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02. 직접 겪은 유럽여행가이드의 요건과 어려운 점

by 드작 Mulgogi

결코 만만하게 보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으나, 첫 수습으로 사장님을 따라 4박 5일간의 영국 일주를 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내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가이드라는 직업에는 많은 자질과 요건이 요구되었다. 한데 세상에나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부터 시작하여 생활 정보, 관광 정보, 관광지에 대해서 공부할 것이 끝이 없었다.


1. 가장 먼저 체력이 중요했다. 그동안 운동을 소홀히 대했던 내 체력이 4박 5일간의 수습으로 바닥이 나 버린 것이다. 내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걸음걸이가 축축 늘어졌는지, 사장님이 "우리 일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두지 않는데 OOO 씨는 일할 때 여자임을 어필하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지적을 하셨다. 숙소에 도착하거나 출발할 때 손님들의 캐리어를 몸이 부서져라 싣고 내리느라 팔에 알통이 배길 지경이었는데, 분명 의도치 않았지만 여기서 절대 갑이신 사장님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내가 부족했겠지, 라며 더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캐리어를 싣고 내렸다.


가이드라는 직업은 추워도 추워 보이면 안 되고, 더워도 더워 보이면 안 되며, 아파도 아파 보이면 안 되며, 기분이 좋지 않아도 웃는 척 연기해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이셨다. 또한 가이드가 초심을 잃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하기에 머리가 아닌 몸의 근육으로 기억하게끔, 단단히 배우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예를 들어 손님이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보았을 때, 처음엔 직접 안내를 해주다가 다음엔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다가 결국엔 턱으로 가리키는 것. 이것은 가이드가 초심을 잃은 것뿐 아니라 자질이 없는 것이기에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다음으로 유창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여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지만, 버스 드라이버가 영국인이고 모든 관광지와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필요한 영어가 필수적이다. 원어민과 같은 유창한 영어실력은 필요 없어도 영어에 대한 최소한의 두려움이 없어야 했다. 한데 더블린에 도착한 지 한 달 반, 이제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는 나의 영어실력으로는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안되면 되게 하라!" 불굴의 의지인, 나는 한국 인다. 이렇게 속으로 얼마나 마인드 컨트롤을 했는지 몰랐다.


3. 판단력과 순발력

게다가 여행은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만약이라는 변수에 대해서 두려워졌다. 더욱이 여행사의 한국 본사 직원이 탁상공론으로 짜 놓은 일정표는 촉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촉박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관광 지리도 무리 없이 알아야 했고, 버스 드라이버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판단력과 순발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만큼 여행하는 내내 날씨를 비롯해 변수가 너무 많았다. 더욱이 30명의 관광객을 한국도 아닌 영국과 아일랜드를 오가며, 모든 숙박시설, 레스토랑, 관광지 예약과 더불어 통솔. 버스 드라이버와 일정 조율까지. 혼자서 이 일정을 진행한다는 게 가능한 것인가.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수습 이틀 째 되는 저녁에 사장님께 혼자서 이 일정을 진행한다는 것에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4. 수직적인 근무 환경 감수하기

아차 싶었다. 수평적인 분위기로 초보 가이드의 애로사항을 깊이 헤아려주고 조언을 해줄.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기초부터 잘 갈고닦은 가이드를 키워줄 사장님일 거란 건 나의 착각이었다. 한국보다 더 수직적인 체계에 더 보수적인 성정을 가진 사장님이셨던 것이다. 결국 솔직하게 말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당시에는 별말씀 없던 사장님이 며칠 후, 운을 뗐다. 그 말을 했을 당시 내게 대단히 실망하셨다고. 내가 삼십 대를 넘어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 한국에서 가이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꽤 컸다고. 수습 이틀 째 '혼자서 30명의 관광객을 통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솔직한 나의 의견이 하고자 하는 의지 결여로 보였다고 하셨다.


<<내가 한국에서 했던 가이드 경험은 일정이 이렇게 빡빡하지 않았다. 10대의 버스가 함께 움직여 각 버스마다 베테랑 가이드가 있었다. 나는 내 담당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고 손님들에게 관광지에 대해 설명을 했던 게 주요 임무였고, 베테랑 가이드들에게 배우며 내 담당 버스의 관광객만 통솔하면 되었다. 초보여도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긴 한국도 아니고 언어도 지리도 낯설기만 했다. 모든 숙소와 레스토랑, 관광지 예약과 변경 확인을 위해 영어를 구사하며 현지인과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외할머니 말씀대로 세상은 정말이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이후 사장님의 입장에서 나를 수습시켜 본 결과 너무도 불만족스러웠는지. 남은 일정 내내 불평과 말로 할 수 있는 온갖 피습을 폭격처럼 쏟아부었다.


나도 나름 고생을 안 해본 사람이 아닌데, 내가 왜 이 분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울컥 알 수 없는 서러운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거듭되는 언(言)의 피습에 몸과 마음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이래 봬도 산전수전 공중전도 다 거친 나인데, 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조차 못했다. 그분 눈에는 내가 딱 그리 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관두게 된다면 나는 어디까지나 그렇게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마는 그대로 낙인찍힌 채 사장님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질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아직 전 직장에서 퇴직금도 수령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묵묵히 손님들은 물론 사장님 비위까지 맞춰 이를 악물고 첫 수습을 마쳐야 했다. >>


5. 심리적 부담

또한 돈만 보고 이 가이드란 직업에 뛰어든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단순히 여행을 좋아해서 시작하는 일이라면 가이드라는 직업을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는 변수가 너무도 많고 심적으로 부담감도 꽤 크기 때문이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면 그 어떤 직업보다 매력적인 직업이 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수습을 하는 동안 물론 힘들었지만 나는 이 일을 많이 좋아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매력적인 직업을 앞으로도 잘해 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즐겨야 한다. 힘들어도 즐기면서 그 속에서 정성을 다하면 손님들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얻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오해를 사기도 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 올 때도 있다.) 선임 가이드가 해 주신 많은 말들을 되새기며, 내 마음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깨달아가며 마음을 다잡았다.


6. 무한 대기 상태, 할 수 있다는 의지

첫 수습에서 사장님 눈에 합격하지 못한 나는 항시 대기 상태였다. 가이드 교육을 받기 위해 어학원에 Holiday도 신청했는데, 수습 기간에 마음에 들지 못해서 한 달 보름이나 대기하며 체력을 기르고, 가이드 공부를 하고 있어야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하니 사장님의 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모두 나를 염려해서 하는 말씀이었고, 나보다 살아온 경험이 많기 때문에 어른으로써 조언해 주신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먼 나라 이웃나라, 영국 편을 읽으며 영국 역사를 익히고 수습 동안 익히고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이 일은 잘하는 사람에게 잘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는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라, 첫 번째 수습 후에 내게는 많은 기회가 사라졌다. 그렇게 한 달 보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체력을 기를 겸 피닉스 파크를 달리고 있을 때 반가운 전화가 왔다. 드디어 두 번째 수습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번에는 다시는 타인을 비롯하여 나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기로 결연한 의지로 한 발 한 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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