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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작 Mulgogi Oct 23. 2023

÷03. 여행은 항상 용기의 문제

1년간 아일랜드를 오기 위해 내가 준비한 것들

이런 형편에 어떻게 아일랜드에 갈 생각을 했을까? 


일단 노트를 펼치고 쓰기!

간단하다. 노트에 아일랜드를 가기 위해 필요한 서류는 무엇인지 돈은 얼마나 드는지 모조리 써 내려가며 미션 클리어하듯 하나씩 지워갔다. 그리고 돈이 없다든지, 아빠 때문에 못 간다든지, 내 나이에 늦었다든지 그 어떤 핑계도 대지 않기로 했다.


필요한 경비 책정, 돈 모으기!

매월 고정비용이 하루아침에 허리띠 졸라매듯 줄인다고 해서 줄어들 리 없고, 일 년 이년이 지나도 내가 버는 돈은 카드값과 아버지 병원비 그리고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계속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터였다. 한국에서 이렇게 쳇바퀴 돌며 살바엔, 내가 살고 싶은 인생 한 번쯤 살아보자. 나의 버킷리스트에 유럽 대륙에서 일 년 간 살아보리라는 칸을 채우고 싶었다.


복지정책과 병원의 행정적 절차 마련하기!

부양할 가족인 아버지를 위해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을 모조리 알아본 후 주민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받았다.

내가 챗바큇같은 직장생활을 해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을 땐 50만원이란 거금을 병원비로 부담해야 했지만, 부양의무자인 내가 해외에 있다면 아버지는 복지정책 대상이 될 수 있었고 병원비 부담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점차적으로 부양의무제가 폐지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의 복지 수준이 얼마나  모호하고 애매한데다 열악한지 깨달았다.


다음으론 아버지가 계시는 병원 행정직원과 담당의사 선생님, 간호사들 모두 만나 우리 부녀의 사정을 말하고 '잘, 부탁드린다.'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1년 동안 아일랜드에 갈 계획을 세운 후, 계속해서 방안을 마련해 갔다.


마지막으로 꿈을 이루기 위한 결심.

내가 먼저 행복해지자.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돌볼 수 있고, 주변인도 챙길 수 있다. 

가족에게 희생하는 대신 나 부터 행복하기로 마음 먹자. 내가 한국에 없을 1년 동안 홀로 계실 아버지로 인해 마음이 서걱거리고 흔들리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아버지에게 더 잘 하자, 라고 굳은 결심이 필요했다.


흔히 여행은 시간과 돈의 문제라고 한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 

나역시도 늘 그랬던 거 같다.


파울로 코엘료가 그러지 않았던가.

ㅡ 여행은 항상 용기의 문제라고.


나는 용기를 내었다. 어쩌면 아일랜드 행 역시 막연한 외국에 대한 동경과 현실 도피일지 몰랐다. 하지만 스무 살, 철부지처럼 대학과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상경했을 때와는 달라야 했다. 아일랜드 행을 준비하면서 몇 번이고 다짐했다. 아일랜드에 가는 것은 절대 현실 도피가 아닌 십 년간 쳇바퀴 돌듯 직장 생활을 성실히 해온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자 인생 제2막의 시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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