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05. 다치더라도 괜찮아요, 내 인생이잖아요

by 드작 Mulgogi

에든 버러 수습 중 새벽 4시가 되도록 잠들지 못한적 있었다.

나는 호텔 방 탁상의 희미한 조명빛에 의지해 붓펜으로 열심히 썼다.

사각사각 써 내려간 글귀는 'Good People Bring Sunshine'다.

손님들을 위해 마음을 담은 소박한 캘리그래피 선물이었다.


Good People Bring Sunshine.
선한 사람들은 햇볕을 가져 온다.

스물두 명의 손님들을 위해 손 글씨를 쓴다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4일 간 가이드 수습으로 온몸이 고단했으나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손님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자그만 추억이라도 선사하고 싶었다. 손님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더듬어 가며 짤막한 메모를 곁들였다.


그러나 새벽 4시까지 잠들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녁에 가이드 수습을 받는 사장님께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까닭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가이드라는 직업은 손님에게 현지 안내와 함께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다. 이에 앞서 손님의 안전에 대한 책임도 막중하다. 오늘 낮에 모시던 손님 중의 한 분이 멀미인지 체한 것인지 영문을 모른 채 컨디션이 급격히 저하되었고 무리 중에서 뒤처졌다. 아직 일정의 반이나 남았던 상태였고, 여행 도중 아프면 당사자는 얼마나 힘이 들까.


몇 해전,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 외할머니와 이모, 엄마, 사촌 이렇게 넷이 제주도 여행을 간 적 있다. 당시 할머니는 연세가 많았음에도 정정하셔서 여행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당시 이모는 투병 중이었지만 그토록 소원하던 3대가 함께한 여행이었다. 할머니 보다 이모가 힘들어서 일정을 모두 소화하지 못한채 이모와 사촌은 도중하차해야 했다. 그래서 여행 도중 누군가 아프면 함께 간 일행도 난감하다는 것을 익히 아는 바였다.


마침 나는 잘 체하는 체질이라 (나를 위해) 손을 따는 사혈 침과 상비약을 구비하고 있었다. 내면에는 상반된 두 자아의 목소리가 요동쳤다.


“이걸로 손을 따면 손님의 컨디션이 회복되는데 도움이 될 거야. 어서 말씀 드려.”라는 제1 자아.


“지금 수습기간인데 혹시라도 손을 따다 잘못되면 어떡해.

게다가 버스 옆 수화물 칸에 맨 구석에 있는 캐리어에서 바늘 침을 빼야 하는데 귀찮지 않아?”라는 제2 자아.


결국 일정 내내 이렇게 힘드신 것보다는 손을 따고 컨디션을 회복하셔서 남은 일정도 마저 소화하시길 바라는 제1 자아의 목소리가 이겼다. 나는 손님께 혹시 계속 아프면 말씀하시라. 손을 따는 사혈침이 있다고 슬쩍 전해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지켜보던 대표님에게서는 이런 말이 돌아왔다.


“ 이럴 땐 그저 우리는 그저 손님 앞에서 걱정하고 그걸로 최선인 것이다.”


나 역시 걱정이 됐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손님의 체기를 누그러뜨리는 일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대표님은 평소에 늘 손님을 최고로 생각하고,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는 가이드라는 직업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과 사명감을 가졌던 분이다. 어디까지나 마음 가는 대로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면 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이토록 모순적인 사장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혼란스러웠다.




그날 저녁. 대표님은 손님에게 드릴 켈리그라피를 쓰고 있는 내게 말했다.


"내일 일정 공부나 하지. 뭐하는 거지?" 못마땅하다는 듯 투였다.


대표님이 괜한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할까 봐 오늘 일정을 정리 중이라고 얼버무렸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 그때부터 쉬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귀가 따가울 정도로 계속된 사장님의 언의 피습.


내가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한 진짜 이유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모든 것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선하고 살만한 곳이다. 그 믿음에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공자의 인(仁) 사상을 이어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나 성장해온 환경이나 물욕으로 악하게 된다는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악한 행위를 모두 용인하자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믿어야 하는 존재이지. 경계하고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성과 감동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표님께 또박또박 말씀드렸다.


“ 사장님이 늘 말씀하시는 손님을 최고로 생각하고,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모시라는 말씀. 낮에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앞에서 걱정하는 척하면 되는 것이지, 손님에게 오버해서 친절할 필요 없다는 말씀. 사장님이 늘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라는 말에 위배되는 게 아닌가요? ”


이번엔 사장님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네가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고 앞으로도 그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손님들이 좋은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손님들을 만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인 것인데, 기본적인 만족을 시켜주지 못하면서 네가 선의로 베푼 마음이 나중에 오히려 독이 되어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이 염려되는 것이고, 그 부분에서 너는 너무 여린 것 같으니 니가 다칠까 봐 그러는 것이다.”


덧붙여 말씀하셨다.


" OOO 씨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적당한 연기와 적당한 여우 짓도 필요한데 너는 너무 세상을 좋은 곳으로만 바라보는 거 같아. 그렇게 사람을 잘 믿어서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여행을 온 손님들에게 큰 불만을 사게 됐을 경우, OO 씨 잘못이 아닐지라도 올가미를 쓰고 큰 컴플레인을 받을 수도 있어. 그럼 OO 씨만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얘기지. 사람들에게 너의 속마음을 모두 보이지 말거라."


분명 나를 위해서 말씀해주신 거라는데 기분이 석연치 않았다.

모두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정말 날 걱정하는 사람인가 생각해봤다.


면접을 보고 수습 교육을 받으면서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로 알게 된 지, 이제 고작 한 달. 대표님은 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럼에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잣대로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평가했다. 예를 들면 내가 아일랜드에서 가이드를 하면서 애로사항에 대해 조언을 구할 때, 진심어린 조언보다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냐느니 나약해빠졌다느니.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실망이다.' 등의 인신공격 및 가스라이팅을 했다.


말로는 널 위해서라고 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이건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니까. 그렇다면 딱 거기까지.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한 어떠한 역사도 모른채 나를 위한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대표님은 날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였다.

우리는 이럴 때 진심으로 날 위한 조언인지 가스랑이팅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땐 정말 날 위한 말일까? 내가 잘못한 걸까?

고민하면서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서야 돌려주고 싶다.


"다치고 깨지더라도 괜찮아요, 제 인생이잖아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경험하고 깨닫는 게 중요하니까요.


다치지 않으려고 사장님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건

저도 아니고, 내 인생도 아니고, 사장님 프레임 속에 있는 꼭두각시일 뿐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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