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쓰기의 상관관계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운동을 목적으로 시작한 산책인데, 풍경 앞에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된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봐도 풍경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압도적인 감격은 담기지는 않는다. ‘곧 스러져 버릴지라도 마음에 담는 수밖에 없겠다.’ 생각하면서도 아쉬워 찬 손을 주머니에서 꺼낸다. 부서지는 햇빛에 눈이 시려 화면을 보지 못하고 막 찍은 사진도 사진 무능자의 결과물 같지는 않다. ‘두 손은 거들뿐' 풍경이 다했다.
이 마을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감춰져 있던 아름다움을 찾아 누리는 것은 순전히 게으름 때문이다. 꼭꼭 숨어 있던 것도 아닌데, 참 무심했다. 처음 좌골신경통이 와서 이러다가 정말 죽겠구나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고, 그마저도 집 안에서 영상을 보고 따라 하는 홈트레이닝이었다. 두 번째로 좌골신경통이 오고 나서는 함부로 뭘 하기가 겁이 났다. 제일 위험부담이 적은 걷기부터 시작했다. 걷다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지척에 두고도 발견하지 못했던 이 초원과 숲이었다.
어릴 때 늘 바다가 있는 곳에 살았다. 남해에 붙어 있는 진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고, 울산, 안마도(전남 영광군에 소속된 작은 섬), 다시 진해, 그리고 인천. 아버지께서 해군이셨고, 전역 후에 섬에서 만난 인연을 따라서 간 인천도 항구도시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내륙에 살기 시작했는데, 내륙도 하필 분지였다. 몇 번 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분지만 골라 다닌 것처럼 죄다 사방이 산으로 담이 쌓인 곳이었다. 집을 떠나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살던 고등학교도 분지 지역에 있었다. 어느 날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계단 꼭대기에 앉아 강릉에서 온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가끔 바다가 없다는 사실이 숨이 막혀.”
“그래, 정말 갑갑할 때가 있지.”
스무 살, 원하는 대학은 못 갔지만 대신 다시 바다를 보며 살 수 있게 됐다. 대학이 이어준 인연으로 만난 남자는 그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덩달아 떠나려 했던 도시로 돌아와 눌러앉게 됐다.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는 미련함에 바다를 많이 찾지 않았다. 굳이 찾지 않아도 차를 타고 가다 보면 해변 도로였다. 당연하게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자주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진 못했지만, 하다못해 맥도널드에서도 바다가 보였다. 독일 이주의 ‘아쉬운 것 목록’에 바다가 있다. 여행 가서 큰 호수만 봐도 그렇게 반가웠다.
대안을 찾았다.
탁 트인 들판은 초록색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은 시원함을 선사했다. 바다가 주는 안정을 주었다. 풀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는 파도 소리와는 달랐지만 비슷한 위안을 전했다. 아마도 자연이 전하는 이야기라 그런가 보다.
태생이 시골 사람이라 그런지, 잘 조성된 공원보다 밭 사이로 난 두렁 길이 훨씬 좋았다. 밭을 지나면 곧 숲이 나타났고, 나무들이 터준 길을 따라 들어갈 때면 모험을 하는 것 같은 설렘이 있었다. 길과 길이 연결되어 있어서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어디로든 가볼 수 있다. 행여 길을 잃는다고 해도 손안에 핸드폰만 있으면 집으로 가는 길을 얼마든지 안내해 주는 지도가 뜨고, 만에 하나 맞이하게 될 긴급상황에서는 남편이나 경찰에게 전화를 할 수도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 그런 연유로 산책은 날을 더할수록 새로운 길과 풍경에 매혹돼 점점 길어졌다. 운동은 진즉 목적이 아니게 됐다.
오늘은 새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섰다. 원래 있던 운동화만큼 발이 편한 것 같지가 않았다. 밑창이 좀 높은 것도 같았다. 아이하고 유치원에 가면서 운동화를 잘못 샀나, 싶은 생각이 들어 신발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바닥을 닦아서 환불해야지. 오늘은 스카프도 장갑도 완벽하게 준비해서 나왔는데, 결국엔 집에 다시 갔다 와야 하나 싶어 시큰둥해졌다. 마주치는 사람과 생물과 사물에 온갖 상관을 다 하며 걷는 마빈을 자꾸 재촉하는 이유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간이 찌푸려지는 이유는 운동화를 깨끗하게 사수하기 위해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었다. 유치원에 당도해서도 자꾸 늦장을 부리며 외투를 벗고 신발을 갈아 신는 아이를 기다리는데 숨이 넘어갈 뻔했다. 그래도 무사히 유치원 교실로 쏙 들어간 아이가 창을 내다보며 인사할 때 받아주려고, 얼른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엄마가 온통 딴 데 정신이 팔렸었는데도 아이는 기분이 좋았고, 창을 내다보며 우리만의 작별 의식, 하트 삼 종 세트를 서로에게 보냈다. 다른 엄마가 우리 모습을 보고 웃음 지으며 지나간다. 아이의 하트 세례를 받고 나니 불편하기만 했던 신발이 편해진 것도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다 돌려보낼 생각으로 배달되었을 때 온 모양 그대로였던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맸다. 위로 콩콩 뛰어보니 이대로 신어도 괜찮겠다 싶다.
