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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작 Mulgogi May 18. 2022

-03. 아일랜드 국제 노숙자 될 뻔한 사연

염치볼고하고 카우치서핑.

출국 4개월 전. 한국에서 미리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1년 동안 살 집을 구했다. 대개 유학생들은 더블린 도착 후 한 달에서 두 달정도 홈스테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홈스테이는 아일랜드 가정집에서 그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한국의 하숙과 비슷한 시스템이다. 홈스테이 비용은 식비를 포함해 월 팔십만 원가량으로 꽤 비싼 편이다.


왕복 항공권과 6개월 어학원 등록비용 포함. 나는 퇴직금 천오백만 원으로 아일랜드로 왔기 때문에 일을 구하기 전까지 초기 정착비용을 아끼고 또 아껴야 했다. 주거비는 월 오십만 원을 넘지 않도록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매월 팔십만 원씩 지불하며 홈스테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1단계) 아일랜드 직방(다프트Daft)에서 집구하기  

출국 전 아일랜드 집 렌트 사이트(다프트 daft.ie)를 통해 가격 대비 괜찮은 싱글룸을 물색했고, 집주인 Landlord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년 3월에 아일랜드에서 1년 동안 어학공부를 할 한국 유학생이며, 주로 글을 쓰며 조용히 보낼 집을 구함. 홈파티는 거의 하지 않을 것이며, 청소를 깔끔하게 하겠다."라는 내용으로 어필하며 나를 소개했다. 


손품을 열심히 판 결과. 시티와 가깝고 부유한 마을에 속하는 더블린 4구역에 위치한 아담하고 예쁜 테라스 정원이 달린 싱글룸(월 Eur350, 한화 45만원)의 주인 크리스에게서 뷰잉Veiwing을 보러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2단계) 집주인과 뷰잉Viewing  

한국과 마찬가지로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집을 보여주며, 서로의 조건이 맞을 경우 계약을 하는데 이걸 뷰잉이라고 부른다. 크리스는 내가 홈파티보다는 조용히 지낼 것이며, 청소를 깔끔히 하겠다는 소개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여러 임차인 후보들 중에서도 내가 마음에 든다며 뷰잉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하지만 나는 출국 전이라 아직 한국이었고 뷰잉을 갈 수 없었다. 유학원에 도움을 요청하자 유학원 현지 매니저인 슬 씨가 대리 뷰잉을 해주기로 했다.


뷰잉 당일. 슬 씨가 사진을 보내왔다. 

예쁜 테라스 정원이 달린 싱글룸. 방은 작지만 빈티지한 책상이 놓여있어 그곳에서 글이 잘 써질 것 같다는 막연한 설렘이 들었다. 그리고 주인이 키우는 걸로 보이는 까맣고 작은 아기 고양이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까만 아기 고양이가 계속 눈에 밟힐 만큼 집이 마음에 쏘옥 들었다.


3단계) 디파짓(보증금) 걸고 계약

슬 씨에 의하면 방 컨디션은 작지만 깔끔하고 좋은데. 집주인이 약간 게이 느낌이라고 했다. 아일랜드는 2015년 동성 간 결혼이 합법화되었다. 나는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집주인이 남자여서 슬쩍 불안했는데. 직접 보진 않았지만, 게이라면 오히려 안심이다. 방 컨디션 좋은 데다 이만한 가격으로 싱글룸을 구하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나는 선뜻 보증금을 걸고 슬씨에게 계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더블린 4 구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이 다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이리시 문학가 샤무엘 베켓을 이름을 땄다. 아일랜드 국장이자 기네스의 상징인 하프 모양으로 제작되었는데.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힌다. 더블린 North Dock에 위치하여, 특히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더블린 4구역은 시티에서 가깝고 깨끗하며 부촌이란 점도 좋았다.

샤무엘 베켓 브리지 (Samuel Beckett Bridge) 

아일랜드 출발 일주일 전. 


집주인 크리스에게 3월 6일에 내가 도착하는데, 계약한 집이 문제없냐고 메일을 보냈다. 한데 크리스가 미안하지만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했다. 집을 구해서 안심했던 내게 이 무슨 청천벽력 소린지.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진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보증금은 반환해주겠다고. 다른 이유도 아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어쩌겠는가. 나는 삼가 조의를 표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졸지에 국제 노숙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 여차하면 현지 호스텔에서 지내야지 싶었는데, 다행히 유학원 매니저 슬씨가 나의 사정을 듣곤 선뜻 거실 셰어(카우치서핑)를 허락해 주었다. 


카우치서핑은 여행자가 잠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뜻한다. 현지인은 여행자를 위해 자신의 카우치를 제공하고 여행자는 무료로 혹은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그들의 카우치에 머무르는 일종의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다.


나는 Day당 전기세와 수도세 정도의 세금만 정산하기로 하고 카우치서핑을 할 수 있었다. 구세주와도 같은 슬씨는 두 명의 플렛 메이트들과 살고 있었고, St. 제임스 병원이 있는 더블린 8구역의 리알토 Rialto 역에 위치했다. 문득 Monday Morning 5.19 를 부른 리알토Rialto와 이름이 같다는 걸 깨닫곤 음악을 자동적으로 떠올렸다. 노래의 분위기처럼 내 상황이 비극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살아갈만 하고 참 따뜻하게 여겨진다.

게다가 리알토, 이름도 참 예쁜 역이잖아.


Rialto Station in Dublin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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