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작가님과 만나다.
불교에는 시절 인연이라 하여 '애를 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만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못 만날 인연은 못 만난다.'라는 말이 있다. 우연히 합정역 카페 폴 바셋을 지나다 좋아하는 작가님을 만났다. 신기한 건 꼭 2 년 전에도 우연히 광화문 카페 폴 바셋 앞에서 작가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하여 나는 시절 인연에 빗댄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님에 대한 연모설을 풀어볼까 한다.
2018년 가을,
우연히 카페 폴 바셋을 지나다 좋아하는 작가님을 만났다.
작디작은 인연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2013년 가을,
종로에서 작가님의 글쓰기 강연을 들었다.
처음엔 수려한 외모에 반했고, 다음엔 인품에 반했다.
강연이 끝난 후. 평소 커피를 즐기는 작가님에게 더치커피를 선물로 드렸다. 그리곤 집에 가기 위해 종로 한복판 교차로에 서있을 때였다.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작가님도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커피가 고마워서였는지 차 한 잔 마실 시간을 내어 주셨다. 나는 청계천 앞 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잠시나마 작가님을 사람 책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때 마셨던 캐모마일 차의 향긋함이 가을밤의 운치를 더했다.
나무처럼 곧은 기상과 햇살처럼 밝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 맑고 긍정적인 기운이 내게도 전파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전에 없던 에너지가 생겨난다. 욕심이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오늘, 기분 좋게 잠들겠다. ㅡ라고 그 날 일기에 썼다.
작가님이 낸 몇 권의 책처럼 그는 말을 아껴 글을 쓴다. 잘은 몰라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자만하거나 독자를 쉽게 여기는 유의 작가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잠시라도 작가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이라면, 그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작가님의 두 번째 책이다. 나는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읽었는데 작가님의 사유와 감성이 잘 드러난 에세이다. 현재 ‘언어의 온도’의 모태가 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3년 당시. 작가님이 경제부와 정치부 기자, 대통령 스피치 라이터의 경력답게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이라는 자기 계발서를 막 출간했을 때였다. 내가 참여하던 독서모임 ‘늘해랑’에서 작가님을 초대하여 함께 독서모임을 갖기도 했다. 늘 독자와의 소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서평을 남겨준 독자에게 감사하다는 덧글을 남기는 것 또한 작가님의 인품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후. 내가 아일랜드에 다녀온 후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2016년. 당시 대한민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비현실적이고도 병적으로 아픔이 느껴질 때였다. 2년 간의 경력단절로 재취업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고 고독했다. 작가님은 그동안에도 꾸준히 책을 내셨는데, 그때 작가님이 직접 차린 출판사 <말글터>에서 펴 낸 ‘언어의 온도’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을 무렵 조금 많이 특별했던 날의 일기다.
2016년 가을,
북 토론 강사 모집 설명회에 갔는데, 설명회가 끝나고 건물 일층으로 내려오니 거리가 온통 가을로 물들었다. 일층에 카페 폴 바셋이 눈에 뜨였는데 좋아하는 작가님이 자주 가는 카페다. 처음엔 나도 여기서 글 좀 쓸까 하고, 잠시 카페 밖에서 통유리 창을 들여다보았다. 노트북으로 글 작업하는 사람이 있어 혹시 작가님은 아닐까, 기대했다. 하지만 작가님이 계실 리 없지 않은가.
그러다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찰나, 통유리 창 안 테이블로 누군가 다가와 <언어의 온도> 책을 놓는다. 순간 나의 눈은 낙타처럼 휘둥그레졌다. 작가님이 창가에 짐을 풀고 커피를 주문하러 카운터로 향했다. 너무 반가워 두 번 생각도 않고 카페에 들어가 인사를 했다. 작가님도 호들갑스럽지 않게 인사를 받았고 잠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혼자 오셨다 하여 괜찮으면 시간을 내어 달라 했다.
