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은 좋고 그래서 나쁘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고독이 몰려 온다. 고독 중 일부는 중력이 되어 나를 짓누른다. 잠을 청했는데 두 시간만에 깼다. 한 때 슬픔으로 가득찬 나의 감정 최전선에서 싸워 주던 음악을 자장가 삼아 듣기엔, 여전히 아물지 못하고 여리고 무른 것들이 내 속에 남았나 보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눈가에 눈물이 주루룩 났고 베게잇을 적셨다.
감정은 소멸되지 않는다. 긴 슬픔의 장막이 걷히면 또 다른 슬픔의 장막이 쳐진다. 침울한 고통의 시간이 겨우 지났고, '이제 웃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싶은 날에도 삶은 여전히 불안과 고통으로 나를 선회한다. 그 지난한 반복의 과정을 이미 인지하고 있어도 또 다시 섬약한 마음은 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잠 못 드는 새벽, 상념의 숲을 헤맨다. 명멸하는 것은 옛 애인의 웃음뿐 아니라 가슴 뛰게 설레며 하고 싶은 일,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에까지 이른다.
‘처음‘이라는 것은 신선하고 설렘으로 가득 차 있어도 시간을 품으면 차츰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익숙함은 안온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때때로 소중한 것을 잃고서 후회를 한다. 익숙함이 두렵다. 일부로 슬픈 유의 노래를 꺼내어 듣는 일, 익숙해서 무뎌지는 것이 두려운 내가 요즘 자꾸 생활에 무뎌지고, 사람에 무뎌지고, 감정에 무뎌지기 때문이다. 부디 익숙함에 익숙해지지 말자고. 아이러니하게도 생활이든 사람이든 감정은 어려워야 나를 파릇하게 숨쉬게 했다는 것을. 쉬우면 재미없으니까, 라며 피식 웃던 너의 말에 주술처럼 이끌려 늘 쉬운 길을 두고도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습성을 몸에 배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문제는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이 문장을 손끝이 기억하고 나를 잡아끌었고 멈춰 서게 한 골목 하얀 벽에는 젊은 소설가의 빛바랜 흔적이 남았다. 혼자인 밤과 함께인 밤, 그리고 또다시 혼자인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시간이란 녀석은 어떻게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홍빛 팔딱거리던 심장도 차츰 무뎌지고 있음으로 미루어 보아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점이 시간의 좋으면서도 나쁜 점이라 여겨진다. 오늘 밤은 생활과 감정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좋으면서도 나쁜 밤들에 쓴 글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팔딱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했다. 온통 계절은 너구나, 너. 창문을 열고 오월의 까만 밤에 한숨을 짓다가 “다만, 지금 이 계절의 달콤함을 너와 함께 느끼고 싶을 뿐이야.” 라고 혼잣말을 토해낸다. 밤은 좋고, 그래서 나쁘다. 파니핑크의 노래를 켜고 가사를 미독하기 시작한다.
밤은 말이 없고,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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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날들이 조금씩 멀어져가고
사라지는 것들에 조금씩 익숙해져
당신을 기다리던 밤
없어진 날의 숫자만큼
작아지던 저 달이
당신 마음 내가 아니길
기도했던 밤
울었었던 밤
흘러가는 모든 슬픔이
너가 되어가던 그 밤
어려웠던 날들이 조금씩 멀어져가고
사라지는 것들에 조금씩 익숙해져
이젠 기다리지 않아
없어진 날의 숫자만큼
숨을 쉴 때마다
당신을 잊어가는 걸
함께 있던 밤
혼자이던 밤
이제 모두 지나가 버린
너라고 부르는 밤
- 밤은 좋고, 그래서 나쁘다. (by 파니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