지로 도착한 도미닉(Dominik).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 밖에 자리를 펴고 레스토랑 앞에서 와이파이 신호를 잡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이미 맨발의 사나이에 관심이 많은 순례자들에 둘러 싸여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워갔다.
그의 머리 위로 달이 떴다.
오늘 밤은 삶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