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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May 25. 2020

생존 일지 02

_뜻밖의 불면의 밤


휴교령 3주 차,인 줄 알았는데 이제 겨우 2주 차를 지나고 있었구나...

외출제한 역시 2주 차.

아이들이 있어서 몸이 빡세긴 하지만 웃을 일이 많고 잡다한 생각에 사로 잡히지 않을 수 있어 오히려 활기차고 좋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상황보다는 상태가 중요한 사람인데 다행히 지금 컨디션 거의 최상이다. 몸은 아닌데, 마음이 밝고 긍정적이다. 가족과 함께 - 다시 말하자면 아들 셋과 - 24시간을 채워가는 일이 간만에 사이가 아주 좋은 상태라 베스트 호흡을 자랑하는 진국과 나에게 할만한 일이었고, 그 사이에 아이들이 즐거움의 소스를 촥촥 뿌려줘 세계를 뒤덮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의 무드와 상관없이 꽤나 유쾌하게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물론 하루 세 끼 다섯 명의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 뒤돌아서면 배고픈 아이들에게 하루 두 번 이상의 간식을 챙기고 끊임없는 아이들의 요구와 필요를 채우고 또 그 틈틈이 청소, 정리, 빨래 - 분류해서 돌리기, 널기, 걷기, 개기, 넣기의 긴 여정- 에 더하여 자주 물과 음료 흘리는 세 놈 뒤치다꺼리, 적절한 엔터테인먼트 제공 등등의 일들이 버겁기는 했다. 요리와 아이들과 놀아주기는 체력도 필요하지만 꽤나 창의력을 요하는 일들이라 일생 최대의 창의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거의 200% 역량을 발휘해 버티기를 하는 중. 그나마 진국씨가 아이들 체력 빼기는 담당해 주고 있어서 다행이랄까.



몸이 삐걱거린 건 휴교령 3일 차부터였다.

허리가 아팠다.  5번과 6번이랬나, 4번과 5번이랬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다나, 그렇게 허리가 약한 편이라 좀 무리를 하면 허리를 못 쓰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고, 슬슬 허리가 아파오는 게 심상찮았다. 그렇다고 마냥 누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조심조심(하지는 않았나?) 하면서 일상생활은 가능해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왼쪽 골반이 심하게 아픈 것이다. 몇 번이고 병원에 가야지 하다가 또 하루를 살면 살아져서 미루고 미뤘다. 예약하고 찾아가고 독일어 또는 영어로 증상을 설명하고 해법을 듣고 하는 과정 모두가 하나의 과제가 되니까, 너무 귀찮았다. 그냥 괜찮아지기를 바라면서 하루 넘기고 또 하루를 넘겼다. 잠을 잘 못 자기 시작한 것은 한 삼 일 전부터. 누우면 골반이 너무 아파서 뜨거운 물주머니를 왼쪽 엉덩이 밑에 깔아놓고 데지 않도록 이리저리 옮기다 좀 식으면 잠들었다. 그러다 아픔을 참을 수 없으면 깼다. 첫날은 그래도 잠을 잔 것 같다, 둘째 날은 새벽에 잠을 설쳤지만 새벽녘에 다시 잠들어서 늦잠을 좀 잤다. 그리고 어젯밤, 너무 피곤해서 딴짓 손절하고 자려했는데 아무리 뒤척여도 깊이 잠들 수가 없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새벽에 깨어보니 4시, 깊이 잠들지 못하는 것도 통증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약을 먹었다. 전혀 작동하지 않는 약효. 등 아래 커다란 쿠션을 넣고 몸을 거의 활처럼 만들어 누우니 아프지가 않은 것 같아서 그대로 깜박 잠들었는데, 그런 자세로 오래 잘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자세가 조금만 달라져도 다시 시작되는 통증. 그렇게 꾸역꾸역 시계를 확인해보면 다섯 시, 여섯 시 반, 옆에 자던 마빈이 깨서 쫄랑쫄랑 쫓아 나간 게 일곱 시. 또 꾸역꾸역 자고 깨고 반복하며 여덟 시 넘어까지 버텼다. 그러지 않으면 하루를 버틸 수 없을 거 같아서.



일어나자마자 방학 이후 가장 간단한 식단으로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얼른 병원 찾기에 돌입했다. 가까웠으면 좋겠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정형외과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일주일에 고작 하루 운영하나보다. 뮌헨까지 나가야 하는데 예약 가능한 날짜를 보니 최소 3월 말일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그 와중에 남편이 회의 중이라 아이들이 죄다 나한테 붙었다. 첫째의 HSU(Heimat-und Sachunterricht - 뭐.. 뭐라고 해석해얄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로 차지만 사회와 자연을 합친 것 같은 과목이다. ) 과제를 번역기 돌려가며 재료 찾아가며 도와주고 둘째의 받아쓰기를 불러주며 셋째의 땡강을 받아낸다. 친구가 알려준 정형외과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24시간 전에만 예약 가능하다는 줄 알서 예약하지 않은 날이 있었는데, 예약 취소는 24시간 전에 하라는 말이었고 당장 오늘 12시에 예약이 가능했다. 게다가 통화 없이 인터넷으로 예약이 되는 이런 편리한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라니.

