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06. 더블린에선 꼭 잔돈을 바꿔서 버스를 타야 해

중용 23장, 정성을 다하면 감동이 온다.

by 드작 Mulgogi

에든 버러까지 수습 가이드 일정을 마치고 더블린으로 돌아온 후.


며칠간 가이드 회사 대표님이 한 말들을 곱씹으면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과 가이드 회사 대표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달라서 오는 가치관의 충돌. 이로 인해 대표님 눈 밖에 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다 영화 <역린>을 보았다.

극 중 상책 역을 맡은 정 재영 분의 대사. 중용 23번째 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로지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배워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ㅡ 중용 23장.


종종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 순진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좋은 말로 순진한 것이지 속뜻은 멍청하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들이 일제히 하던 말들은 "사람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착하지 않아. 너무 믿지 말라."는 충고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간을 보는 상태에서는 서로에게 어떤 신뢰도 쌓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아직은 선한 사회이며 그걸 증명해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수습에서도 대표님이 어떤 부분을 우려해 내게 사람들을 믿지 말라고 말했는 지도 알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 그저 손님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고 싶었다.


중용에 나오는 글귀처럼 정성을 다하면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세상도 손님도 나를 이용하거나 그저 가이드가 아닌 사람으로 대해줄 것이라 믿는다.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아직 세상은 선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막 내렸을 때,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일순 내 얼굴로 날아든 우산. 어디까지 가느냐며 비가 많이 온다며 우산을 씌어주던 아주머니의 웃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곳 아일랜드에서 에든 버러 첫 수습을 마치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버스에 오른 날. 아일랜드는 버스비로 지폐를 내면 잔돈으로 바꿔주지 않는다.


미처 잔돈을 바꾸지 못한 채 버스에 오른 내게 단호하게 내리라고 말하던 버스기사에게 ‘내가 이 아가씨 버스비를 낼게’ 라며 선뜻 버스비를 대신 내어 준 할머니는 내게 ‘더블린에서는 꼭 잔돈을 바꿔서 버스를 타야 해’ 라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선심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고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시대라고 해도

이런 선한 사람들이 더 많아서 아직은 세상은 살아갈 만하지 않은가.


나부터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 진심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언젠가 통할 거라고 믿는다.


순진하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게 바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