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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Jun 02. 2020

무너진 세계라도 네가 함께라면..

소설 리뷰 01_[목소리를 드릴게요, 보건 교사 안은영]

몸도 마음도 급격하게 소진되어 누워서 책만 읽었다. 지난겨울 이후로 이런 감각은 오랜만이다. 친구들을 부추겨 벌리려고 했던 일도 뒷전으로 미뤘다. 언제나 동력이 부족한 비행체처럼 막 날아오르려다 고꾸라진다. 덕분에 정세랑의 책을 두 권 연속 읽었다. 진짜로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책만 읽을 수는 없어서 일상을 유지하고 남는 모든 시간에 책을 들고 누웠다. 어렸을 때부터 누워서 책 읽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엄마는 그 때문에 내 눈이 나빠졌다고 했다. 남편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했고, 어느 쪽이라 해도 이미 나빠진 눈이 좋아지진 않으므로 상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누워서 책을 읽는다. 




정세랑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채널 예스의 인터뷰에서였다. 

정세랑,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남은 작가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꿈을 좇겠다며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애들 재우고 매일 밤 컴퓨터 앞에 앉는 나에게 너무 매력적인 제목이었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사실 아직도 어떤 글을 써야 하겠다는 뚜렷한 방향 같은 것도 없다. 언젠간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 늦기 전'이 지금이어서 시작한 것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작가들의 나이가 내 또래가 되었다. 신인 작가의 책을 찾아 읽는 것이 아니므로 이미 궤도에 오른 작가들인데, 심지어 더 어린 작가들도 슬슬 눈에 띈다. 패자부활전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존 문단에서 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여느 문단 작가의 문장에 못 미치지 않았고, 상상력, 그 상상력이 장르적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겠다 싶다. 그냥 장르문학으로 남자. 정세랑 작가는 신춘문예나 기존 문예지가 아닌 판타스틱이라는 장르 소설 월간지에서 등단하게 되었다. 세상이 다양해지고 그래도 이전보다는 다양함이 인정받는 세계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감사한다. 정세랑 개인에 대한 인상은 - 단순히 인터뷰와 책에서 받은 느낌일 뿐이지만 - 에너지가 밝은 사람이다. 단번에 느껴졌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그래서 팬덤까지 생겼나 보다. 


 [보건교사 안은영] 


장편인 줄 알았는데.. 

첫 편, 단편이었다! 아쉽다. 재밌었는데.. 이렇게 쭉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을 텐데...

그랬는데 다음 편에 또, 안은영이 나오는 것이다! 단편 같은 이야기들이 앨범처럼 묶여있는 장편이었다. 멈칫한 순간이 무색하지 않도록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만큼 잘 읽히고 재미있는 작품. 가독성 갑이었다. 분명 오컬트 장르였는데, 다 읽고 보니 로맨스 소설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하며 무릎을 탁 쳤다. 내심 만족감에 입가가 길어졌다. 최대한 스포는 안 하고 싶었는데... *(이제 진짜 스포일러입니다. 주의하세요.) 기왕 스포 한 김에 안은영과 홍인표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말해보자면, 사업상 파트너 같은 무던한 사이이지만 끈끈한 동지애가 흐른다. 연인보단 부부 사이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사이인데, 마지막 장에 가서는 조금의 이질감 없이 온통 그렇게 핑크빛을 칠해 놓을 수 있는지. 그것 또한 작가의 능력 이리라. 

전체 내용은 어느 고등학교에서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보건 교사 안은영과 특별한 기운을 가진 한문 교사 홍인표가 세상을 망치는 악한 기운들과 싸우는 이야기라고 설명하면 스포 없이 잘 설명했으려나. 


장르와 형식을 넘어서 정세랑 작가가 바라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각 편의 주인공인 인물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누구나 품고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 아픔일 수도 있고, 사연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풀어가며 사람 안에서 진짜 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준달까.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해하게 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불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린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는 사람. 시대를 지나왔음에도 지나온 시간에 대한 반성 없이 가지고 있는 걸 놓치지 않는 데만 집중하는 사람.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 대한 친절을 1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 中>


마지막 장들을 읽으며 울면서 기뻤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작업도 되고 있다길래 찾아봤더니, 캐스팅에 정유미, 남주혁. 홍인표 선생이 키가 컸던가? 사실 소설을 읽으며 그렸던 이미지와는 좀 다른 캐스팅이지만 두 사람도 좋아하는 배우이고 이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드라마 작업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살아있는 안은영이 수많은 원작 팬들에게 실망을 안기지 않기를 바란다. 


들꽃처럼 널 사랑해


 [목소리를 드릴게요] 


친구가 지브리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보고 감상을 SNS에 포스팅했다. 

기후변화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왜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일까.


