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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Jan 19. 2021

겨우 살이_02

얼음 땡

역시나 크리스마스는 시시하게 지나갔다. 전 세계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지만, 그날의 특별함은 당일에 있지 않고 기다림 자체에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대단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고 해도 하루, 가 가면 그걸로 끝이다. 이곳에서도 집 안과 밖을 장식하고 매일 아드벤츠 칼렌다를 여는 재미로 겨울의 시작을 보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당일이 지난다. 그렇게 하나의 기다림이 끝나고 나면 이후엔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길어지는 빛의 시간에 기대어 겨울을 난다. 겨울을 보내는 비법 중 하나다.


그러니까 매일 저 상자를 다 열었고, 둘째가 만든 앙증맞은 트리도 정리하고 크리스마스는 갔다. 대신 저 해가 조금씩... 늦게 지고 있는 거, 맞겠지?


 바이러스가 시작될 때만 해도 1년을 이렇게 통째로 “코로나" 영향권에서 살게 될지는 몰랐는데, 결국 아이들이 학기를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개학일이 불투명한 이른 겨울 방학을 맞았다. 이미  봉쇄령을 경험해 본바 아이들만은 학교와 유치원에서 끝까지 맡아 주었는데, 찔끔찔끔 방역 조치를 강화해봐도 소용없이 치솟기만 하는 확진자 수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사망자 수까지 급증했다. 결국엔 메르켈 총리가 거의 눈물로 “이번 크리스마스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게 해 달라!” 며 호소했고 방학 며칠을 앞두고는 방역 단계도 높여 일주일간의 온라인 수업과 이른 방학의 시작으로 우리는 다시 집에 갇히게 됐다.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추석이나 설날 같은 대명절인데, 가족들도 마음껏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일가친척이 유럽 대륙에 없는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야 큰 상관없지 않겠냐 싶지마는, 이곳에서 만난 한인들은 가족이고 친척인지라 특별한 날에는 바리바리 음식 싸 들고 모여 북적북적하게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곤 했는데, 아무래도 더 쓸쓸한 크리스마스가 되고 만 것이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연을 받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베이블레이드(BAYBLADE)> 팽이와 베이 (무려) 스태디움을 받고 싶었지만, 산타 대행인 엄마, 아빠는 그 선물이 썩 내키지 않았고, 결국 연이 올해의 선물로 당첨됐다. 아빠의 로망은 아이들을 통해 실현된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취향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이들은 실망도 하지 않고 올해도 어김없었던 산타의 방문을 기뻐만 했다. 바람 없는 날, 연을 날리러 나갔다. 넓은 벌판을 하염없이 달리면 연은 뒤따라 날았지만, 속도를 조금만 늦춰도 맥없이 곤두박질쳤다. 인력으로 겨우 나는 연이라도 마냥 좋은지 아이들은 한참을 연을 들고뛰다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훨훨 나는 연을 선보이기 위해 열심히 뛰던 엄마 아빠는 얼마나 운동 부족이었던지 잠깐의 뜀박질에 근육통만 얻었다고 한다.


‘언제 연 날리지.' 기회를 엿보던 둘째가 마당에서 놀다가 뛰쳐 들어온다. “아빠, 바람이 많이 불어요. 우리 오늘 연 날려요!” 떨어진 기온과 함께 바람도 같이 와서 우리는 마을 벌판으로 다시 한번 출격하기로 했다.

막내가 변기 앞에서 미처 바지를 내리기 전 쉬를 해 버리는 바람에 아빠와 형들이 먼저 출발했다. 막내를 벗기고 씻기고 갈아입혀 준비시켜 놓고, 쉬 묻은 바지와 팬티를 대강 헹구고 외출복을 입는 사이 마당에서 동동거리던 녀석이 현관문을 닫고 나와봤더니 사라져 버렸다. 분명 잠깐 사이어서 당황하며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길을 따라 쫓아가 보지만 아이는 온데간데없다. 전날 밤 남편이 옆에서 보던 영화가 하필이면 아이가 납치되는 이야기여서 불안은 괜히 부풀었다. 집에서 벌판까지 아주 짧은 거리긴 했지만, 눈앞에 아이를 놓치는 일은 여전히 엄마인 나를 애타게 한다. 아이가 혹시 집 근처에 남아 있을까 계속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맴을 돌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마빈이 없어.”

