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떠났다, 다시 돌아올게요.
6년간 몸담은 회사를 관두고 머지않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떠난다.
"딸, 그냥 퇴직금으로 결혼자금 삼고. 한국에서 사는 게 어때?"
아일랜드로 떠나기 며칠 전, 서른 넘은 딸의 장래가 불안했던 엄마의 제안이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진지하고도 완강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 인생은 한 번뿐이야. 해보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딱, 일 년만 다녀올게요."
내게 아일랜드에서의 삶은 이십 대에 하지 못했던 유럽 배낭여행의 꿈.
그리고 모두 늦었다고 했지만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던 인생 2막의 시작이다.
회사라는 속박 속에서도 자유를 찾자 했던 건, 언젠가는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는 설렘을 잠시 미뤄두고 막상 출국일이 다가오니 정리해야 할 일들과 준비해야 할 일들로 인해 분주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챙기지 못한 보고 싶었던 얼굴들을 만나고 또 고마운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며 여행 준비를 했다. 태어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도록 만나지 못한 한 살배기 조카와 다섯 살 난 조카, 그리고 내 유년 시절의 산증인들을 보기 위해 수원엘 다녀왔다. 조카들의 재롱을 보는 일과 추억을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 꺼리는 쉴 틈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 커가는 조카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도 충실하기로 한다. 아쉽지만 이별의 포옹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촌언니들의 얼굴을 오랜만에 봐서 참 좋았다. 내 궁핍한 유년의 정서를 함께 해준 언니들이 있어서 정말이지 고맙고, 우리들 앞날에 무한한 행운을 빈다.
더블린으로 떠나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뭐 먹고 싶은 거 없느냐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찰밥과 보쌈에 겉절이를 저녁으로 차려주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자정에 출발하는 더블린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나섰다.
일 년 살이 짐 싸는데 수고로이 도와준 동생들과 글벗 R과 G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의 배웅,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고이 덮고 열세 시간의 비행에 올랐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기분은 설렘 반 두려움 반 교차했지만 왠지 설렘 쪽으로 점차 기울어가고 있다.
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다행이다. 조금씩, 병아리 눈물만큼일지라도, 조금조금씩,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은 거다. 산다는 게 영 녹록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갸륵한 수고. 아, 좋은 날이다.
시인 김선우의 산문집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에 나오는 글이다. 생동감 있고 다채로운 시어로 시를 쓰는 그녀의 산문집에서 나는 많은 위로와 영감을 받았다. 내가 회사를 관두고 1년 넘게 긴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를 그녀는 마치 알기라도 한 듯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에 알알이 박혔다.
그래요.
병아리 눈물만큼일지라도 더 행복해지고 싶어 떠납니다.
잘 떠났다, 다시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