매우 신랄한 생각이지만, 동의하는 부분이다. 모두 기후 위기에 대해서 고갈되어 가는 자원과 인간의 이기에 대해서 또 종적을 감추어 버린 종들과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천재지변에 대해서 걱정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너무 안일한 것. 모두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입으로만 걱정한다. 

장을 볼 때마다 불편한 것이 있다. 너무 많은 종이와 플라스틱으로 된 포장재를 들고 오는 것이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소개된 독일의 도시 프라이부르크(*프라이부르크 녹색도시, 지속가능성으로서의 길)는 식료품점에서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용기 대신 각자 준비해 간 가방과 반찬통 등을 이용한다고 했다. (해당 영상을 찾아 확인해 보려 하는데 쉽지가 않다.) 하지만 지척에 사는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사 오는 물건들은 언제나 플라스틱이든 종이든 본체만큼의 때로는 그보다 더 많은 쓰레기를 포함한다. 편리하고 깨끗하게 살려면 언제나 지구를 망치는 일들을 서슴지 않아야 한다. 쓰지 않는 가전제품의 코드를 빼놓는 일, 가까운 거리를 걸어가는 일, 아이들의 작아진 옷을 버리지 않고(사실 버리기엔 너무 새 옷 들이다.) 이웃에게 나눔을 하고, 친환경 세제를 쓰고 이틀 혹은 사흘에 한 번만 머리를 감고... 이런 노력은 물론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인류가 쓰고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지구가 버텨낼 수 있을 만큼은 아니다. 


아이를 셋이나 나은 입장에서 그 아이들을 만나고 누린 아름다움을 무엇과 비교할 수도, 대체할 수도 없기에,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아직은 아름다운 구석이 많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해법이라고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다만 너무 오래 살아남지는 않아야겠다고, 조금 빨리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지구를 위해서 그리고 뒤를 이어갈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구를 위한 조금 더 적극적인 실천을 몸에 장착한 채로 그렇게 죽어가야지. 


코로나 시절에 나의 매일을 위로하는 석양


[보건 교사 안은영]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지금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말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는 판데믹이 판치는 요즘 세상에 마냥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다. 곧, 생각보다 더 금방 우리는 두려워하며 멀리하던 그 세계를 살게 될 수도 있다는 현실감이 오소소 돋는다. 정세랑 작가의 기사를 읽고 제일 먼저 읽게 된 것이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 모험>이었다. 처음 든 생각은 '이게 그 대단한 정세랑이라고?'이었다. 경솔한 판단이었다. 곧 그 세계에 발목 잡혀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정세랑 늪인가? 친구의 SNS 포스팅을 읽고 바로 다음에 읽게 된 것이 <7교시>였는데 그곳에서는 이미 산아 제한 정책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었다. 작가는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이나 한 듯 (이제부터 스포일러입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아시아의 독재 국가가 WHO에 발병을 숨겼던 것 역시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그 나라는 무역에 타격을 받을까 우려했다고 했는데, 이제는 사라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백신이 나오기까지, 인류의 3분의 1을 잃었습니다. 


라고 쓰고 있다. 나머지 인류는 우주 이주에 실패하고 적정 인구수를 놓고 합의를 하게 되고 공동체의 유전자로 태어난 아이를 개인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키우게 되는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말로 하자면 부모와 자식 관계인 태이와 아라의 대화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지금의 가정의 형태만이 사랑을,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두 사람의 대화는 다정하고 따뜻하다. 오직 자기 자신들만을 위한 다정함이 아닌, 살아남은 모두, 인류를 포함한 지구 전체를 위한 다정함이다. 세계가 굴러가는 흐름을 본 통찰력에 감탄하고, 그렇게 바라본 세계가 절망적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따뜻함에 또 한 번 감탄한다. 


스포일러는 여기까지... 이 책에서 나오는 배경의 대부분은 무너지고 망가져 어쩔 수 없는 선택 가운데 다시 세워진 대안의 세계이다. 하지만 작가는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 안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집중했다. 


무너진 세계라도 네가 함께라면 괜찮아


이렇게 위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함께하려면 살아남아야겠지. 살아남으려면 지금 남아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 노력해야겠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마지막에 수록된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였는데, 좀비들이 나오는 서사가 이렇게 서정적일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자는 작가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아 좋았다. 


두 권을 읽고 나서 아이디마저 없어져 버린 트위터를 다시 가입했다. 정세랑봇 팔로우와 신작 [시선으로부터] 예약 구매 이벤트 참여까지 달려가 버렸다. 앞의 두 권은 상황상 e-book으로 읽었는데, 신작은 꼭 종이책으로 읽고 싶어서였다. 아, 이렇게 오늘도 나는 지구를 망치는 일을 해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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