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을 보고
영화 Her을 봤다.
인공지능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극 중 테오도르를 보면서. 날 잘 이해해주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만다와 같은 인공지능이라면. 나도 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낄 것만 같다. 난 늘 마음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하나 이상은 두고 살았던 것 같은데. 어릴 땐 외할머니, 조금 커서는 친구.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애인이 그랬던 것 같다. 내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soul mate 같은 존재이자 가장 친한 친구. 그런 마음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예고도 없이 사라졌을 때의 감정. 테오도르가 사만다가 사라졌을 때. 운영체계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고 미쳐 뛰어갈 때의 감정과 overlap 된다. 특히, 예고 없는 이별은 더욱 그렇다.
연애도 해볼 만큼 해봤는데. 그중에는 사만다처럼 soul mate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모두 미완으로 끝났다. 다음엔 사랑 말고 연애만 해야지, 라는 설익은 생각도 해본다. 마음이 왜 이리 공허하고 허무한지. 영화를 보며 깊이 공감했다. 공허함 속에서 살아가는 테오도르가 사만다로 인해 삶의 활기를 되찾은 것처럼 사랑의 시작은 아름답지만, 그 끝은 잔인하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허무주의에 기대어 생각해보면 공들여서 서로를 알아가고 추억을 쌓는 일이 또 헤어짐이라는 결과가 예정된 거라면.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영화의 잔상은 극 중 사만다의 목소리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의 The moon song을 반복 재생하면서 더욱 나를 파고든다. 영화 속 테오도르의 감정이 느껴진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위안이 되는 사람이 인공지능이고, 육체가 없으며, 만날 수 없다니. 그 좌절감으로 울부짖는 주인공을 보며 영화일 뿐인데. 물리적인 이유는 때론 감정을 지배한다는 걸 이미 경험했기에. 비단 영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오늘 밤은 공허함 속에서 잠들 것 같다.
My dear,
Samant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