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배워서인지 겨울은 늘 끝을 떠올리게 한다. 연말과 연시 모두 겨울 안에 들어 있는데도 겨울을 생각하면 언제나 지나간 것들, 돌아오지 않을 것들을 놓지 못하고 질척거리는 너절한 끝을 떠올린다. 첫눈의 하얀 설렘과 빨강과 초록이 재잘대는 불빛들 속에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화려함은 외출할 때 찍어 바른 화장이 아닐까, 지우고 나면 그저 잿빛 얼굴일 뿐일 테지.
다이어리를 사고, 새해 계획을 번호를 매겨 눌러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계절의 순서와 상관없이 끝보다는 시작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끝은 끝대로 접어두고 또 앞으로 날려갈 종이비행기처럼 생각했던 것도 같다. 가볍게 톡 던져도 후욱 날아갈 수 있을 것처럼. 지켜지지 않은 새해 계획들은 묵고, 무거워져 그런 걸까. 마흔 앞에 서서 한 번도 그려 보지 않았던 연경에 막막해져서 그런 걸까. 시간의 분절과 상관없이 살아 있는 한 시작은 계속 오고 갈 것인데, 언제부턴가 끝만 생각하게 되는 연말.
이곳의 겨울은 길다. 10월 말이 되면 겨울이 훅 들어온다. 덩달아 계절만큼 밤이 자꾸자꾸 길어진다. 그러면 마트에서부터 시즌이 시작된다. 잠깐 핼러윈 열풍이 지나고 난 진열대에는 알록달록 반짝이는 장식들과 각종 아드벤츠 칼렌다(12월 첫날부터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열어볼 수 있도록 매일 깜짝 선물이 들어 있는 달력), 선물용 상품과 초콜릿, 눈과 산타와 루돌프가 그려진 빨갛고 하얀 포장지들이 보기 좋게 진열된다. 이곳 사람들이 겨울을 살아내는 비법이랄까. 마트에서 시작된 시즌은 점점 이웃들에게로 번진다. 다른 계절 동안 상자 안에 얌전히 잠자고 있던 조명과 장식을 꺼낸다. 크리스마스 장식은 집 안에만 몰래 숨겨두지 않고, 꼭 이웃들도 함께 볼 수 있게 창가에, 정원에 반짝반짝 내건다. 원더키드의 2020은 확실히 미래적이었다. 낯설고 딱딱한 미래의 삶에 지친 이웃들은 한 발짝 빨리 ‘우리 여전해, 늘 이렇듯 아름답게 겨울을 났잖아,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염병의 시간도 지나갈 수 있어.’ 말을 건네듯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속삭임이다.
이웃들의 응원에 부응하고 싶지만, 어떻게든 행복의 찰나를 부여잡고 일어서고 싶지만, 아무래도 겨울의 기운이 너무 강력하다. 겨울이기 때문에 이렇게 엉망이에요, 라고만 해도 혹 이해해 주려나.
글을 쓰는 나를 본다.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는 나, 포장이야 하겠지만 너무 나 같지 않으면 그건 또 내 글이 아니라는 괜한 윤리의식 때문에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을 때는 쓰지 못한다. 최소한의 변명거리라도 있어야 쓸 수가 있다. 요즘의 나날들은 어떻게 포장할 수 있을지, 사실 포장할 의지조차 없었다. 세계 바깥으로 내 던져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누구도 그런 류의 위력은 뿜지 않고, 스스로 튕겨 나갈 방도도 없다. 밖에서 내가 없는 세상을 볼 수가 없으니 꾸역꾸역 내가 들어간 이 암울한 그림을 그린다. 우울과 글쓰기는 떨쳐내지 못한 시제다.
심산하다.
오래 잠을 잔다. 동면하는 포유류처럼, 파충류처럼, 양서류처럼, 다 떨어내고 죽은 듯 서 있는 나무처럼. 꿈속에서 이야기를 본다. 긴 잠 속에 이야기를 꾼다. 흩어져 사라질 문장들을 붙들고 몹시 간절하다. 울었던 것도 같다. 역시 깨고 나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고상하게 포장해 보았지만, 실상 잠을 잤고, 먹지 않았다. 내가 필요한 이들을 등졌다. 최소한의 의무로 삶을 지탱해 보려 했는데, 그것마저 놓쳐버려 가장 가까운 이들이 상했다. 사람 구실, 이 계절에 못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려 깊게 주변을 둘러보고 내 삶을 꾸리고도 남는 힘으로 살갑게 사람들을 챙기는 것까지는 누구도 바라지 않았는데, 그냥 기우뚱해 좀 부딪히더라도 서 있기를, 속도를 가늠할 수 없게 느리더라도 내딛기를 했으면 했을 뿐인데, 미안하다.
희망을 말하기에 너무 비루한 인생을 끌어안고 있을 땐, 그저 살아가는 것으로, 겨우라도 살아있다는 것으로.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