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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Sep 02. 2020

닿을 수 없는

아이의 장례식에는 직계가족만 참석하였다. 소식을 들은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하고자 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약식으로 치르는 장례이기도 했고, 그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내게 와닿을 것 같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 내동댕이쳐 있는 나를 보고, 위로하려던 사람들이 다시 내동댕이쳐질 것 같아 싫고 두려웠다. 이유는 달랐겠지만, 남편과 의견은 일치했다. 장례식은 목사인 나의 아버지가 집도하였다. 조용하고 단출한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울었다. 손을 잡고 흐느꼈다. 소리를 삼키며 그저 넘쳐 오른 슬픔을 흘려보냈다. 아이는 너무 작아서 유골조차 남기지 않았다. 가볍게도 떠났다. 남겨진 마음은 천근만근 내려앉았지만 아이는 훨훨 날았다. 아이가 별이 된 것은 참말이었다. 가볍고 가벼운 아이는 그 먼 곳까지 훌훌 날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은 짧은 장례식 후 자신들의 역할로 돌아갔고, 남은 시가 식구들과 식당에서 허기를 채웠고, 아이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었던 우리 집에 돌아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담소를 나누고 웃었다.


그렇게 나누어진 세계에서 한동안 지냈다. 굳건히 발을 붙인 현실과 광속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아이가 남긴 공간에 부유하며 흩어진 마음이었다.  


많은 이들이 찾아와 주었고, 부러 품을 들여 우리도 찾아갔다. 일에, 육아에 천착한 삶에서 느슨하게 흘러나왔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찾아갔다. 숲을 찾았고, 바다로 나섰다. 서로를 보듬었다. 길을 가다 느닷없이 맨홀에 빠진 사람처럼 굴어도 그 구멍이 갑작스레 나타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해 주었다. 우리의 시간을 될 수 있으면 빼곡하게 기록했다. 이미지나 영상으로 남아있지 않은 비어있는 시간에 많이 울었다.



두 계절이 무심히도 지나갔다.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과업에 정신이 팔려 자주 일상의 세계만 사는 사람처럼 잊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잊었다. 다시 아이가 생겼고, 다른 아이가 한 아이를 대체할 순 없었지만, 빽빽거리는 아이들의 울음이 끊이지 않는 동안 들어 본 적 없는 아이의 울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사라진 듯한 심연은 돌이 던져지면 파문을 일으키며 다시 드러났다. 물결을 따라 넓어지며 일상을 넘어섰다.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주 일상에 묻혀 잊히지만, 영영 지워지지 않는 흔적 같은 것을 짊어지는 일이다.



여름의 열기를 깡그리 날려버릴 생각인지 며칠 냉한 바람과 함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시원한 여름비가 아니다. 쓸쓸하게 흘러드는 가을비. 이렇게 계절은 여지도 남기지 않고 지나간다. 그녀의 삶도 그랬다.


유난히 얽히고설킨 관계의 끈들이 피로한 날이었다. 피로감에 모두를 피해 숨어 있어야지 싶은 즈음에 소식이 왔다.

멀리 떨어져 있던 사이였다. 가끔 만났고 웃으며 인사했지만, 서로의 삶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일 없는. 그나마도 국경을 넘어 멀어진 후 위태하게 끊어질 듯 말 듯 했던 그런 사이. 그래도 연락을 하려면 해볼 수 있는 사이였다. 단체 톡방에서 내가 본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는 무겁지도 슬프지도 않아 돌아볼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저 무심했다. 모든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다정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누구 옆에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할지 정할 수 없다. 그냥 마음이 맞는 옆의 사람에게 다정한 정도로… 남들이 하는 그 정도로만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갑작스레 끊겨버린 연 앞에서 이렇게 그에게 타자로 살아온 나의 딱딱한 무심함에 스스로 멍이 든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의 이름을 눌러 말을 걸 수 있을까. 돌아가도 다르지 않을 것을 알아 절망한다. 이제 와 할 수 있는 것은 닿을 수 없는 미안함을 전하는 것뿐.


닿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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