독일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곳이지만, 요즘은 교통체증도 없고, 주사를 잘 놔주는 - 이것도 독일에서 굉장히 흔치 않은 일이다! 애가 열이 펄펄 끓어 떨어지지 않아도 해열제만 먹여보라는 독일 병원 - 병원이기에 망설일 것이 없었다. 나는 부엌 남편은 거실에 아마 열 걸음 내에 갈 수 있었지만 카톡을 보냈다.

여보, 병원에 다녀와얄 거 같아.

남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긍정의 답이 왔다. 그 긍정만 냉큼 받아 들고 예약절차를 진행하고 씻고 준비 돌입. 예약시간과 이동 거리까지 계산해 봤을 때 한 시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 마침 비어 가는 냉장고를 채워줄 때가 돼서 마트로 달려갔다. 첫 번째 마트에서 처음 보는 광경 영접. 입구 바깥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입구엔 경찰(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서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줄을 기다렸다 장을 보면 시간이 맞지 않는다. 두 번째 마트로 출동, 다행히 그곳은 넓어서 그런 건지 물건이 너무 많이 빠져서 그런 건지 예의 진풍경은 없다. 그 와중에 베이킹 재료까지 꼼꼼히 챙겨 장을 보고 나왔다. 장바구니 던져놓고 나오려다 시계를 보니 아주 약간의 여유, 둘째의 도움을 받아 초 스피드로 냉장고를 꽉꽉 채우고 지하실에 또 식재료를 재 놓고 병원으로 향하려는데, 마빈이 문 앞에서 자꾸만 나를 붙잡는다. "엄마, 그런데 엄마가 너무 늦게 오면, 내가 힘들어..." - 응? 늦게 안 올 거야. 니가 힘들게 뭐 있어, 놀기만 할 건데..- 마음의 소리 접어두고 온갖 미사여구, 예를 들면, 미니 특공대랄지 초콜렛 같은 것으로 아이를 달래 놓고 차에 타는데 끝까지 아쉬움을 표하는 막내를 뒤로하고 급하게 마을을 빠져나간다.  


다행히 주차와 첫 내원 환자의 서류작성까지 고려해도 괜찮을 시간이었지만, 아우토반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 달린다. 마음속으로 내 증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언어의 미로 속에서 헤매며 문장을 만들어 보지만 문장의 정확성은 전혀 보장이 안 된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에서 준 서류들의 작성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인터넷이 잘 터져 번역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독일은 건물 내, 뿐만 아니라 여기와 저기에 인터넷이 잘 안 터지는 곳이 많다.) 독일어 문장은 결국 만들어지지 않아서 똑같이 어설프겠지만 그래도 문장이라는 게 만들어진 영어로 상황을 설명하는데 친절한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본인도 그렇게 유창하지 않으면서 - 이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다시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꼭 나의 어설픈 영어를 사용해 외국인들과 대화할 것이다. - 정성껏 진료해 주신다. 마지막에 친절하게 "주사 놔줄까? 니가 원한다면."이라고 묻길래 얼른

I want!
 

를 외쳤다. 그렇게 주사도 맞고 진통제를 꾸준히 먹으라며 진통제 처방전도 받고, 일주일 정도 지켜보고 계속 아프면 MRI를 찍자는 얘기도 해 주시고, 코로나 때문에 물리치료실을 연결해 줄 수는 없지만 물리치료사를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가보라고도 하시고, 병원도 비상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오전만 진료 가능하지만 오후에 응급환자를 받으니 너무 아프면 오후에 와도 된다고, 본인도 격주로 진료를 보고 있으니 그것도 알아두라고, 아무튼… 친절한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물론 잊을 가능성이 아주 크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 식기 세척기에서 그릇을 빼고 또다시 넣고 식탁을 정리하고 며칠 진흙에서 논 아이들이 입은 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아이들과 함께 할 활동을 예고하며 쉬어야 하는, 쉬고 싶었던 나의 오후는 흘러간다. 오늘의 창의성은

Alles wird gut!

아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 운동 채널, 콘서트 같은 것을 공유하는 것이 지금 엄마들이 서로를 돌보는 방식인데, 그중 하나는 밖에 있는 아이들(또는 사람들)에게 “우리 같이 조금만 더 참자, 금방 지나갈 거야, 다 잘될 거야.”의 의미를 전달하는 무지개 그림과 “Alles wird gut!”(“다 잘될 거야!”)라는 문장을 이쁘게 색칠해서 밖에서 보이도록 창에 붙이는 활동이다. 이것을 얼마 전 무지개 물고기 책을 읽고 아들에게 셀로판지로 창문에 꾸미기 활동을 하는 것을 인스타에 포스팅 한 아는 언니의 아이디어를 접목해 본 것.

