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은 축제 : 삶을 축제로 물들이기
3월 17일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축제로 손꼽히는 세인트 패트릭 데이 St. Patrick's day 다.
더블린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인 패트릭을 기리는 유명한 축제인데, 그를 상징하는 초록색 물결이 전 세계 도시 곳곳에 출렁인다. 몇해 전 미국에서는 강물까지 초록으로 만들어 떠들썩하게 축제를 즐기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매년 신도림 역 광장에서 아일랜드를 좋아하는 한국인과 아이리시, 그리고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어울려 세인트 패트릭 축제가 열린다. 아일랜드를 다녀와서 알게 돼 매해 참여했는데 지난 2년간은 코로나로 인해 참여하지 못해 무척 아쉽다. 내년 3월 17일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라는 처럼 축제를 즐기기 전,
나는 전 세계를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그가 누군지 궁금했다.
1. 세인트 패트릭은 누구인가?
아일랜드는 국민의 98%가 가톨릭신자이다. 세인트 패트릭 St. Patrick 성인은 영국 브리타니아 출생으로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최초로 전파한 사도(使徒)이다. 성인 패트릭은 16세 때 영국 서해안 지역을 침입한 북아일랜드 해적에 납치돼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6년 동안 가축을 돌보는 양치기 포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금식 기도를 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아 해안으로 도망쳐 배를 타고 아일랜드를 탈출했으며, 이후 프랑스의 수도원에 머물렀다. 그때 하느님께 열렬히 귀의해 신앙생활을 하던 성 패트릭은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꿈에서 다시 아일랜드로 가서 선교를 계시를 받았다.
432년 무렵에 아일랜드로 건너간 성 패트릭은 북아일랜드의 다운 주(County Down)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는 아일랜드 각지를 다니며 열성적으로 포교를 했는데, 그가 세운 교회가 365개에 이르며 기독교로 개종시킨 사람은 12만 명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인상적인 건 세인트 패트릭 성인이 아일랜드에서 가톨릭을 전파할 때 일이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통적인 켈트 다신교를 믿고 있었다. 기존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켈트 다신교 중 태양신(토테이즘)을 믿고 있었는데, 원주민들에게 반감을 사지 않고 가톨릭이 그대들이 믿는 태양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 십자가에 태양을 닮은 동그라미를 함께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일랜드 관광지나 교회의 비석에는 아래와 같이 십자가 바깥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진 걸 심심히않게 볼 수 있다. 그는 460년에 죽었고 그의 묘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성 패트릭은 461년 3월 17일에 죽었으며, 죽은 뒤에 다운 주에 있는 다운패트릭(Downpatrick)의 성당에 매장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죽은 뒤에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되었으며, 그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전설과 기적 이야기를 낳았다. 생전부터 이미 많은 전설이나 기적이야기로 채색된 그의 생애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는, 만년에 그가『고백』이란 이름으로 자기의 영적인 순례기를 라틴어로 쓴 서간뿐인데, 이 책은 주교직에 있는 동안 자기에게 가해진 비판과 공격에 대한 응답 형식으로 쓰였다.
2. 삶을 축제로 물들이기
본격적으로 거리로 나서 축제를 즐겨볼까 한다. 아무래도 축제의 장은 길거리가 최고다. 쇼핑과 버스킹의 천국인 그래프턴 스트릿 Grafton Street으로 가기로 했다. 펍문화가 발달하긴 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공공장소, 길거리에서 음주는 불법이다. 그러나 축제기간만큼은 전국민이 길거리에 나와 즐거운 파티 분위기를 즐기며 술을 마셔도 경찰이 단속하기가 힘들다. 비공식적이지만 이날 만크은 길거리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데, 다들 술과 흥에 취해 축제를 즐길 자격이 충만한 듯 보였다.
슬씨 커플과 KC Peach 카페에서 밥을 먹고 소소하게 티타임을 가진 후. 그라프턴 스트릿 근처에 위치한 차이니즈 레스토랑 Chinese Restaurant인 찰리에 들렀다. 그곳에서 파트타임을 하는 H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그래프턴 스트릿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거리는 초록 복장을 한 관중들로 붐볐고, 축제의 들뜬 기분이 나마저 들썩이게 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컨트리 스타일의 투박하지만 즐거운 노래와 연주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 된 기분으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어깨를 들썩들썩거리며 춤을 춘다. 처음 접하는 초록 물결이었지만, 나 같은 이방인도 그들 무리 속에 소속되어 있는 듯 느껴져 한껏 신이 났다. 과연, 축제답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인생을 축제로 비유했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 나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줍는 순간을 즐길 뿐이지 꽃잎을 모아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생은 축제와 같고, 매일 순간에 만족하며 살아갈 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지 않는 카르페 디엠과도 일맥상통한다.
낯선 타국에서
집도 구해야 하고, 일도 구해야 하는
모든 게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이지만
릴케의 시처럼 인생은 축제이다.
세인트 패트릭 데이로 인해 조금은 달뜬 기분으로
오늘 하루는 마음껏 축제를 즐기기로 했다.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