커피를 주문하며 내 것도 하나 주문해주셨고, 어머니에게 드릴 에그타르트도 잊지 않으셨다. 작가님 글에 묻어나듯 여전히 효심이 지극했고, 여전히 나무와 같은 기상을 가졌다. 작가님 글에서는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냄새가 난다. 작가님과 대화를 하다 보니 출판사와 작가의 성향도 잘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 출판사와의 출판 계약은 작가님이 쓰고 싶은 글의 방향보다 기자 출신이라든가 대통령 스피치 라이터라는 경력에 기반한 자기 계발서 쪽에 초점이 맞춰져 책을 쓸 때 어려웠던 심경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하여 언어의 온도는 <말글터>라는 출판사를 작가님이 직접 차렸고,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출판, 홍보, 마케팅까지 혼자서 일구고 계셨다. 직원을 여럿 두고 마케팅을 해도 어려울 텐데, 혼자서 그 모든 일을 하신다고 하니 글은 물론이고 작가님의 부지런함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작가님의 인간적인 면을 사랑한다. 학교 다닐 때 몰래 좋아하던 선생님을 마주하는 기분 같은 것이랄까. 긴장과 설렘으로 손이 덜덜 떨렸지만 짐짓 아닌 척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간 여쭤보고 싶었던 말을 다하고 나니 십 분만 내어달라 한 시간이 족히 삼십 분은 넘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출판사 관련 이야기와 작가로서 글에 대한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님께서 출판사를 직접 차리며 겪었던 어려운 점. 기자 시절 선배 작가들이 조언해준 이야기. 마치 어릴 적 듣던 옛이야기 보따리 같았다. 일례로 ‘언어의 온도’ 책 표지 디자인은 동생분이 화가여서 표지 콘셉트를 잡아주셨다고.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혼자 출판부터 홍보, 마케팅까지.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부럽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주 작가님이 말씀해 주신 글쓰기 tip
1. 김훈 작가님 - 본인의 글, 원고가 끝나면 다시 보지 않는다.
(인터뷰나 사실에 근거하는 글은 오류 수정 차원에서 여러 번 봐야 하지만)
2. 글 쓰다 안 써지면 바람 쐬러 가는데, 주러 카페에서 영감을 받는다.
3. 하루에 최소 두 시간, 한 시간은 글쓰기. 그날 하루의 정리. 자기 전 SNS 라도.
한 달만 글을 안 써도 글의 깊이가 달라지고 글쓰기 근육이 사라진다.
4. 회사처럼 시간을 정해두고 쓰는 사람도 있지만 작가님은 그렇게 강박적으로 쓰지는 않는다고.
그때 작가님과의 우연한 만남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할 수 있다'는 삶의 활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들 감사했다. 이후. 나는 재취업도 했고, 지금 회사 생활도 적응하여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2018년 가을,
이후 꼭 2년 만에 2018년 작가님의 신간 <한 때 소중했던 것들>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달>에서 출판한다고. 나는 그간 더블린 생활기며 산티아고 순례기도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데, 작가님은 승승장구하고 계시니 부러울 따름이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바람만 있던 터. 오늘은 오전에 거래처 미팅을 마치고, 합정역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서는 길이었다. 카페 폴 바셋을 보면 반사적으로 작가님이 떠오른다. 함께 점심을 먹은 회사 동료에게 말했다. ㅡ 이 카페가 작가님이 잘 가시는 곳인데. 2 년 전. 광화문 점에서 우연히 뵌 적이 있다,라고 말하는 찰나. 2년 전처럼. 카페 통유리 안쪽에 작가님이 짐을 내려놓는다. 여전히 나무와 같은 기상으로 나의 레이더 망에 걸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가님의 아우라.
카페 안 다른 독자에게 줄 사인을 하고 계시는 작가님께 다가가 인사를 했다. 너무 호들갑스럽지 않게. "안녕하세요. 작가님." 마침, 동료가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언어의 온도>였다. 우리는 작가님께 계속 이곳엘 계실 것인지 여쭙고, 카페 바로 옆 서점에서 신간을 사들고 작가님께 사인을 받았다.
‘언젠가 또 이렇게 우연히 어디선가 만나요.’ 작가님의 마지막 인사다. 요즘 드라마 대본을 쓰는 나로서는 이런 대사를 속으로 생각했다. ‘우연히 말고. 다시 만나면 안 될까요?’ 하고. 작가님께 말하진 않았지만, 들었다면 피식 웃으셨겠지.
동서 문학상 시 부문 맥심 상 수상과 함께 2년에 한 번씩 우연히 작가님을 만나는 행운이라니. 요즘 거대한 행운이 몰려오는 기분이다. 작가님께서 당분간 책은 내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평생 써야 할 기운을 끌어다 이번 신간을 쓴 것 같다고 하셨다. 다소 기운이 없어 보였는데. 작가님의 책을 보고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휴식을 취하듯 작가님도 잠시 내려놓고 삶의 쉼표를 찍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면 나는 미래의 행운을 끌어다 쓰는 것 같은 요즘이다. “오늘은 로또를 사지 마. 작가님을 우연히 만나서 오늘은 운이 다했어.” 같이 있었던 회사 동료의 말처럼. 어째 좋은 일들만 있어 불안하기도 하지만, 나는 좀 행운을 몰고 다니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런 우연의 일치로 좋은 사람들을 잘 만나는 기질이 있으니까. 그건 나의 복이라 여기고 내가 받은 만큼 나도 베풀면서 살면 되는 거다. 불안은 불안을 낳고, 긍정은 행운을 낳을 것이다.
신기하게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늘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듯 내 태양계에 사람들이 돌고 돌아온다.
오늘, 작가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