곧장 전날 발견한 숲으로 향했다. 일부러 다른 입구를 통해 숲에 들어섰다. 조금 들어가자 학교 숲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숲의 식물들을 학교 아이들이 심았다는 설명과 이 자연의 다양성을 보전하도록 도와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아이들이 숲에서 수업할 때가 있다고 했는데, 여기인가 보다 싶었다. 집에 가면 온라인 수업을 하는 쪼꼬에게 물어봐야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뿌듯함에 더 가벼워진 발걸음은 거의 나는 것 같다. 아직 뛰면 안 되는데 자꾸만 뛰고 싶어 진다. 흙과 나무와 아침의 햇살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모양에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댄다. 어차피 사진에 박제된 풍경은 지금 온몸으로 느끼는 기운을 못 담아낼 게 뻔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웠다. 들려오는 새소리에 녹음기를 켰다. 이 역시 시간을 간직하기엔 너무 조악한 도구지만 기억을 자극할 매개가 되어줄 테니 기록을 해 본다. LP판의 소리골처럼 지점에 따라 다른 곡이 재생된다. 처음 연주되는 곡이며, 단 한 번에 흘러갈 재생목록이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넨다. 숲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길래 내가 모르는 규칙이나 법을 어기고 있는 건 아닌지, 위험하지는 않은지 약간의 걱정이 있었는데, 자전거 탄 아저씨 덕분에 말끔하게 사라졌다. 작은 호수를 만났다. 여기서는 멈춰서 여러 번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밥 로스 아저씨의 그림에 나오는 풍경이지 않은가! 미술을 하는 아는 언니에게 사진을 보내봐야겠다.
깊이 들어왔나 싶을 즈음 사슴을 발견했다. 몇 번 사슴을 만나 반가웠는데, 이번엔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 사진을 찍어볼 수 있겠다. 구형 핸드폰 카메라의 줌을 최대한 당겨 찍어 흐릿할 뿐이지만, 오늘 만난 동물 친구를 기억하는 데는 충분하지 싶었다. 사슴도 나를 친구로 여겨 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욕심인가 보다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뛰는 사슴이 서운했지만, 도망칠 줄 아는 사슴이야말로 야생의 사슴이라며 마음을 달랬다.
숲에서 만나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웬만하면 망설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돌아가야지 싶은 생각이 들자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할지 고민이 됐다. 좁아지는 듯했지만 집으로 향하는 방향인 것 같은 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들어가는데 점점 길이 좁아지고 풀이 무성하다. 이대로는 길이 끊기겠다 싶은 두려움과 조금만 더 가면 아는 길이 나오리라는 희망 사이에 갈등하며 더 들어가다 보니, 길은 사라지고 풀꽃만 무성하다. 용기를 잃지 않고 더 들어갔으면 다시 길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지만, 핸드폰 지도도 쓸 수 없고, 전화도 되지 않는 깊은 숲이라 모험가의 대범함은 여기서 접기로 했다. 다시 돌아가 큰길로 걸었다. 몇 번의 갈림길에서 신중하게 선택하여 걸었는데, 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고민하며 여기저기 살피는데 전날 들어온 숲 입구 근처에서 본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작은 제단(성모 마리아인지 모르겠다, 이 작은 나무집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찾을 수가 없다)이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이제 숲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았다.
수 없는 갈림길 앞에서 방향을 안다고 믿었고, 무리 없이 선택했다. 결과는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고,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것들도 그 기간에 한정된 결과였다.
어떤 선택 앞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길게 서성였다. 한참을 가다 돌아서기도 했다. 20대의 나는 가다 돌아서기를 반복했다. 계속 걸었지만 그려 놓은 자취가 어지럽고 어수선하기만 했다.
30대, 내 인생에 가장 곡절이 많은 시기였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 버티기 힘든 순간도 많았다. 고단함을 짊어지고 죽어라 한 길을 걸었다. 무수한 작은 갈래를 지나왔지만 큰 줄기는 변하지 않았다. 나의 선택으로 세 명의 새로운 사람이 이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는 중이다. 아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발전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가는 것 만으로 아이들은 걷고, 말하고, 배웠다. 자랐다. 그것으로 10년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 10년은 열망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바쳐진 시간 동안 나의 욕망을 찾아내고, 원하는 삶의 그림을 힘겹게 그렸다. 앞으로 10년은 가족 안에서 그 발견을 버무리며 길을 가야 할 것이다. 10년 후에는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숲에서 빠져나와 밭두렁 길로 걷는데 자주 마주친 망루가 보인다. 오래 걸어 지치기도 했고, 그 위가 궁금해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웬걸, 너무 편해 보이는 의자가 지친 탐험가를 위해 준비돼 있었다. 망루 위에서 바라본 벌판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셀카는 영 민망하지만, 기념으로 내 모습을 찍었다.
아무래도 숲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오늘도 무리했나 보다. 가는 길에 몇 번 벤치에 앉아 쉬어도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입이 자꾸만 마른다. 내일은 꼭 물통을 챙기리라, 준비물 목록에 추가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과 중 빼먹지 않고 달리기를 한다고 한다. 한국 작가인 김연수도 꾸준히 달린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긴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작가가 지속해서 쓰려면 건강할수록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산책 나흘 차의 깨달음은, 길에서 만난 풍경이 자꾸만 새로운 이야기를 물어다 준다는 것이다. 건물 밖의 생기는 창작으로 추동을 일으켰다. 작정한 10년 중 1년을 썼다. 다음 9년은 걷기와 달리기와 산책과 함께 쓸 것을 다짐한다.
집에 돌아와 보니 새 신발은 몇 시간 만에 헌 신발이 되어 있었다.
마음은 새것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