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처방합니다.
슬플 땐 달리기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모두 슬픔을 중화시키기에 좋다.
서가에 꽂힌 책을 보다가 짧게나마 좋아하는 책들을 나열하기로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1.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무언가 상실 후 읽으면 뻥 뚫린 가슴에 응급처치가 된다. 처음 하루키에 빠지게 만든 책. 한번 하루키에 빠지면 다른 소설들도 읽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그의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이 일치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쉴 새 없이 내게 질문을 던지게 해서, 뇌를 작동하게 만든다.
2.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에피톤 프로젝트의 ㅡ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ㅡ를 뻥 좀 보태서 천 번쯤 들으며 누군가 나의 심장을 아프게 찔러대던 날들에. 음악의 모티브가 이 책이란 걸 알고 집어 들었지만 아직 다 읽진 못했다.
3.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글 쓰는 이로서 읽으면 좋다. 꼰대가 아닌 선배로서 청춘들에게 하는 이야기.
4. 다음. 시인 마종기와 뮤지션 루시드 폴이 이국에서 주고받은 편지 <사이의 거리만큼 가까운> 의사와 공학도. 시인과 뮤지션으로서 타국에서 느낀 감정의 교류가 좋았다. 사실 이건 그들의 두 번째 작품이고, 첫 번째 작품인 <아주 사적인 긴 만남>부터 시작된 그들의 편지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다.
이외에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이응준 <내 여자 친구의 장례식>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 요시모토 바나나, 파울로 코엘료, 정이현, 박상영, 은희경의 소설을 읽는 재미도 좋다. 시와 에세이로는 이병률, 박준, 이기주, 심보선, 한강....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데 나침반이 되어주는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까지.
세상에 좋은 책, 작가, 시인은 많아서 다 담을 수도 없지만 이러고 있으니 현타가 왔다. 좋아하는 책들을 짧게나마 나열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책들이 너무 많아서 일축한다. 방금 전까지 전 세계의 모든 슬픔이 유령처럼 몰려오는 기분은 싹 사라지고 눈물도 메말랐다. 책을 일일이 나열하다간 밤을 지새울 거 같아서. 여명이 밝아 오는 걸 보니 이미 밤을 새우고 말았지만 현실감각을 되찾고, 글의 시작은 감성적으로 시작했지만 이성적으로 끝맺기. 나란 사람이 그렇게 감성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자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