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01. 유럽에서 여행 가이드 도전하기

아일랜드 동부-남부-서부-북부 전역 답사

by 드작 Mulgogi

유럽에서 여행 가이드에 도전하기 (이력서 제출, 면접, 아일랜드 전역 답사까지)


더블린에 온 지 한 달 반. 집을 구했고 이제 Job이 필요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 유학생 커뮤니티 아유모에서 영국과 아일랜드로 여행을 오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가이드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접했다.


대학 때 호텔관광경영을 전공했고 주말을 이용해 국내 여행사에서 여행가이드로 활동한 내겐 맞춤 조건이었다. 게다가 지적 호기심이 많은 내게 영국의 역사공부와 영국과 아일랜드 간의 관광지 탐방, 그리고 내 모든 경험을 풍부하게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면접은 카페에서 가이드 회사 사장님과 간단하게 이뤄졌다. 한국인 커플도 함께 면접을 봤는데, 이들은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유럽에서 1년 살기로 하고 아일랜드로 왔다고 했다. 멋있는 커플이라 생각하며 내심 부러웠다. 면접은 간단한 티타임으로 끝났다. 며칠 후 우리는 김치레스토랑(한국 식당)에 다시 모였다. 2박 3일간 중요한 수습교육이 있을 예정이며, 즉시 참여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기회를 준다고 했다.


결정 전에 충분히 고민을 하되 한 번 결정하면 바로 GO!하는 행동파인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바로 어학원에 홀리데이를 신청하고 2박 3일간 아일랜드 전역 답사이자 수습교육에 따라나섰다. 수습 일정은 아래와 같았다.


수습 일정 (2박 3일)

위클로 Wicklow - 칼로우 Carlow - Cashel(ROCK OF CASHEL) - 코브 Cobh - 코크 Cork - 블라니 캐슬 - 마크 룸 - 카운트 캐리 - 킬라니 - 링 오브 캐리 Ring of carry - 워터빌(찰리 채플린) -리머릭-Adare - 골웨이 Galway - 캐슬 바 Castlebar - 메이요 Mayo - 슬라이고 Sligo - 이니스프리 섬




어학원에 홀리데이를 신청하고 2박 3일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을 시작으로 아일랜드의 동쪽에서 남쪽, 남쪽에서 서쪽, 다시 서쪽에서 북쪽으로 섬나라의 한 바퀴를 돌며 수습교육에 들어 갔다. 불과 2주만에 있었던 일정이었다.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영국 런던 -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교육이 시작된다.


주요한 관광지마다 정차해 아일랜드의 역사, 관광정보, 문화와 음식 정보까지 방대한 양의 교육이 진행되었다. 노트에 주요 키워드별로 메모를 해가며 꽤 열심히 답사와 교육에 참여했다.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고, 당장 돈도 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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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지도.PNG
<아일랜드 지도>


여행 가이드와 맞바꾼 기회 비용


그때 마침 한국에서 내게 소설 쓰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해주셨던 여성 소설가 분이 취재차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기 전에 더블린엘 잠시 들르신다는 소식을 접했다. 약소하나마 아일랜드 기념품을 사두고 이국에서 작가님을 만난다는 것은 알마나 반가울까 여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그 시기가 교육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작가님을 뵙지 못해 굉장히 아쉬웠다.


또한 주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주최 하에 '유학생과의 만남'에 선발되어 초청받았으나 영국 런던 -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교육일정과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아일랜드 답사 때와는 달리 실제로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과 함께 메인 가이드를 보조하면서 무보수로 교육을 받게 된다. 그렇게 교육을 통과해서 가이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게 되면 실제 메인 가이드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유럽에서 여행가이드에 도전하기 위해 어학원도 못 가고 모든 라이프 패턴을 가이드 교육 일정에 맞추면서 여러 다른 기회를 놓쳤지만, 아쉬움을 달랠 틈도 없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한 번 미쳐보고자 지금은 몰입해야 할 때임을 잘 알고있다.


몰입에 대하여


요 며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다. 다만 몰입할 뿐이다. 아일랜드의 역사에 대해, 영국의 역사와 문화, 문학과 예술에 대해. 몰입의 즐거움으로 어깨가 뻐근하고 두 눈이 쾡해져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미치고 싶다.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는 것이 예전에 처음으로 신춘문예에 도전한다며 시를 퇴고하고 또 퇴고할 때, 내내 앉아서 글만 썼을 때에도 꼭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큼 유명한 문학가가 많은 아일랜드. 지난 2박 3일간의 아일랜드를 답사했을 때 아일랜드의 민족 시인이자 희곡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W.B. 예일츠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새겨겨 있었다.


"지나가는 가객이여 삶과 죽음에 냉철한 시각을 던져라"


어김없이 누군가 보고 싶은 밤이다. 하나 밤을 새워가며 한국과 통화하며 퇴직금 문제를 비롯해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몇 있었고, 며칠 만에 주어진 꽤 많은 과제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과업이 있어 싸구려 감상에 젖어 들 시간조차 없다. 간혹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거나 벌써 일 년이구나, 하며 유수와 같은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할 때마다 떠올리는 것 같다.


언젠가 나는 죽는다는 것을.

그러니 현재에 충실할 것을 오늘 밤도 되새긴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 1865년 6월 13일 ~ 1939년 1월 28일)는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19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노벨 위원회는 "고도의 예술적인 양식으로 전체 나라의 영혼을 표현한, 영감을 받은 시"라는 평가를 남겼다. 아일랜드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1] 예이츠는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자신들의 뛰어난 작품들을 완성해 낸 몇 안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2] 예술가인 잭 버틀러 예이츠의 형이며 존 버틀러 예이츠의 아들이다.


1891년 동지들과 더불어 아일랜드 문예협회를 창립, 당시 팽배하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이어 그레고리 부인 등과 협력하여 1899년에 아일랜드 국민극장(후의 애비극장)을 더블린에 창립하였다. 이 동안 그는 환상적이며 시적인《캐서린 백작부인》(1899년 초연)을 비롯하여 몇 편의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 J.M.싱 등과 협력하여 아일랜드 극(劇) 발전을 위하여 힘쓰는 한편, 미모의 민족주의자 M.곤 등을 통해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후에는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1922∼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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