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첫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아일랜드로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야 했다.
운이 좋았는지 창가 자리를 예매한 나와 복도 측 좌석에 앉은 스위스 할아버지 사이에 가운뎃 자리는 비었다.
장시간 비행에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기내식이 나오자 옆 좌석에 앉은 스위스 할아버지 AART가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며 맛있게 먹으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곤 Cheers! 건배를 권했다. 내가 한글로 '행복하세요'라고 켈리그라피를 적어 드렸더니 THANK YOU를 연발했다.
경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열한 시간 비행이 견딜만한 것도 따뜻한 밥 같은 이런 마음들이 나를 잘 덮여 주어서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뜨거운 것들이 차올랐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니 이른 새벽이다. 더블린 연결 편 비행기 출발까지 세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공항을 잠시 둘러본 후 맥도널드 한편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새벽 어스름 빛이 스키폴 공항 통유리를 통해 들어왔다.
아침, 9시 35분. GATE D28에서 DUBLIN 행 E1 0603편을 탑승을 기다리는 줄에 섰다.
암스테르담에서 더블린까지 세 시간 반을 더 날아가야 한다.
드디어 꼬박 열세 시간을 날아 아일랜드 더블린에 도착했다.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사무엘 베케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같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문호들의 나라.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했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북이 분단된 국가이자 기네스 맥주의 본고장. 버스킹의 천국. 한국과 참 많이 닮은 나라.
공항에 도착하자 중개한 유학원의 픽업 서비스로 한국인 가이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더블린 공항에서 차를 타고 20여분 쯤 달려 당분간 카우치서핑을 하기로 한 집에 도착했다.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담장이 낮은 이층 집들이 주욱 늘어선 주택가였다.
서울의 높은 빌딩과는 사뭇 다른 풍경.
누구나 행복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어쩌면 이곳은 행복의 담장이 서울보다 낮을지 모른다. 서로를 경계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타인의 기준을 자신의 행복의 척도인양 살아가는 한국 사회. 높은 빌딩들이 늘어선 서울의 행복의 담장과는 다를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날씨가 채 겨울을 벗어나지 못해 춥고 흐렸다.
대충 짐을 풀고 카메라를 들고 앞으로 일 년간 살게 될 더블린 시티로 나가보기로 했다.
카메라를 들고 시티 쪽으로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루아스라고 불리는 더블린 시티 트렘이 들어오고 있다.
유명한 기네스 공장을 지나치고 시티 근처에 예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예쁜 거리를 발견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괴짜 아이리시 아저씨가 보기 좋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라.
경계심은 잠시 접어두고 눈이 마주치면 언제고 웃으며 눈인사를 나눌 수 있는 도시.
아일랜드는 그런 인정이 넘치는 곳이다.
더블린 첫날, 이 땅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시내 중심인 템플 바를 지나쳐 리피 강에 다다랐다.
아일랜드의 하늘은 낮고 강은 여유롭게 흐른다.
신호등을 건너고 싶을 땐 STOP 버튼을 누르면, 모든 차들이 보행자 중심이라 멈춰선다.
"마치 행복의 담장은 그리 높은 건 아니에요.
모든게 빨리빨리 흘러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아일랜드의 모든 하늘과 강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혼자서 세 시간여를 걸으며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과연 내가 열세 시간이나 걸려서 이 멀리 도대체 왜 왔을까.
분명한 목적은 있지만 목적만을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지 말 것.
이건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지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시키지 말 것.
온전히 현재에 충실하며 행복할 것,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서울이나 더블린이나 사람 사는 곳은 같다.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단지 시간과 공간이 달라졌을 뿐. 조금은 낯선 이곳도 언젠가는 나의 일상이 되겠지. 장소가 달라져서 특별해지는 것은 잠시일 뿐. 어디에 있던 일상 속에서도 매 순간 특별함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자. 그저 훌쩍 떠나 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떠나기 위한 방편을 모두 마련해두고, 겨우 떠날 수 있었던 것을 되새기며. 과연 나는 이곳까지 왜 왔는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며 답을 찾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길은 다시 시작된다.
P.S :
때론 한국보다 더 치열한 경쟁으로 힘들었고,
때론 고국인 한국보다 더 살고 싶게 만들었던.
서른이 넘은 나이에 호기롭게 떠났던,
나의 아일랜드, 잘 지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