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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리아 성당의 천사들

by 드작 Mulgogi

CAMINO DE SANTIAGO

Fromista/ Carrion de los Condes

+15 Day / 2016.07.19

: 19.80km(Iphone record : 24.80km)


지난주 일요일. 친구가 TV에서 산티아고의 길이 나온다고 연락이 왔다. 급하게 TV를 켜고 보니 심상정 의원이 나의 외(국인)사(람)친(구)라는 프로그램에서 스페인 산티아고의 길 위의 산타 마리아 성당 알베르게에서 일주일간 지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 보였다. 바다에 파도가 출렁이듯 가슴에 전율이 일었다.

내가 일 년 전.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며 머물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타를 잡고 있던 젊고 어여쁜 수녀님은 순례자들이 놓고 간 옷가지를 깨끗하게 빨아서, 필요한 순례자들에게 나누어준다며 내게 반바지와 티셔츠를 직접 건네준 수녀님이었다. 여전히 내 옷장 속에 있는 그 옷을 볼 때마다 산타 마리아 성당을 떠올리곤 하는데. TV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그럼 일 년 전, 오늘 열여덟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이른 아침. 길을 걷다 도착한 첫 번째 마을의 BAR(바르)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베드로가 곧 다가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맞아 축하 동영상을 부탁했다. 산티아고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축하 영상을 손수 편집하여 한국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선물할 거라고. 부모님을 생각하는 베드로의 마음이 기특했다. 나는 마음을 담아 축하 영상에 기꺼이 동참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베드로에게 사람책을 부탁했다. 이제 곧 일행들과 따로 걸어야 할 날이 올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어지기 전에 베드로와 휘를 사람책으로 읽고 싶었다. 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여 베드로부터 사람책으로 읽었다.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19일 오늘까지 산티아고의 길을 걸었던 베드로는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지난 2주간 누나, 형 챙기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친절함을 잊지 않았던 그에게 고마움이 컸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며 먼저 다가가 손 내밀 줄 아는 베드로에게서 떠오르는 태양의 밝고 건강함이 느껴졌다.

이쯤에서 사람책 읽기를 마치고, 다시 길에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Carrion de los Condes(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로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산타 마리아 성당 알베르게에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며 칠째 잠잠했던 베드 버그 증상이 다시 올라오는 데다가, 햇볕 알레르기까지 겹쳐서 온 몸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알베르게 앞에는 먼저 온 순례자들이 알베르게 Open 시간에 맞추어 줄을 서 있었고, 알베르게에 짐을 풀기 전에 성당부터 잠깐 둘러보았다. 마침 저녁에 미사가 있다고 하여 참여할 요량이었다.

성당을 둘러본 후. 알베르게의 문이 열려 침대를 배정받고 샤워를 했다. 다음은 베드 버그 퇴치작전이 재가동 되었다. 옷가지를 모두 꺼내어 세탁기에 여러 차례 돌린 후 볕에 말려 두었다. 그러다 말려둔 바지에서 조그만 벌레가 있는 걸 보곤 베드 버그 새끼인 줄 알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진을 찍어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약사와 상담을 했다. 약사는 내가 찍어 온 사진을 보더니 그건 베드 버그가 아니란다. 그러면서 살충제와 파란색의 큰 비닐봉지를 건네며 소독 방법을 알려주었다. 가방과 신발은 큰 비닐봉지에 넣어 살충제를 뿌린 후 묶어두라고 했고, 베드 버그는 열과 물에 약한데 세탁기는 완벽하게 물이 흡수되지 않을 수 있으니, 천으로 된 모든 짐은 세탁기보다는 뜨거운 물로 손빨래를 하라고 권했다. 다시, 베드 버그와의 전쟁이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베드 버그는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밤에만 나와 활동을 하기에. 내가 가진 어떤 옷에서 베드 버그가 기생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어두운 색 특히 까만색의 옷은 모두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약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등산복 샾에서 통풍이 잘되는 등산화 바지와 모기 퇴치제를 샀다.



알베르게에서는 수녀님들이 기타를 치며 순례자들과 함께 노래 부르기가 한창이다. 저녁은 모두 함께 만들어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루시드 폴 노래 '사람들은 즐겁다' 가 떠올랐다. 나만 빼고 모든 순례자들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베드 버그 물린 곳과 햇볕 알레르기로 온 몸이 가려워 곤욕이었다. 잊을만하면 다시 나타나는 베드 버그는 산티아고의 길의 복병이었다.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지만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근처 병원에 가서 확실히 처방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서 다시 한번 곤란을 겪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영어를 할 줄 아는 호스피텔랄로 바드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병원에 함께 가주길 부탁했다. 친절하고 예쁜 미소를 가진 바드리는 흔쾌히 나를 따라나섰다.


알베르게에서는 수녀님들과 순례자들이 함께 저녁을 준비하며 서로 좋은 시간을 나누고 있는데, 나로 인해 함께 참여하지 못하는 바드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나는 바드리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그때, 바드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 현재 이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너야. 주님이 너를 보내주신 거야."라고.


나는 벌써 세 번째 베드 버그 증상이 올라오고 있는데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이 길을 끝까지 마칠 수 있을지 두렵다고.


그러자 바드리는 "이 벌레가 베드 버그이건 진드기든 벼룩이든, 큰일이 아니야. 너는 할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모든 게 안심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의사 선생님을 만나 증상을 설명하고 진료를 받았다. 내가 영어로 말하면 옆에서 바드리가 열심히 스페인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건 베드 버그 증상뿐 아니라 햇볕 알레르기 증상이 겹쳐진 게 맞다며 처방을 해주었다.

병원에서 돌아와 보니 수녀님들과 순례자들이 함께 준비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바드리와 내게도 소중한 저녁을 나누어 주었다. 수녀님들은 모두 한 마디씩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병원비와 약제비 그리고 등산 바지까지 오늘 하루만 EUR 100 이상 썼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너라고 말해주며 진심으로 나를 도와준 바드리가 있고, 순례자들이 놓고 간 옷을 깨끗이 빨아놓았다며 피부에 덜 민감한 면으로 된 옷을 챙겨주는 수녀님.


비록 미사를 드리지도 못했고, 수녀님들과 함께 노래하며 저녁 준비를 하지도 못했지만, 모두, 감사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주님께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오늘은 그 물음에 조금의 답을 얻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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