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던 곳이나 특정한 곳을 표시하기 위하여 책갈피에 끼워 넣는 끈
가름끈
시의 가장 자리를 접어
서랍장에 넣어두는 버릇에게,
시를 접는 것은
마음까지 접는 일이라며
가름끈을 두자던 사람이 있었다
고운 가름끈을 건네던 하얀 손에는
도반(刀瘢)이 나 있었는데
칼로 연필을 깎다 생긴 거라 했다
시를 쓰거나 수서를 쓰기 위함이었으리라
가름끈을 넣어 두는 일은
서로의 운명을 가른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을 터였다
나는 그이 몰래 가름끈을 빼고
시의 가장 자리를 접어
서랍장 맨 아래로 밀어 넣었다
언제고 다시 만날, 일(日) 있겠지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서랍장을 닫았을 때,
거울 속 억겁 이후의 내가
현재의 내게 웃음을 헌정한다
체크 셔츠 위 비취색 스웨터를 초려 입은 남자
서가에서 책을 집어 들 때,
손에 비친 칼의 자취
그의 마크 제이콥스 안경 속에는
억겁 이전의 내가 책의 가장자리를 펼쳤고,
그가 깎은 연필로
상처를 사랑으로 번복하여 쓴 책에는
달콤한 안나 수이 향이 났다
문득,
이생의 얼굴은
전생에 가장 사랑하던 이의 얼굴이라는 풍문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