거기에는 숙원 사업인 창문 닦기를 아이들의 노동력을 빌려 해결해 보고자 한 꼼수도 들어 있어서, 이걸 하려면 창이 깨끗해야 해서 먼저 창문을 닦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애들이 아주 순순히 그런 줄로 아는 것이다. 허나, 그들의 노동력을 의지하려 했던 나의 나약함을 후회한다. 둘째 셋째가 닦은 부분은 물자국이 그대로라 몇 번을 다시 닦았는지 모르겠다. 결국 흥미 떨어진 둘을 빼고 첫째와 내가 마무리로 겨우 한쪽 창만 닦아서 활동을 시작했다. 하, 두 번째 후회. 아이들의 창의력과 에너지를 과소평가했던 것. 처음엔 셀로판지 조각들이 상자에 이쁘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곧 그것들은 온 거실에 흩날리게 되었으니 한 조각 한 조각 붙이는데 실증을 느낀 녀석들이 조각들을 창에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다고 붙냐고 이 아저씨들아. 엉엉엉. 행복하자고 시작한 일 결국엔 승질을 내며 조각들을 다시 다 모아 통에 담으니 조각반 먼지 반. 먼지 떨어가며 주어진 활동을 끝까지 하는 - 엄마를 위한 거였니, 민트? - 첫째,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위해 엄마가 그려준 배경그림을 거부하고 배경을 그리는 데 집중하는 둘째, 그리고 셀로판지계의 피리 부는 사나이 막내, 거실과 부엌 사이를 마구 뛰어다니며 셀로판지들을 다시 흩뿌린다.   



어차피 누울 수도 없지만, 잠시 쉬지 않으면 정말 탈진할 거 같아서 아이들이 없는 방에 앉았다. 길게 늘어져 방 깊이까지 스며드는 저녁의 햇살, 잠시 쉬고 빨래를 널며 발콘 밖으로 펼쳐진 사랑하는 풍경, 기꺼이 저녁을 담당해 주는 남편의 친절, 저녁 이후의 고요와 평안.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오늘은 무너졌을까?   

어제저녁부터 남편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일을 마치면 아이들과 마당에서 공놀이를 하는데, 유난히 추웠던지 그만 감기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 종일 그도 나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채로 보내면서 삐걱이지 않고 잘 지나갔다. 그에게 고맙고, 나 또한 대견하다.

남편에게 서운할 때가 종종 있지만 내 몸이 아플 때면 유독 그렇다. 그저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기는 스타일이 아닌 것을, 그렇다고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닌데, 기대하는 바가 어긋나면 몸이 아플 땐 서운함이 배가 되는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를 위해서 얼마 전부터 빨간 노트를 쓴다. 그가 나에게 잘 대해준 모든 것을 기록하는 노트이다.

언제나 호의와 사랑은 쉽게 잊히고 금세 당연한 것이 되고,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서운하게 한 것은 평생 간직할 양으로 마음의 노트에 빼곡히 기록하니 싸움이 나면, 그는 “천하의 나쁜 놈"으로 전락한다. 화가 나고 서운할 때 꺼내 볼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빨간 노트는 꽤나 효과가 있다. 사소한 것들이지만 시각화해서 적어보면 꽤나 많기도 하고, 나를 위하는 그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느라 빨간 노트를 기록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는데, 오늘은 써야겠다, 몸이 아프니 그저 제풀에 서러워 눈물이 나는데, 뭐, 그렇게 눈물로 꽉 차 있는 것들을 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혹여 나도 모른 새 설움의 원인을 그로 지정할까 봐.   


누우려니, 무섭다. 낮에 맞은 주사는 의사 선생님 말대로 바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약도 꾸준히 며칠을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눕는 자세는 지금의 나에게 고통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그냥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이 불면의 밤을 아예 누리기로 했다. 아이들과 남편이 다 잠들고 난 뒤, 처음엔 좀 울었다. 그리고, 음악을 틀었다. 마당에서 눈빛 교환까지 하는 “Black bird(대륙 검은지빠귀)” 덕에 오늘 선곡은 블랙버드로 시작한다. 최근 예능에서 김광민 님의 “학교 가는 길"과 “지금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를 들으며 싸이월드 감성이 되살아 났는데, 그런 의미로 블랙버드로 시작해 pale blue eyes, here comes the sun, 불면의 밤을 위로하는 아이유, 그리고 김윤아의 야상곡, 거의 의식의 흐름 선곡 법이다.


들으며 생존 일지를 써 본다. 원래는 이것보다 먼저 써 내려가던 것이 있었다. 하루의 끝에 긴 글을 써내기가 쉽잖아서 며칠 동안 붙잡고 있었는데, 역시 게슈탈트(Gestalt - 독일어 반갑), “here&now” 인가 - 막간 전공지식 방출 - 고통이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확실히 인식하도록 쓸 수 있도록, 으응? 해 주었다고 하는 전설?

사실 긴 글을 쓰는 게, 그것도 재밌게 감동적으로 써 가는 게 나의 필력으론 아직(언젠간! 쉽지 않더라도 되리라)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불면의 밤에 써 내려간 이 생존일지가 나에게는 오히려 고맙다. 나의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재미는 혹 없을지라도 이 긴 호흡을 제공해준 이 밤에게 감사한다. 내일은 물리치료사를 찾아가 볼 생각이다. 난리 통에도 고통 속에도 살아있다. 그리고 살아간다.


마당은 우리의 구원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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