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 가이드 교육을 받으며 가장 인상에 남는 손님들이 있다.
한국의 L사 영국-아일랜드 패키지 관광 손님들을 보조하는 역할이었고, 메인 가이드는 사장님이었다.
특히 아일랜드를 패키지여행을 오는 손님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들을 대부분 여행 후,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아일랜드를 찾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여행 수준이 상당하니 특별히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손님들 중에는 노년에 부부끼리 오시는 분들도 상당했고, 아이와 함께 가족 단위로 오시는 분들. 특히 인상에 남았던 분들은 광주에서 여행을 온 자칭 타칭 7 공주로 불리는 우리 엄마뻘 되는 여사님들이 일곱 분이 계셨다.
나는 보조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소위 진상 손님들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 딱 한 번. 연세 지긋한 노년의 손님들을 대상으로 아일랜드 1일 메인 가이드로 투입되었을 때, 가이드 소개 시간에 국내 유명 소설가 선생님의 문하생이었다는 말을 했는데, 난데없이 리뷰에 가이드가 좌파여서 별로라는 어이없는 평가를 한 손님들은 있었다.
그때 사장님은 내 얘기는 들어볼 생각도 않고, 다짜고짜 손님들한테 뭐라고 말했길래 어떤 정치적 발언을 했길래 이런 평가가 나오냐고. OOO 씨에게 메인 가이드를 맡기지 못하겠다고. 못 믿겠다고 해서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다. 소설가 선생님이 한국에서 진보 성향을 띠셨지만, 내가 정치적 발언은 한 것은 아니었는데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튼 이를 빼곤 운이 좋았는지 모두 젠틀한 손님들만 만났었는데, 특히 광주에서 온 7 공주 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변덕스러운 사장님의 보조를 맞추는 내가 안돼 보였는지 음식을 챙겨주셨다. 사장님은 당시 갑상선 관련 치료를 받고 계셨고 매일 관련 약을 챙겨드셨는데, 일정이 시작되면 더욱 예민해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무보수지만 보조 가이드 역할까지 하며 어깨너머로 메인 가이드의 역량을 익히고자 했던 것도 메인 가이드가 되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수습을 하는 내내 널을 뛰는 사장님의 감정 기복을 맞추는 것도 보조 가이드의 임무였다.
가령 손님들 캐리어를 버스에 싣고 있으면, 대뜸 왜 그걸 하느냐. 저걸 해라. 하셨고, 그 말에 따라 다음 행선지에서는 캐리어를 버스에서 싣는 것보다 다른 걸 하고 있으면, 왜 그걸 하고 있느냐. 캐리어를 실어라는 식이었다. 처음엔 내가 센스 없이 잘못했겠거니 생각하고 바로바로 사장님의 지시대로 행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어떤 체계도 없이 모든 기준은 철저히 갑인 사장님의 마음대로 였다.
나는 사장님이 몸도 성하지 않으신데 프로페셔널하게 일정을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감정 기복이 실시간으로 널을 뛰어 당최 어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끙끙 앓았다. 그런 내게 광주에서 온 7 공주 분들은 사장님이 손님들 앞에서는 웃지만, 보조 가이드한테 싸늘한 눈빛으로 대하는 걸 눈치채곤 내게 몰래 등을 토닥거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유럽 여행 동안 한국음식이 그리울 것 같으셨는지 한국에서부터 싸온 뜯지도 않은 새 음식들. 멸치와 김, 김치와 같은 한국의 밑반찬들을 대봉투 가득 챙겨주셨다.
사장님이 알면 메인 가이드로서 고생은 사장님이 했는데, 고마움은 보조 가이드한테 표한다고 하실까 봐 여행사 직원과 몰래 숙소로 오셔서 전해주셨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소녀 같으셨던 7 공주 분들의 따스한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아직도 생각난다. 무보수 가이드 교육을 받으면서 느꼈던 가장 큰 보람이다.
사람 때문에 상처 받기도 하지만 또한 사람 때문에,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사람 때문에 위로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