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로 너무도 쉽게 타인을 평가하고 비난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이 나의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라고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장님에게는 나의 인성이나 자라온 환경, 현재의 가치관은 관심이 없던 것이다.
공과 사를 구별하고 순발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손님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일을 잘하는 센스 있는 직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사장님 마음에 드는 직원이 필요했을 거다. 그렇게 마음에 들고 일을 잘하는 직원이 계속 좋은 성과를 이뤄냈을 때 그땐 사장님도 나의 인성이나 자라온 환경, 현재의 가치관 같은 것에도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지금에서는 흡족하지 않은 수습 직원의 사정을 모두 들어주고 있을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수습을 하면서 사장님이 내게 했던 말들이다.
OOO 씨는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았는지 아니면 막낸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구나.
OOO 씨는 그 나이를 들도록 세상을 너무 모르는 거 같아.
집에서 얼마나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OOO 씨는 너무 여리고 사람을 잘 믿는 거 같아. 좋은 말로 하면 여린 거지, 나이에 비해 어린것 같아.
사람을 무턱대고 믿어서도 안 되는 게 우리 일이지.
어디까지나 많은 돈을 지불하고 온 손님에게 최선을 다 할 의무는 있지만,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주길 바라. 오버해서 잘해줄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오버해서 잘해준다는 것을 사람들은 나중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패키지여행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야. 계속해서 잘해줄 수 있다면 손님에게 선의를 베풀어.
하지만 여행 내내 그렇게 잘해주다가도 한번 잘 못하면 손님들은 불만이 쏟아진다는 것을 명심해.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 일이 정성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야.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내가 너무 오버해서 친절했나 싶어, 그 친절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자면,
OOO 씨는 잘 웃지 않는 것 같아.
OOO 씨는 너무 진지해.
OOO 씨는.......
손님이 안 보일 때마다 끊임없이 날카로운 눈빛의 사장님은 내게 나무라듯 말을 쏟아부었고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찝찝한 눈으로 나를 떠보듯 바라보고 말하 가시 돋친 말들. 수습 내내 사장님의 그 말들이 마음에 맴돌아 찝찝한 기분에 억눌려 과연 나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걸까, 라는 자책을 하면서 우울했다.
그리곤 내가 전 직장에서 퇴직금을 못 받은 이야길 왜 하지? 얘가 이런 얘길 왜 하지?라고 생각하셨단다. 가이드 수습 기간 중 사장님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은 가차없이 잘라버리고, 무보수로 보조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하는 교육생들에게 사장님은 대단한 아량을 베풀며 무료로 교육을 시켜주며 여행을 시켜준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다. 그래서 내가 전직장 퇴직금 이야길 꺼낸 것이 당신의 마음을 떠보는 것처럼 보였는지 굉장히 불편했던 거 같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안 믿는 사장님과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랐던 것 같다. 사장님은 그야말로 나를 기승 전편견으로 대했고, 나는 속상했다. 어떻게 하면 그런 편견을 없앨 수 있을지는 나의 몫이겠다.
나도 나름 고생을 안 해본 사람이 아닌데, 내가 왜 이 분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울컥 알 수 없는 서러운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거듭되는 언(言)의 피습에 몸과 마음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이래 봬도 산전수전 공중전도 다 거친 나인데, 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조차 못했다.
그분 눈에는 내가 딱 그리 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관두게 된다면 나는 어디까지나 그렇게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마는 그대로 낙인찍힌 채 사장님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질 것이고 가이드 기회도 박탈되겠지. 어학원도 홀리데이를 내고 보름 넘게 바쁜 교육일정을 소화하며 가이드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무보수로 보조 가이드 일까지 하며, 알아서 보고 배우라는 식의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까지 절대 괜찮을 리 없는 일을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과연 당사자가 아닌 누군들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그 많은 슬픔을 끌어안고서도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보였다면, 그 사람은 분명 속으로 가슴 치며 눈물 흘렸던 것임을 잊지 말자.
가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다움을 강요하려 한다.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넌 씩씩하잖아, 라며 툭툭 던지는 이 말속에서 교묘하고도 잔혹한 말의 폭력을 느낀다. 한 사람이 아무렇지 않기 위해서, 씩씩한 척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견디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지 않는가, 당신은.
내가 부모님과 할머니들의 사랑을 아니 받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편견들을 갖게 할 만큼 그리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을 한 것만은 아닌데 억울한 생각이 들어 자꾸 눈물이 났다. 너무 여리다고 했다. 좋은 말로 하면 여린 것이고 나이에 비해 어리다고 했다.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울먹거리면서도 또박또박 나의 의견을 말한 게 화근이었다. 이게 바로 "라떼는 말야." 보다 더 무서운 편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