“응? 같이 있었던 거 아니야?”

“나 옷 갈아입는 동안 마당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사라졌어. 거기 안 왔어?”

“여기 안 왔는데…….”

“잠깐 사이였는데, 애가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어.”

“어, 저기 온다. 아주 멋지게 온다!”


막내는 라우프 라트(Laufrad - 페달이 없이 두 발로 굴려 가는 유아용 자전거)를 타고 혼자 출발했던 것이다. 아빠를 보자마자 엄마가 먼저 가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막내를 잃어버릴 뻔했던 막간의 에피소드는 바람을 타고 훨훨 나는 연을 보자 말끔히 잊혔다. 마침 맑게 갠 하늘은 푸르다 못해 깨질 듯 청명하다. 간혹 산책을 나온 다른 가족들은 신기한 듯 연을 보고 지나간다. 아이들은 춥지도 않은지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얼레를 꼭 쥐고 하늘만 본다. 나 대신, 우리 대신 날고 있는 연을 한참 보다 돌아왔다. 날이 차 몸은 꽁꽁 얼었지만, 연이 나는 하늘을 담고 돌아와 더 따스한가 싶다.

(1) 막내는 잘 도착했다고 합니다. (2) 이 넓은 벌판이 우리꺼! (2) 이제 스스로 연도 날릴줄 아는 아이들




방학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집에 갇혀 있는 나날이라, 길다 싶던 와중에 눈이 왔다. 한국과 독일 양쪽에서 한날 함박눈이 내려 SNS 피드는 온통 눈사람, 눈싸움, 눈길 산책에 이글루까지, 하얗고 퐁신퐁신한  풍경들이다. 이 와중에도 눈 하나로 이렇게 즐거움이 넘쳐나는 걸 보면 우리는 결국 또, 지나가겠다. 좀 더 길어지더라도 버텨내겠다. “그때… 그랬잖아.” 웃으며 얘기하겠다. 아이들이 한참을 눈밭에서 뛰고 구르고 하다 빨개진 볼과 차가운 공기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당에는 고분 벽화가 그려져 있을 거 같은 이글루가 생겼다. (이글루라는데 어쩐지 무덤 모양이다.) 아이들은 날이 추워져서 이글루가 더 단단해지면 야외 취침을 한다고 벼른다. 아이들이 하도 진지해서 나도 모르게 ‘돗자리를 깔고 침낭을 놓아야겠다, 입구는 어떻게 막아주지?’ 고민하고 있다. 창밖은 이제 어느 쪽을 봐도 환한 세상이다.



(1) 공사 중이신 사부자 (2) 일박을 하기엔 너무 일인용 이글루 (3) 마을 썰매장(이라고 불리는 언덕)


우울은 얼음 땡과 같아서 보이지 않는 술래를 피해 달리다가 더 갈 수 없을 만큼 지치면 얼음을 외친다. 겨울에 자주 얼음을 외치는 건 아무래도 이 계절에 신체 기능과 함께 각종 기능이 저하되는데, (먹을 것도 충분한 따뜻한 집안에서 사는 정온 동물인 인간이 왜 그런 증상을 보이는지는, 학계의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치자) 느리고 어벙벙한 상태에서 가족에 대한 의무로 꾸역꾸역 뛰고 멈추다 뛰고 하다 보면 어느새 얼음을 외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분명 내가 외친 얼음인데, 그때부턴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다른 계절의 얼음은 햇살에 절로 녹기도 하는데……. 추운 겨울의 얼음은 누군가 땡, 하고 쳐줄 때까지 꽁꽁 언 몸으로 가만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땡은 일상에 흔하게 널려 있는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한참을 헉헉,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며 얼어 있을 때면 흔한 행복은 보지도 못하고 그저 지나간다. 한참 그렇게 얼어 강제로 쉬고 나면, 숨이 골라지고, 고개를 들면 퉁퉁 날아와 땡을 쳐주는 순간이 그제야 보인다. 몇 번의 땡이 지나가야 녹을지 모르지만, 보인다, 들린다, 느껴진다,


나를 치는, 땡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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