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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작 Mulgogi May 31. 2022

-09. 퇴직금을 받지 못해 더 잔인한 사월

부활절 봉기 행사가 열리는 더블린 중앙 우체국 (GPO)

시티에서 부활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다.


더블린 중앙 우체국( GPO : General Post Office)은 800년가량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아일랜드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16년 부활절 봉기에서 아일랜드 의용군이 중앙 우체국을 점령하고 아일랜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곳으로 우체국 내부에 독립선언문 글귀가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아일랜드 의용군이 6일 동안 건물을 점령했으나, 결국 영국군에 항복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건물은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추후 복구되어 1929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현재는 부활절 봉기를 특별히 다루는 박물관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에 있다.




이렇듯 아일랜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중앙 우체국 앞에서 부활절 행사를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지켜보는 아이리시 꼬마 아이의 눈빛이 저리 심각할 수 없다.


아이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던 건, 현재 나의 상황 역시 상당히 심각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 온 지 한 달이 넘도록 퇴직금을 정산받지 못했다.


6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고, 직원들에 대한 복지와 보너스를 잘 챙겨주던 회사였다. 알고 보니 회사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다. 가장 급한 지불대금부터 처리하느라 내 퇴직금 지불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그동안 회사에 대한 신뢰와 충성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었기 때문에, 경영상태가 어려워진 건 유감이었다. 


하지만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한 내가 오히려 죄인이 된 것처럼 머리를 숙여야 했을 때. 그동안 쌓아온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바닥에 떨어졌으며, 사람과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직이 행패를 부릴 때, 한 개인은 그저 당할 수밖에 없구나, 피해의식마저 생겼다.


한국과 아일랜드 시차가 맞지 않아 새벽녘에 겨우 일어나 회사로 전화를 걸어야 했던 점도 유쾌하지 않았다. 더 큰 실망은 재정팀 팀장님의 반응이었다. 계속해서 며칠만 더 기다리라며 지급일자를 어기고 번복하면서도 미안한 기색이 없던 재정팀 팀장님의 반응은 적반하장처럼 느껴졌다.  


내가 재정적으로 여유롭게 아일랜드에 왔다면, 회사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는 퇴직금만 달랑 믿고 아일랜드에 간 것이다. 당장 아파트 렌트 값과 생활비가 없어 귀국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느껴졌다. 내가 아픈 아버지를 두고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는데,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하는 수 없이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겠다 말했고, 재정팀 팀장님은 오히려 나를 괘씸하다 여긴다는 반응은 무척이나 실망스럽고 원망스러웠다.


한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아일랜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건 인과관계 속에 일어난다. 회사 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6년간 몸담았던 직원의 퇴직금을 차일피일 미루는 건 도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약자인 내가 지독히 싫었고, 절망감에 휩싸였다. 


게다가 퇴사 전. 재정팀 팀장님과 면담할 때의 일이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아일랜드에 가게 되었으니 퇴직금을 제 날짜에 지불해주셔야 해외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도 오랜 기간 직원이었던 내게 걱정 말라고, 당연히 그러겠노라 하셨기 때문에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처럼 실망감이 더욱  컸다. 


내게는 정말

잔인한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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