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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작 Mulgogi Nov 29. 2021

÷02. 빨래와 청소 후, 카모마일 의식을 치루다

매일 위안이 되는 것들

이불 빨래와 청소 후, 캐모마일 의식을 치루다. (Feat. 음악)


햇볕과 창문이 따스하게 만나는 시간, 오후 다섯 시. 

세탁기에서 이불 빨래를 꺼내어 탁탁 털어 널어 둔다. 한 달 전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가 귀국 정리를 한다고 했을 때, 빨아두면 손님용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 냉큼 내가 가지겠다고 했던 이불이다. 우리 집 거실 큰 창에는 볕이 잘 들어오니 보송보송하게 잘 마를 수 있겠다. 빨래는 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든다. 빨래가 마르면서 내 마음까지 말려주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바글바글 끓다가는 땡, 하고 제 다 끓었다는 소리를 낸다. 좋아하는 차를 꺼내 든다. 크고 널따란 거실 나무 테이블에 앉아 캐모마일 차를 한입 들이킨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이 아늑함 속에서 잔광이라든지 잔향이라는 단어들이 나를 잡아끌어 또 음악을 켜고 만다. 고질병이다.      


2015년 6월 30일의 위안 : 하늘의 색감과 바람의 감촉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리피 강가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오래오래 그리울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요즘 훔치고 싶은 하늘의 색감과 이 순간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이 너무 좋다.


2015년 7월 1일의 위안 : 하늘

매일 위안이 되어주는 것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오늘은 하늘이었다. 하늘. 그 속에 포개어진 뭉게구름. 그리고 싶었다. 유채 물감으로 캔버스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목소리. 정준일과 그가 소속된 메이트의 노래들을 들었고 오래오래 걸었고 많이 생각했다. 지금 이 시련들이 나를 단련시켜 줄 것이다,라고. 그리고 또 그려 봤다. 만약에, 라는 말로 시작하여 아마, 라는 말로 끝이 나는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을 고조곤히 불러 보았다. 가까운 미래에 만나면 오늘을 회상하며 얘기해 줄 것이다. 내가 많이 기다렸다고.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 : 밥, 따뜻한 차, 향초, 캘리그라피, 달리기, 소품 샵 가서 쇼핑하기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 가난한 사치다.


다섯 시 삼십육분. 요즘 더블린에 일몰이 오는 시각이다. 며칠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골몰한 탓에 감기 기운은 더 심해졌다. 수업도 빼먹은 채 하루 종일 누워있었더니 몸이 더 처지는 거 같아서. 이럴 때 특효약인 달리기를 하기로 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운동 갈 준비를 하고 좋아하는 산책로를 따라 피닉스 공원 호숫가에 이르렀을 즈음. 작년에 어린 새끼였던 백조 두 마리가 회색 옷을 벗고 순백의 하얀 백조가 되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마음이 어떻든 시간은 이렇게 흐른다.     


뛰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가 귀가 너무 시려서 갑자기 기온이 궁금해져 날씨를 체크하니 영상 3도. 차가운 기온과 공기가 마음에 들어왔다가 더러워진 여러 불순물을 데리고 나가는 듯 마음에 환기가 된다. 이만하면 정신은 차렸고 따뜻한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다. 기차역 근처 카페에 와서 달달한 커피와 직원이 추천해준 캐롯 케이크 그리고 마카롱까지 하나 시키고 가난한 사치를 즐긴다.      


그래, 필요해. 

나를 위한 사치.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 가령 슬플 땐 달리기를 하고 따뜻한 밥을 양껏 먹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귀여운 돼지 꿀꿀 소리가 나는 열쇠고리를 산다든지. 타인보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게는 있다. 그래서 괜찮은 삶이다. 그래서 타인도 사랑할 수 있는. 


날마다 조금씩 자란다.


겨울을 견디고 움을 트는 새순처럼. 무척 더디고 느리지만 내가 믿는 바를 믿고 나의 길을 가고 있는 거니까. 언젠가는 내가 키운 나무를 올려다보며 흐뭇할 날이 머지않아 오리라 여기는. 그래서 괜찮은 삶이다. 나는. 카페 문 닫을 때까지 이 사치를 즐기다 집에 돌아갈 땐 커피 온기에 데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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